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불이공 공불이색 色不異空空不異色
물질과 문화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우리 모두의 희망입니다. 여기서 그 '잘'이 개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냐 하는 문제는 논외로 합니다. 지구는 약 46억년 전에 서서히 탄생했습니다. 최초의 인류는 적어도 250만 년 이전에 출현했고, 현생 인류의 조상은 약 3~4만 년 전에 출현하였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입니다.
하지만 '의미 있는' 역사는 불과 약 8천년 전인 기원전6000년 경에 시작된 신석기 시대라고 하는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여기서 '의미 있다'라는 말은 인간의 문화가 구체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는 뜻입니다. 신석기시대에 접어들면서 인류가 비로소 그럴듯한 도구를 사용하여 농경과 목축을 할 수 있었고, 그 결과 한 곳에 정착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는 것이지요.(다만 그레이엄 핸콕 같은 사람은 '신의 지문', '신의 암호', '우주의 암호' 같은 저서에서 일관되게 적어도 1만2천년 전에 초고대문명이 존재 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주장은 현재 발견된 유물과 고고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만만치 않은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실제로 기원전 수 천년 전에 제작된 것이 확실한 유물들 중에는 현대의 과학으로도 만들기 쉽지 않은 유물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제가 하고 싶은 말의 요점은 문화나 문명도 결국은 물질을 다루는 법에서 비롯되고 발전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자체가 인류의 역사로 쌓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인가를 만들고 개량하려한다'는 인간만의 중요한 특징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의 진화론적 발전은 인류의 힘의 원동력이고,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하게 하는 강한 동기부여이기도 합니다. 이 물질을 다루는 기술을 과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또 한번 물질에 대한 배타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한국불교에 진지하게 문제제기를 해봅니다.
※ 성법스님 '마음 깨달음 그리고 반야심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