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림성사(叢林盛事)

12. 부모를 찾아뵙다 / 설당 도행(雪堂道行)선사

通達無我法者 2008. 2. 25. 16:30
 



12. 부모를 찾아뵙다 / 설당 도행(雪堂道行)선사



설당 행(雪堂道行:1089~1151)스님은 괄창(括蒼)사람이다. 어린 나이로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였으나, 살생하는 것을 보고는 가엾은 마음이 생겨 마침내 집을 나왔다. 사주(泗州)보조왕사(普照王寺)에서 출가하여 탑청소를 맡아보다가, 삭발한 뒤에는 서주(舒州)용문사(龍門寺)의 불안(佛眼淸遠)스님에게 귀의하여 시자가 되었다. 옷 한 벌로 여름과 겨울을 지내고 게다가 이(虱)를 죽이지 않으니, 곁 사람들이 모두 그를 싫어하여 항상 불당의 구석에서 혼자 좌선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현사(玄沙師備)스님의 `축착각지두(築著脚指頭)'*라는 화두를 들다가 크게 깨친 바 있었다. 불안스님은 사천 땅 사람인데, 상당법문을 하려다가 마침 도행스님이 옆에 서있는 것을 보고 장난삼아 말하였다.

"사천성 중은 장난꾸러기 망나니이고 절강성 중은 말끔하다. 여러분들이 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나의 시자승을 보라."

이 말에 모든 대중이 껄껄대며 웃었다.

그 후 그의 아버지가 태상박사(大常博士)에서 삼구(三衢)태수로 나오게 되었을 때, 도행스님은 어머니가 매우 늙었으므로 집을 찾아갔다. 문지기가 그의 남루한 옷차림을 보고 두번 세번 들어가지 못하게 하므로 마침내 도행스님은 옷을 벗어 건네 주자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그의 모친은 소식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거꾸러지면서 "내 아들이 아직도 살아있단 말이냐!"하고 놀라며, 마침내 도행스님을 내실로 맞이하여 옷을 갈아 입히고 목욕을 하도록 하였다. 스님이 목욕하는 사이에 옷을 모조리 새 옷으로 바꾸어 놓으니 도행스님이 울면서 말하였다.

"내 몇해 동안을 그들과 한 식구로 지내왔는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갑자기 버릴 수 있겠습니까?"

그 길로 곧장 길상사(吉祥寺)를 찾아가 잠을 잤다. 이튿날 부모 형제가 모두 찾아가서 만나려고 하였으나 도행스님은 첫 새벽녘에 떠나서 만날 수 없었고, 벽 위에 시 한 수가 적혀 있을 뿐이었다.



내 마음 쇠붙이 같다고 미워하지 마오

내 자신도 아직껏 안타까워 하나니

문 앞에 내린 눈 모두 쓸고 나면

바야흐로 불꽃 속에 연꽃이 피겠지요

온갖 일 다시는 묻지 말고

다같이 인연을 잊어버립시다

이 일을 이루는 날에

금강의 씨앗이 나타나리다.

莫嫌心似鐵  自己尙爲冤

掃盡門前雪  方開火裡蓮

萬般休更問  一等是忘緣

箇事相應處  金剛種現前



그의 어머니는 스님을 잊지 못하여 눈이 멀었다. 다시 괄창 땅으로 돌아오니 그의 아버지가 남명사(南明寺)의 주지를 맡도록 강요하였고, 구주(¡州)오거사(烏巨寺)로 옮기자 스님의 도는 크게 떨쳐졌으며, 요주(饒州)천복사(薦福寺)에서 열반하였다. 묘희(大慧宗杲)스님이 도행스님의 어록에 손수 쓴 서문이 세상에 널리 전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