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般若心經)·성법스님

반야심경 / 성법스님

通達無我法者 2008. 2. 29. 08:23
고양시 용화사 성법스님 http://www.sejon.or.kr

⊙ 물질에서 진리를 찾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 법에서 수행방법으로

시고 공중 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 역무득 이무소득고
⊙ 수행방법에서 깨달음으로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 고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 고득야뇩다라삼먁삼보리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증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색불이공 공불이색 色不異空空不異色

이 시대의 수행방법들은 적절한가?

한국불교의 수행법은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 주류主流입니다. 간화선법이 아니면 죄다 사도邪道라고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스님도 있습니다.

이제부터 선사禪師들이 생각하기에는 천박하기 그지없는 '물질'이 수행에 어떤 직접적이고 깊은 영향을 주었는지를 밝혀 보겠습니다. 간화선看話禪 묵조선默照禪의 이해를 통해 이 문제에 접근하려 합니다.

묵조선은 지극한 마음으로 본성을 관찰하면 밝은 본성이 저절로 묘한 작용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을 근거로 하여 중국 송나라 때
조동종曹洞宗 굉지(宏智1091~1157)선사가 주창하였습니다.

묵조선법은 본래 '자성청정'自性淸淨의 신념을 기본 전제로 한 수행법으로, 자기 속에 내재하는 본래의 청정한 자성에 의지하는 선禪 수행법입니다. 즉, 묵좌默坐하는 것만이 지혜의 작용을 활발히 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바른 길이라는 것입니다. 굉지선사는 이 묵조법의 원천이 달마대사에 있다고 분명하게 피력하였습니다.

반면 간화선은 같은 시대의 대혜(大慧 1089~1163)선사가 주창한 수행법인데, 큰 의문을 일으키는 곳에 큰 깨달음이 있다고 하여, 화두話頭를 수단으로 '자기'를 규명하려 하는 선법禪法 입니다. 그리고 이 큰 의문을 일으키기 위해 이른바 화두란 것을 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어느 선사에게 "불법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답 하길 '뜰 앞의 잣나무', 혹은 '마른 똥 막대기'하여 버립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일체의 생각의 논리에서 벗어나 오직'왜?'라는 의심만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지금까지도 가장 애용되는 화두로는 조주趙州 선사의 '무'無 자 화두를 들 수 있습니다. 어느날 한 스님이 조주에게 '일체의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 했으니, 개 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라고 묻자
조주가 없다 즉
'무' 라고 답한 데서 온 화두입니다.

그런데 이에 화두를 받은 수행자가 만약 '왜 유독 개에게만 없다는 말씀입니까?' 라고 반문한다면 그는 간화선을 하기에는 기본자질 미달감 입니다. '분명히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데 어찌 없다고 답하였을까? 도대체 '왜?' 라는 큰 의문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리고 그 큰 의문인 '왜'가 , 화두가 되는 것입니다.

이 화두는 공안公案 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에서도 중국인의 사고를 엿볼 수 있습니다. '공안' 즉, 공기관인 관청의 결의안은 백성이 무조건 따라야 하듯이 공안 즉, 화두도 무조건 이의를 제기하지 말라는 공고인 것입니다. 이 공안은 1700가지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한 스님이 공안과 화두를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의 설명이면 두 선수행법을 비교하기에 충분할 것 같습니다. 당시에도 두
선법禪法의 대립은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대혜가 굉지를 맹렬히 비난하여 묵조선을 사선邪禪이라고까지 몰아 붙였을 정도이니까요. 어찌되었건 그 후 묵조선은 거의 사라지고 간화선이 활짝 꽃을 피웠으니 간화선이 승리한 듯 합니다.

논쟁이 시작된 지 천 년이 지난 지금 이제 제가 감히 개입해 보겠습니다. 제가 터득한 묵조선과 간화선의 차이입니다. 번뇌를 '번뇌'로 다스릴 수('다스리면' 이라고 하지 않은 것에 유념하셔야 합니다) 있으면 묵조선, 번뇌를 '화두'로 다스리면 간화선. 간단합니다.

이제 이 논쟁의 핵심이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아니, 그냥 평범한 '물질'과 어떤 인과가 있는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묵조선을 부정하는 이도 중국에 불교를 전하고 이후 한국불교에 절대적 영향력을 주고 있는 분이 중국 선불교의 초조初祖인 달마대사 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또, 왠 만큼 불교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달마가 소림사에서 9년 간 면벽좌선面壁坐禪 했음을 다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입니다. 초조 달마에서 육조 혜능까지 선불교의 법맥을 전수받은 분들은 간화선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분들은 묵조와 간화의 논쟁 이전 즉, 굉기와 대혜 보다 적어도 500년 전의 분들입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간화선 아니면 사도라 했던 대혜의 한 마디에, 초조 달마에서 육조 혜능(638~713)까지 여섯 분은 졸지에 불법이 아닌 외도 수행을 한 분들이 되어 버리는 심각한 모순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한편 묵조선의 창시자인 굉지선사는 500여 년간 이어져온 전통적 수행법을 이어받았다고 '확신'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그 판단이 전적으로 오류였다는 결정적 증거도 없습니다.

