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림성사(叢林盛事)

31. 승려를 업신여기는 형조관리에게 따끔한 편지를 쓰다 / 부정공(富鄭公)

通達無我法者 2008. 2. 25. 17:03

 



31. 승려를 업신여기는 형조관리에게 따끔한 편지를 쓰다 / 부정공(富鄭公)



정국공(鄭國公)부필(富弼)은 투자 수옹(投子修)선사에게 공부하며 제자의 예를 다하였고, 인품이 신중하며 마치 처음 배우는 사람같았다. 뒷날 비부(比部:刑曹)의 우두머리 장은지(張隱之)가 그의 세력을 빙자하여 승려들을 업신여기자 정국공은 마침내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선가(禪家)의 사람들은 보통, 첩경으로 하지 않고 번잡스럽게 설명하는 것을 보면 그것을 `갈등(葛藤)'이라 하여 이를 천하다고 나무라기도 하며 마침내는 갈등가를 지어 문집에 게재하기도 한다. 나 부필은 일찍이 그 까닭을 생각해 왔는데 오늘 그대와 함께 생각해 보려하니, 어떻겠소?

세속의 선비와 승려들의 본성(本性)이나 식견이야 애당초엔 터럭끝만의 차이가 없겠지만 그들의 사적(事蹟)은 매우 다른 점이 있다. 우선 승려는 어릴 적에 출가하여 오랫동안 불경을 보면서,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부처에 관한 일들이다. 머리를 깎은 뒤에는 도반과 짝을 지어 행각하며 가고 싶은 곳에 가서 참선하고 도를 묻는 이외엔 대중생활을 한다. 견문이 해박하고 핵심적인 데다가 한없이 귀와 눈으로 보고 듣는다. 이렇게 해서 도가 성숙되다가 어느 날 눈 밝은 스승의 지적을 받고 그자리에서 견처가 생기면 그 때는 자신이 이제껏 보고 들은 바를 가지고 스스로 증거를 삼으니, 어찌 명백하고 통쾌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 세속의 선비들이란 어릴 때부터 세속 일에 젖어 살다가 커서는 아내를 두고 자식을 기르며 생활을 꾀하고 벼슬길로 나아가기에 바쁘니, 경전 류는 일찍이 손에 잡아보지도 않는다. 설령 한가한 시간에 경전을 읽고, 즐긴다 해도 이야기 밑천이나 삼기 위해서일 뿐이니, 어떻게 그 깊은 진리를 깨칠 수 있겠는가. 또한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모든 이는 제각기 그들의 일에 매여 있어 그들이 선림법석이 있는 줄을 알고서 설령 그곳을 찾아가 참구하고 싶다한들 어떻게 갈 수 있으며, 어떻게 도반과 짝이 되어 산사를 행각하며 참선하고 도를 물을 수 있으며, 대중과 함께 해박한 견문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만에 하나 눈 밝은 스님을 어느 계기로 만날 수 있다 하여도 아무런 공부가 없는 터에 얼마나 들을 수 있으며 얼마나 얻을 수 있겠는가? 묻는 것도 없이 보고 들은 것으로 스스로 증거를 삼고, 더이상 널리 묻거나 깊이 연구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겨우 한 두마디 듣고 그것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눈은 높아 은하수를 바라보고 콧대는 하늘 끝에 닿도록 거드름을 피운다. 제 스스로 `나는 부처와 조사를 뛰어넘었으며 수많은 성인이 모두 나의 발 아래 있노라'고 으스대며 불경이나 선종의 서적은 한번도 보지 않은 채 그것만으로 갈등이라는 비난을 피하려고들 한다. 그러나 이 부필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배우지 않으려면 그만이겠지만 만일 몸과 마음을 결택하기 위하여 배운다면 빈틈없이 치밀하게 탐색해야 할 것이다. 철두철미하게 뼈속에 사무치도록 깨달아 모든 것이 그대로 완전한 맑은 광명으로서 한 점 티끌도 가리우지 않도록 한 다음에야 비로소 나는 그대에게 고개를 숙이리라.

은지여! 이 일은 결코 하찮은 게 아니다. 당장에 무시이래로 있어 온 생사의 뿌리에서 벗어나 생사를 관장하는 염라대왕과 맞서야지, 사람들의 쓸모없는 말을 듣고 참선을 배울 것이라고 자신을 속여서는 안될 것이다.

그대에게 만복이 깃들기를 빌고 빌면서 부필은 비부(比部)집사(執事)에게 글을 띄우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