시 중 11.
지의도자(紙衣道者)가 찾아와 뵙자 스님께서 물었다.
"지의도인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무엇이 종이 옷(紙衣) 속의 일이더냐?"
"옷 하나 몸에 걸쳤다 하면 만법이 모두 다 여여합니다."
"무엇이 종이 옷 속의 작용이더냐?"
지의도인은 앞으로 가까이 가서 끄덕끄덕하더니 선 채로 죽어(脫去)버렸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렇게 떠날 줄만 알았지, 어째서 이렇게 올 줄을 모르느냐?"
그러자 지의도인이 홀연히 눈을 뜨더니 물었다.
"신령하고 진실한 성품 하나가 어미 뱃속을 빌리지 않을 땐 어떻습니까?"
"오묘함은 아닐세."
"어찌해야 오묘함입니까?"
"빌리지 않는 빌림이라네."
지의도인은 "안녕히 계십시오" 하더니 그대로 천화해 버렸다.
스님께서는 게송을 지어 법문하셨다.
원명(圓明)한 각성(覺性)은 모습 없는 몸이니
지견으로 멀다 가깝다 망상떨지 말아라
한 생각 달라지면 현묘한 바탕에 어두어지며
마음이 어긋나면 도와 이웃하지 못하리
마음(情)이 만법에 흩어져 목전의 경계에 잠기고
의식(識)으로 여러 갈래 비추어 본래 진실 잃는구나
이상의 말 속에서 완전히 깨달으면
옛날 일 없던 그 사람이라네.
覺性圓明無相身 莫將知見妄疏親
念異偏於玄體昧 心差不與道爲隣
情分萬法沈前境 識鑑多端喪本眞
如是句中全曉會 了然無事昔時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