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묘도도인(妙道道人)의 법문
묘도도인(妙道道人)은 연평(延平) 황씨(黃氏)의 딸이다. 여러 큰스님을 두루 친견한 후 경산(徑山)에서 묘희스님을 찾아뵈었다. 한번은 묘희스님이 방장실에서 어느 스님에게 묻기를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자 그 스님은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마침 묘도도인이 문밖에서 이 말을 듣고 환하게 깨친 바 있어 묘희스님께 아뢰자 "화살이 뽕나무에 꽂혔는데 닥나무에서 즙이 나왔군!"하며 깨친 바를 인가해 주었다.
후일 그는 홍복사(洪福寺)의 개당 법문에서 대중에게 설법하였다.
"선이란 뜻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니, 뜻을 세우면 종지에 어긋난다. 도란 공훈과는 동떨어지니, 공을 세우면 도의 분수를 잃게 된다. 소리 밖의 말을 생각 속에서 구하지 말고 조용(照用)의 기틀을 지니고 불조의 감추(金甘鎚)를 쥐고서 부처가 있는 곳에선 서로 손님과 주인 되고 부처가 없는 곳에서는 바람이 냉랭하다. 마음이 편안하고 생각이 태연하면 메아리는 순조롭게 소리에 화답하니, 말해보라. 이와 같은 사람은 어느 곳에 있는가를……"
한참동안 말없이 있다가 송하였다.
도롱이 걸치고 천 봉우리 밖에 비껴 섰다가
오노봉 앞 채소밭에 물줄기 끌어주다.
披簑側立千峰外引水澆蔬五老前
또다시 설법하였다.
"눈썹을 치켜 올렸다 내렸다 하는 잘못은 눈뜨고 침상 위에다 오줌싸는 격이요, 현성 공안을 함부로 쓰는 것은 꾀 많은 계집아이가 정조를 잃은 격이라, 도무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것이며, 신령한 거북이가 꼬리를 질질 끄는 일이다.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라' 함은 허공에 못질하는 것이요, 부서진 집을 떠난다 해도 오히려 썩은 물 속에 잠겨있는 용과 같은 꼴이다. 깊은 물을 쏟고 높은 산을 무너뜨리는 한마디를 어떻게 말할까? 거령(巨靈:黃河의 水神)이 손을 올리는 것은 대단찮은 일이나 화산(華山)을 천겹만겹 산산조각 내었노라."
후일, 수암(水菴師一)스님은 한 스님이 이 법문 거론하는 걸 보고서 손을 이마 위에 얹고 먼곳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이 일은 남녀 등의 상(相)에 관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대장부들이 10년이고 5년이고 대중 가운데 살며 캐보아도 알지 못한 경지이다. 그는 비록 여인이지만 의젓이 대장부의 일을 해내었으니, 수많은 엉터리 장로들보다도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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