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총림변영편" [叢林辨佞篇] / 귀운 여본(歸雲如本)스님
귀운 본(歸雲如本)스님은 남태주(南台州)사람이다. 할당 혜원(轄堂慧遠)스님의 법제자로 금릉 장간사(長干寺)에서 소산(疎山)으로 옮겨갔으며 도가 높다고 명성이 자자하였다. 과거에서 장원급제한 유요부(劉堯夫)는 일찍이 여본스님에게 도를 물어 의기가 투합하였다.
상당하여 법문하였다.
"뼈아픈 몽둥이 한 대 맞고 깨달으니 나무 위에선 쌍쌍의 물고기가 놀라 날뛰고, 한마디 말 끝에 자재하니 바위 위엔 죽순이 죽죽 뻗어오르다. 이에 쓸 것 없음을 써서 항상 끝없는 법륜을 굴리고, 할 것 없음을 해서 수없는 몸을 두루 나타낸다. 옛 사람은 힘을 써 볼 수 없는 곳에서 깨닫고 그림자 하나를 그어놓았다. 그리고는 하나의 달이 모든 물에 나타나고, 모든 강물의 달은 하나의 달 속에 있다고 말한다. 불법이 만일 이와 같다면 구름 나온 곳으로 돌아가고자 한들 무슨 일을 하겠는가? 대중스님이 잠자코 있자 주장자로 탁상을 내려치고서, "지금은 모두 분명히 앉아 있고 서 있는데, 일천 낚시꾼들이 낚시를 드리울 수 없는 곳, 그 자리에서 깨칠 수 있겠는가? 만일, 큰 바다가 만족할 줄 알면 모든 강물이 거꾸로 흐르게 될 것이다" 하고는 법좌에서 내려왔다.
그는 `총림변영편(叢林辨佞篇)"을 지었는데, 꼬리를 흔들면서 아첨하거나 환심을 사려는 당시의 무리들을 풍자한 글로서, 문장과 의미가 뛰어나며 원극 언잠(圓極彦岑)스님이 발문을 썼다. 대중에 들어오는 후배라면 이를 몰라서는 안될 글로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 조정의 정국공(鄭國公) 부필(富弼)은 투자 수옹(投子修顒)스님에게 도를 물었는데, 서간문이며 게송이 무릇 열네 두루마리가 되며, 태주 홍복사(鴻福寺)양 회랑벽의 사이에 새겨 놓았다. 이것으로써 선배들의 법을 주관함이 준엄하였고, 왕족 귀인들의 도를 믿음이 독실하였음을 또렷이 볼 수 있다. 정국공은 사직의 중신(重臣)으로서 만년에 이르러 갈 곳을 앎이 이와 같았으며 수옹스님은 보통 스님보다 뛰어난 인물이었다. 정국공은 스스로 "수옹선사에게 깨우침을 얻은 바 있다"고 말하였다.
사대부 가운데 참으로 불도를 믿고 능히 나이를 잊고 세도를 부리지 않고서, 맹렬하고 예리하게 분발하여 반드시 깨우침 얻으리라고 기약한 사람으로는, 시랑(侍郞), 양대년(楊大年), 도위(都尉)이화문(李和文)등이 있는데, 광혜 원련(廣慧元璉)과 석문 온총(石門蘊聰)및 자명(慈明:石霜楚圓)노스님들을 친견하여 격려받고 글을 주고받았던 사실이, 여러 선서(禪書)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으며, 양무위(楊無爲)는 백운 수단(白雲守端)스님에게, 장무진(張無盡)은 도솔 종열(兜率從悅)스님에게 사사하여 모두 관문의 요소를 두드려 철저히 근원을 파헤쳤는데, 이는 구차스럽게 한 것이 아니었다.
