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묘희스님에게 따끔한 지적을 받다 / 나암 정수(懶菴鼎需)선사
나암 수(懶菴鼎需)선사는 불심 본재(佛心本才)스님에게 귀의하였는데 본재스님이 대승사(大乘寺)에 있을 때 그는 이미 수좌로 선방에 패를 걸고 학인들에게 `마음이 부처다'하는 화두를 묻곤 하였다. 당시 묘희스님은 양서암(洋嶼庵)에 있었는데 정수스님의 도반 광장원(光狀元:晦庵邇光, ?~1155)스님이 편지를 보냈다.
"이곳 양서암 주지의 솜씨는 다른 총림과는 다르니 한 번 찾아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정수스님은 웃기만 할 뿐 답하지 않았다. 이에 광장원은 꾀를 내어 함께 식사나 하자고 그를 불렀다. 정수스님이 그곳을 찾아가 산문에 들어서니 때마침 묘희스님의 개실(開室)법회가 열리려던 참이었다. 정수스님도 대중을 따라들어가니 묘희스님이 물었다.
"한 스님이 마조(馬祖道一)스님에게 무엇이 부처냐고 묻자, 마음이 부처라고 하였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정수스님이 이에 대하여 말하자 묘희스님은 그를 꾸짖었다.
"그런 견해로 감히 함부로 남의 스승노릇을 하느냐?"
이에 북을 울려 대중을 모아놓고 그가 평소 얻은 바를 말하게 하여 잘못된 견해를 물리쳐주자 정수스님은 두 뺨이 눈물로 뒤범벅이 되어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혼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이제까지 깨달은 바는 이미 깨어졌지만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전할 수 없는 종지는 어찌 여기에 그치겠느냐?' 그는 마음을 돌이켜 제자가 되었다.
어느 날 묘희스님이 물었다.
"안에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밖에서 들어올 수 없는, 바로 그때는 어떻게 하겠느냐?"
정수스님이 무어라고 대답하려는데 묘희스님이 죽비를 들고 등짝을 후려치는 바람에 크게 깨치고 말을 이었다.
"스님! 그만하십시오. 이미 많이 때렸습니다."
묘희스님이 또 한 차례 때리자 정수스님은 넙죽이 절을 올렸다. 묘희스님은 웃으면서 "오늘에야 비로소 내 너를 속이지 않았음을 알겠지!"하면서 마침내 게를 지어 인가하였다.
몸과 마음은 하나이니
몸 밖에 나머지 일이 없어라
아서라! 이 눈먼 당나귀가
정수에게 전해 주노라.
身心一如 身外無餘
咄這瞎驢 付與鼎需
이로부터 그의 이름은 총림에 진동하였고 세상에 나아가 천주(泉州)연복사(延福寺)의 주지를 지내다가 서선사(西禪寺)로 옮겨왔다.
대중에게 법문을 하였다.
"허공에 칼을 걸어놓고 우리 종지를 밝히니 법좌에 앉은 선사의 위엄에 어찌 다가설 수 있으랴. 그러나 하늘 땅을 뒤바꾸고 번갯불을 말아들이며 별똥을 튀는 수단이 있다 하여도 맞수가 되지는 못하리라. 여기서 길흉을 가려낼 사람이 있는가? 있다면 나와라. 만나보자꾸나. 조금치만 우물쭈물하다가는 한 방에 가루를 내버리겠다."
그리고는 할을 한번 하고 법좌에서 내려왔다.
또한 동짓날 대중법문을 하였다.
"25일 이전에는 많은 음(陰)이 엎드려 있어, 흙 속에 묻힌 용이 문을 닫고 있다가 25일 이후에는 하나의 양(陽)이 회복되어 쇠나무에 꽃이 핀다. 막상 25일에는 세속의 술취한 자들이 나귀타고 말을 타고 마을과 거리에서 서로가 축하하지만, 세간을 초월하여 한가한 사람은 납의를 머리에 덮어쓰고 화로 곁에 둘러앉았다. 바람도 으스스 비도 으스스 을씨년스럽게 차가운데 그대가 장선생인지, 이도사인지, 되놈 달마인지 무슨 관계이겠는가."
또 한 번은 대중법문을 하였다.
"막야 명검 비껴놓고 어루만지며 하늘을 꿰뚫으려고 괜스레 호기를 부리다 부질없이 정신만 허비하였네. 설령 신비한 칼날을 움직이지 않고서 편히 앉아 태평시대를 이룬 성군 요순도 오히려 교화했다는 찌꺼기가 남아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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