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무주(婺州) 영응사(靈應寺)의 강주
무주(婺州) 영응사(靈應寺)강주 법정(法淨)스님은 후배에게 주지를 빼앗기고 섭승상(葉丞相)에게 이 사실을 알려 구원을 청하였다. 그러자 섭승상이 다음과 같은 회신을 보내왔다.
"사람을 보내 편지를 주신 정성에 감사드립니다. 스님과 저는 지난 세상부터 인연이 있고 한 고향 사람임을 잘 알고 있으며 누가 물으면 같은 고향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나는 스님의 본분이 강백이며 영응사에 주지하는 40년 동안에 기왓더미만 쌓여있던 곳을 아름다운 사원으로 가꾸었고 금어(金魚)와 북소리가 일년내내 그치지 않게 했으므로 사원의 공양을 일으켰다고 자부할 수 있음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힘들여 짓는 보전(寶殿)이 준공되려는 즈음에 파계승 후학이 탐욕과 어리석은 마음을 일으켜 교묘한 계략으로 스님의 자리를 빼앗았으려 한다하니, 스님으로 하여금 빛나는 그 일을 끝까지 원만히 이루게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일은 세간의 생각으로 논한다면 까치집에 비둘기가 사는 격으로서,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스님의 본분으로 말한다면 나의 몸도 나의 것이 아니며 모든 법이 한낱 꿈이요 환상이니, 영응사라 하여 어찌 오래도록 스님 혼자만의 생활터전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옛사람이 말하기를 `머물 땐 외로운 학이 소나무 꼭대기에 차가운 날개를 쉬고 있는 듯하고 떠날 땐 조각 구름이 잠깐 세상에 스쳐가듯 한다'고 하였으니, 떠남과 머뭄에 깨끗이 처신한다면 무슨 매일 것이 있겠습니까.
머물려 해도 머물 것 없어야 바야흐로 떠나고 머물 줄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물며 물 한 모금 쌀 한 톨도 모두 전부터 생에 정해진 인연이니, 떠나가고 멈추는 일 또한 어찌 사람의 일이라 하겠습니까. 굳이 같다 다르다를 고집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만일 이처럼 경계를 명백히 깨닫지 못한다면 맨 끝에 가서 진창에 빠지는 꼴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번에 떠나시거든 푸른 소나무 아래 밝은 창가에 편히 앉아 꼼짝하지 않고 자신의 생사대사 인연을 깨닫는다면 정말로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만일 태수에게서 도움을 빌리려 한다면, 그것은 겨드랑이에 태산을 끼고 바다를 뛰어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만법이 모두 공(空)임을 깨닫는다면 스님에게 있어선 범인이 성인으로 탈바꿈되는 전기가 될 것입니다. 혹시라도 그렇지 않다면 허리춤을 싸 쥐고 어서 저 신부(新婦)나 맞으러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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