근세에 이르러서는, 시랑(侍郞) 장무구(張無垢), 참정(參政) 이한노(李漢老), 학사(學士)여거인(呂居仁)등이 모두 묘희(妙喜)노스님을 친견하여 도의 경지에 올라 세속(方外)의 도우(道友)라 일컫는다. 그들은 사랑과 미움 거슬림과 순탄함을 깡그리 휩쓸어버리고 세속의 구애와 거리낌을 벗어났으니, 보는 사람은 옷깃을 여미고 그를 경외하여 그들 경지의 테두리를 엿볼 수 없다.
그러나 사대부 가운데에는 그저 한가하고 고요한 곳을 찾아 마음을 선적(禪寂)에 멈추고자 하는 자는 본래의 `유(有)'를 발휘해 낼 뿐이다. 후세에 이르러 예컨대 큰스님의 모범은 보지 않고 오로지 아첨을 일삼아 아무쪼록 세상에 나아가기를 구하여, 무릇 주지로서 이름을 드날려 장로(長老)라 하는 자들이 이따금씩 명함에까지 어느 문파의 승려라고 기록하며 앞 사람들을 받들어 은부(恩府)라 하고서 사찰의 소유물을 꾸러미로 싸가지고 관가에 아첨하여 올리니, 식견이 있는 자들은 가엾은 마음으로 그를 비웃는 데에도 그들은 전혀 부끄러움을 모르고 있다.
아! 우리 총림의 승려는 하나의 병, 하나의 발우만을 들고서 구름이 흘러가듯 새가 날듯 떠도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추위와 굶주림의 절박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녀가 있어 구슬이며 비단에 연연할 것이 없는 데에도, 허리를 굽혀 빗자루를 움켜쥐듯, 허리가 시큰하도록 하니 스스로가 모욕되고 비천한 일을 이처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들이 은부라 일컫는 것은, 개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지 아무런 근거도 없는데, 부질없는 못난 이가 앞에서 소리치면 백 사람의 못난 이들은 그 뒤를 따르며 `예, 예'하며 다투어 받들 듯하니 스스로 왜소해질 뿐이다. 이처럼 부처의 가르침을 깎아내리는 데에 있어서 아첨하는 사람보다도 더한 자는 없을 것이다. 아첨하는 데 잽싸게 잘한 자는 실제로 간사할 속임수의 조짐이다. 비록 단정한 군자일지라도 교묘히 그들의 함정에 들어가면 몸이 불의에 빠지게 되고 덕을 잃고 구제할 수 없게 되니,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법을 파괴하는 비구는 삿된 마귀의 기운들이 한 몸에 모여 미치광이처럼 거짓된 일을 태연자약하게 하며 속임수로 선지식인 척 모습을 나타내어 선림의 큰스님들을 들먹거리면서 스승이라 하고, 요로의 귀족에게 종문의 권속이라 아첨하며, 바라지도 않는 존경을 떠받치면서 불법을 파괴하는 실마리를 열어주고 나아가 백의서생(白衣書生)이 선상(禪滅)에 올라가도 그 아래에서 절을 하여 성인의 제도를 어기고 종풍을 크게 욕되게 한다. 우리 불도의 쇠퇴함이 지극하여 여기에 이르렀도다. 아 슬픈 일이다. 이는, 하늘에서 그를 죽이고 귀신이 그의 죄를 기록할 만한 큰 죄악이니, 만번 죽는다 한들 어떻게 그 아첨의 죄를 속죄할 수 있겠는가?
설숭(明敎契嵩)스님의 `원교론(原敎論)"에 이런 말이 있다.
