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강원에 있는 원오스님에게 처음 행각을 권하다 / 승상 범백재(范伯才)
원오(圓悟克勤)스님이 처음 성도(成都) 강원에 있을 때, 승상 범백재(范伯才)가 스님의 그릇이 비범함을 보고서 장편의 글을 지어, 그에게 남방으로 행각의 길을 떠나도록 격려해 주었는데 그 글은 다음과 같다.
물을 보려거든 더러운 연못물을 보지 말라
더러운 연못물에 사는 고기와 자라는 천하기도 하다
산을 오르려거든 낮은 산일랑 오르지 말라
낮은 산엔 초목마저 흔치 않다
물을 보려거든 곧장 넓은 바다를 보고
산을 오르려거든 곧바로 태산 정상에 올라가거라
얻은 바 적지 않으려니와 보는 바 드높으리
이처럼 힘을 다함이 헛 노력이 아니라
남방엔 다행히도 부처 뽑는 곳 있나니
그곳에서 오묘한 뜻을 깨침이 좋으리라
후일 큰그릇 되어 무너진 기강 바로 잡는다면
대장부 출가의 뜻 저버리지 않게 되리
대장부여! 머뭇거리지 말라
어이하여 헛된 이름을 위하여 몸을 망치려 드는가
즐겁게 떠들며 놀 때는 고생 많지 않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덧없는 세월 흘러간다
성도 땅이란 더구나 번화한 곳이니
이곳에 오래 머무는 건 계집과 술의 유혹 때문
우리 스님은 본디 티끌 세속 벗어난 인물이니
악착스런 소인배와 어울려 묻히려 하겠는가
우리 스님 다행히 높은 뜻이 있으니
결코 흙탕물에 헛딛지 않으리라
그대는 보지 못하였나
배를 삼키는 고기는 작은 여울에 몸을 숨기지 못하고
아름드리 나무가 어찌 벌거숭이 동산에 살 수 있겠나
붕조(鵬鳥)한번 나래치면 구만리 날아가는데
제비며 갈매기 따위와 함께 날으려 하는가
쏜살같은 천리마로
옛 가지 연연하는 뱁새를 본받지 마오
설령 그대가 수많은 경전을 논하여도
선종의 두번째 기틀[第二機]에 떨어지리라
흰 구름은 본디 높은 누대 그리워하여
아침 저녁 자욱하게 잠시도 흩어지지 않는 것은
온 백성 염원하는 비를 내려주기 위함일세
그때가 되면 한가히 산을 나오게나
그대 또한 보지 못하였나 형산의 아름다운 옥석은
뛰어난 옥공을 만나기 전엔 덤풀 속에 버려져 있었음을
그당시 초나라를 떠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진나라의 열 다섯 성보다도 값이 높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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