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만암 도안(卍菴道顔)선사의 대중법문
만암 안(卍菴道顔:1094~1164)스님은 사천 사람으로, 오랫동안 원오 극근(圓悟克勤)스님에게 공부하였다. 하루는 고금의 화두를 거론하는데 원오스님이 큰 소리로 꾸짖었다.
"너는 참선을 하여도 바른 깨침을 구하지 않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정신없이 지껄여대는구나."
도안스님은 자기도 모르게 땀을 흘리고 그 길로 법당으로 돌아가 새벽까지 자지 않고 좌선하다가 갑자기 크게 깨달았다. 원오스님에게 달려가 뵙고서 조금치도 막힘없는 논리를 휘두르자 그제서야 원오스님은 머리를 끄덕였다. 이에 도안스님이 말하였다.
"어제도 그처럼 대답을 하였는데 스님께서 수긍하지 않으시더니, 오늘도 그처럼 말하였는데 어찌하여 머리를 끄덕이십니까?"
"이 바보야! 너는 어제 망상 속에 잡혀 있었다."
도안스님이 절을 올린 후 말하였다.
"원래 석가모니도 신통한 것은 없었군요!"
원오스님이 촉으로 돌아간 뒤에는 묘희스님에게 귀의하여 최상의 경지를 깨치고 경산사의 수좌가 되니, 그의 이름이 총림에 널리 퍼졌다. 그 후 변산사(卞山寺)의 주지로 나갔으며 그 다음엔 동림사(東林寺)의 주지를 지냈다. 일찍이 대중 법문을 하였다.
"조사들의 지침이나 성인들의 수단은 밭가는 농부의 소를 빼앗고 배고픈 걸인의 밥을 낚아채듯 호시탐탐하고 날쌨으니, 상앙(商:?~BC338)의 형법이나 손무(孫武)의 명령처럼 법에 걸리면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오랫동안 모래밭에서 싸우고 칠사(七四)기연을 갖춰 형세를 바라보고 결단을 내어, 진퇴존망을 아는 자만이 애오라지 한가닥 실마리가 트이리라. 만일 자기 눈을 뜨지 못하고 두꺼비처럼 눈만 껌벅이는 자는, 무리에 끼어서 밥이나 먹지 자유자재할 능력이 없다. 지금 여기에는 결단코 빼앗아 보겠다는 중이 없느냐? 이 산승의 목숨은 오직 그대들의 손아귀에 있다.
또 이런 말을 하였다.
"법이란 일정한 형상이 없으므로 사물을 만나야 그 형태가 나타나며, 일이란 반드시 정해진 것이 없으니, 공이 이루어짐에는 주체가 없다. 때때로 바람이 높아 고요하고 텅 비어 가까이도 멀리도 할 수 없고 때로는 자신이 물러나 남에게 굽히면 얕보거나 희롱하지 못하리라. 그렇게 하면 쉽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려우니, 세속법이나 불법이나 모두가 우스꽝스러운 희론이다. 그러므로 노승은 이곳에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말해보라. 어디에 있는가를. 도롱이 걸쳐 입고 일천 봉우리 밖에 비스듬히 섰다가 물을 끌어대어 오로봉(五老峰) 앞 채소밭에 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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