"옛 고승은 천자를 만나도 이름을 이야기하지 않으며 편지나 문서를 쓸 때 공(公)이니 사(師)이니 라고 말한다. 종산 승원(鍾山僧遠)스님은 황제의 가마가 산문에 이르렀는데도 선상에 앉은 채 산문 밖에서 맞이하지 않았으며 호계 혜원(虎溪慧遠)스님은 천자가 심양(尋陽)까지 이르러 조칙을 내렸는데도 산문 밖을 나가지 않았다. 세상사람들은 그들의 인품을 가상히 대하였고 그들의 덕을 존경하였으니 이 때문에 당시 성인의 도가 세상에 떨쳤다. 후세에 이르러서는 고승을 추앙한다 하는 자들이 벼슬하는 자와의 사귀는 모습을 보면, 못난 선비의 예우를 받는 데도 미치지 못하여 그들의 출신이나 처신은 "못난 선비들이 스스로 만족하는 경지만도 못하다."하였으니 하물며 승원스님처럼 천자를 만날 수 있으며 또한 혜원스님처럼 태연자약할 수 있겠는가? 이러고서도 우리 불도가 흥성하고 우리의 도가 닦여질 수 있겠는가? 가르침이 있더라도 뒤따르는 사람이 없다면, 가르침이 있다 한들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이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귀운스님은 희령(熙寧)5년에 입적하였다. 이 책에서는 불법이 쇠퇴되어 이를 짊어질 사람이 없음을 몹시 걱정하여 자못 파순(波旬:慾界 六天의 마왕)을 대한 듯하였다.
오늘날 우리의 법문에 들어와 아첨하여 자신의 생각이 이뤄졌다 생각하는 것은 마치 사자의 몸에 벌레가 일어 사자의 몸을 갉어먹는 것과 같으니 어찌, 이 책을 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수능엄경"에 의하면, "내가 입멸한 뒤 말법 속에는 이처럼 요사스러운 자가 많아 세간에 성하여, 남 모르게 간악한 마음으로 속임수를 쓰면서 선지식이라 일컬을 것이다" 하였으며, 또한 "어느 도적놈이 나의 옷을 빌어 입고 여래를 팔고 갖가지 악업을 짓는다"하였으니 모두 입으로는 불법을 말하지만, 이는 출가하여 계율을 지키는 비구가 아니라 소승의 도를 행하는 자들이다. 이로 말미암아 한 없는 중생에게 의심을 안겨주고 무간(無間)지옥으로 떨어지게 한다.
순희(淳熙)정유(1077)에 내가 현은사(顯恩寺)의 주지를 그만두고 평전(平田) 서산(西山)이라는 작은 산 언덕에 살면서 요사이에 보고 들은 일들이 거짓이 많고 옛 가풍을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비록 나의 말이 이 세상에 무겁고 가벼운 것이 될 수는 없겠지만 다만 이 글을 적어 스스로를 경계하는 바이다.
귀운 여본(歸雲如本)씀.
원극 언잠스님의 발문은 다음과 같다.
부처님의 세상이 멀어짐에 따라 바른 법은 엷어지고 풍속과 행동이 잡되어 못하는 일이 없게 되었다. 선배스님들은 돌아가시고 후세 사람 가운데는 뛰어난 이가 없어 총림의 규범이 거의 땅바닥에 떨어진 형편이다. 설령 이를 붙잡아 구하려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도리어 그를 오랑캐라 생각한다.
내가 소산(疎山)여본스님의 `변영(辨佞)"이라는 글을 보니 문장이 심오하고 의미가 드넓어 간절하고 명백하니, 총림의 병폐에 대하여 지극한 일침을 가하고 있다. 부질없고 못난 무리들은 아는 게 없어 사악하고 아첨한 데에 마음이 취하여 있으니, 반드시 제호(醍醐)를 독약이라 여길 것이다.
'총림성사(叢林盛事)' 카테고리의 다른 글
54. `빈 골짜기'라는 호를 가진 가난한 스님 / 송 공곡(竦空谷)스님 (0) | 2008.02.25 |
---|---|
53. 효종황제에게 종문사를 일깨우다 / 나암 도추(懶菴道樞)선사 (0) | 2008.02.25 |
51. 정수리에 뼈가 솟다 / 지책 도독(智策塗毒)스님 (0) | 2008.02.25 |
50. 법을 잇길 바랬지만 / 불조 덕광(佛照德光)스님 (0) | 2008.02.25 |
49. 여러 선지식을 천거하여 부처의 혜명을 잇다 / 이덕매(李德邁) (0) | 2008.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