같은 시기에 간화선을 주창한 대혜가 간과한 점은 묵조선을 공박할 것이 아니라, 묵조선으로는 깨달음을 추구하기 힘들어진 물질주의에 물든'세상'을 탓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굉지의 묵조법은 달마시대의 수행법을 원형原形으로 삼았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 달마는 대혜보다 500년이나 앞선 시대에 수행한 분이었고 당시는 물질적으로 아주 부족했던 시절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달마시대에는 선수행을 할 때 일어나는 번뇌도 본능적 욕구와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을 해결하는 이외에는 다른 물질적, 사회적 장애가 별로 없었을 것이라 짐작해도 무리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마음만 잘 다스리면
(묵조) 깨달음에 이를 수 있었을 테지요.

반면에 대혜는 달마보다 문명이 발달한 시대, 다시 말해 물질적으로 상당히 번잡해진 시대를 맞게 되었습니다 . (아무리 옛 일이라 해도 500년의 물질적 변화는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단순히 먹고, 입는 것을 걱정하는 것 외에 다소 풍족해진 물질에 대한 상대적 욕심과 정치적, 사회적 변화에 대한 걸리적거림이 비교할 수 없이 많아졌을 것입니다. 자연히 번뇌가 더 많고 복잡해져,
'마음대로' 안 되니 번뇌를 조복해줄 강력한 '무기'가 필요했던 것이고. 대혜는 그 무기로 '화두'를 선택한 것입니다.

번뇌를 다스려 궁극적 깨달음을 얻기 위한 무기인 화두가 창, 칼 시대에서 수소폭탄 중성자란 시대로 접어든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지에 대해서는 또 다른 접근이 필요하므로 판단을 접어두겠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 , 이번에는 제가 겪고 있는 경험으로 비유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처음 출가한 70년대 후반에는 스님들끼리 모여도 외적으로는 차이날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무리 풍족한 절에 사는 스님이라도 컴퓨터도 없고, 휴대폰도 없고, 자가용은 더욱 없다보니, 서로를 비교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세대인 30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이제는 스님들이 모이면, 누구는 차를 바꿨느니, 누구는 몇 층 빌딩을 포교당으로 쓰고 있느니, 누구는 매스컴 탔느니, 누구는 몇 억 불사를 했느니 하며 사회적 물질적 조건으로 서로를 비교하는 게 현실입니다.

이 말은 수행자가 다스려야 할 '번뇌'가 30년 만에 갑자기 많아졌다는 말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 정도는 출가자에게는 번뇌의 증가라고 말할 가치도 없다고 하실지 모르지만 적어도 저는 번뇌의 폭주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

이제 제가 앞서 말한 묵조선과 간화선의 차이를 다시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번뇌를 '번뇌'로 다스릴 수('다스리면' 이라고 하지 않은 것에 유념하셔야 합니다) 있으면 묵조선, 번뇌를 '화두'로 다스리면 간화선. 이제는 아주 그럴 듯하게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세상이 바뀌어도 묵조해서 가능한 사람도 있다는 말이고, 화두로도 안 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견해이기도 한 것입니다.

마무리하면 불법을 논하면서 물질을 과소평가하거나, 마치 악의 원천인 듯이 몰아 붙이거나, 그 영향력을 애써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물질을,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색'色 '공'空으로 이해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머리가 복잡하니 좀 쉬어 가겠습니다.

역사상 가장 바보 같은 발언 10가지(간화선이 이런 처지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1. “개인적으로 집에 컴퓨터를 가지고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
  - 케네스 올센(Kenneth olsen) 디지털 이퀴프먼트사 설립자 겸 회장. 1977년
2.“비행기는 재미있는 장난감일 뿐, 군사적인 가치는 전혀 없다.”
  - 페르디낭 포슈장군. 프랑스 군사전문가. 세계 제1차대전 사령관.
3.“인간은 달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미래에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더라도.”
  - 리 드 포레스트박사. 오디온 튜브발명자. 라디오의 아버지. 1967년 2월 25일
4.“텔레비전은 처음 6개월이 지나면 시장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매일 합판으로 만든 상자를 보는데 지겨움을 느낄 것이다.
  - 대릴 자눅 20세기 폭스사 회장. 1946년
5.“우린 그들의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기타 몇 대가 자기 멋대로 치고 나온다.
  - 데카 레코드사. 비틀즈를 거부하며. 1962년
6.“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담배는 유익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 이안 맥도널드. LA 내과의사. (뉴스위크)에서
7.“전화는 통신수단으로 생각하기에는 너무 많은 결점이 있다. 이 기계는 탄생 순간부터 전혀 가치가 없는 물건이었다.
  - ‘웨스턴 유니언’ 내부문서.1876년
8.“지구는 우주의 중심이다.”
  - 프톨레미. 위대한 이집트 천문학자. 2세기
9.“오늘은 어떤 중대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영국 조지 3세의 글 중에서. 1776년 7월 4일(이날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날이다.)
10.“발명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발명되었다.”
  - 찰스 듀엘 미국 특허청장. 1899 (한국사회 조크 100/ 이슈투데이)

※ 성법스님 저서 '마음 깨달음 그리고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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