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빈 골짜기'라는 호를 가진 가난한 스님 / 송 공곡(竦空谷)스님
송 공곡(宛空谷)스님은 여항(餘杭)사람이며 상전 연(象田演)스님의 회하에서 유나(維那)일을 맡아보았다. 그의 인품은 청백하고 고고하여 몹시 가난한 생활을 꾸리며 겨울이면 갈대꽃으로 이불을 삼아 덮었으니 본색 납자가 아니라면 결코 이처럼 살지 못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상전 연 스님은 그의 법명 `공곡(空谷)'에 대하여 송하였다.
골짜기 비고 비어 골골마다 비고 비었구나
텅 빈 골짜기 온갖 만상 초월하니
흐르는 물 떨어지는 꽃잎마저 전혀 보이지 않는데
맑은 바람 밝은 달이 어우러졌구나.
谷空空谷谷空空 空谷全超萬象中
流水落華渾不見 淸風明月却相容
그는, 뒷날 천동사(天童寺)에 있었는데 개울가를 따라서 자그마한 집을 짓고 조고암(弔古庵)이라 이름하였다. 많은 도반들은 그의 풍류놀이를 따라 즐겼는데, 나는 그 당시 옥궤암(玉几菴)졸암 덕광(拙菴德光)노스님 회중에 있으면서 송을 지어 그에게 보냈다.
듣자하니 그대 산기슭에 집을 짓고
저 멀리 용추사 야거나한1)
을 조문한다지
굳이 깊은 산골에 몸을 숨기지 말고
한번 발길을 돌려 맑은 물결로 나와 보게나
빈 골짜기 노래가 전해오나 사람 이르기 어렵고
문 닫으니 산 꽃같은 눈마저 휘날리지 않네
내, 가을바람이 골짜기를 말끔히 쓸어버릴 때
명아주 지팡이 짚고 산천경계를 즐겨보리라.
聞君縛屋傍山阿 遠弔龍湫諾詎羅
未必將身潛碧嶂 且圖蹺足向淸波
韻傳空谷人難到 門掩山華雪不過
我待秋風洗巖壑 杖藜相與傲烟蘿
송스님의 맑은 기상은 뼈 속까지 사무쳐 마침내 산안개 산노을을 즐기는 고질병이 되었고, 마침내 태백산에서 세상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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