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14칙 운문의 일대시교를 대함〔雲門對一說〕

通達無我法者 2008. 3. 3. 07:44
 

 

 

제14칙 운문의 일대시교를 대함〔雲門對一說〕


(본칙)

어떤 스님이 운문(864~949)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부처님의 일대시교(一代時敎)입니까?”

-오늘에 이르기까지 알 수 없다. 강사스님은 모른다. 언어문자의 소굴이로다.


운문스님이 말하였다.

“상황에 따라 말씀하신 것이다.”

-구멍 없는 철추이다. 산산조각 났구나. 늙은 쥐가 생각을 씹고 있는 꼴(먹을 수 없는 물건)이군.


(평창)

선(禪)에서 불성(佛性)의 뜻을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시절인연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는 교밖에 따로 전하고, 오로지 마음의 도장을 전하고,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키고, 성품을 보아 성불케 함이라 한다. 석가 노인이 49년간 세상에 머무르시면서 3백 6십 회에 걸쳐 돈교(頓敎)․점교(漸敎)․권교(權敎)․실교(實敎)를 말씀하셨는데 이를 일러 일대시교(一代時敎)라 한다. 이 스님이 이를 들어 묻기를 “무엇이 일대시교입니까?”하나, 운문스님은 무엇 때문에 이러쿵저러쿵 해설해주지 않고 도리어 그에게 “상황에 따라 말씀하신 것이다”라고 말했을까? 운문스님은 평소 한 구절 속에 반드시 세 구절〔三句〕을 갖추어 놓았는데, 이를 하늘을 덮고 땅을 싸버린 구절〔函蓋乾坤句〕, 파도를 따르고 물결을 쫓는 구절〔隨波逐浪句〕, 많은 흐름을 끊는 구절〔截斷衆流句〕이라고 한다. 놓아주기도 하고 잡아들이기도 하여 자연히 기특하다. 이는 마치 못을 자르고 무쇠를 끊은 것과 같아서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이치로 이해하거나 헤아리지 못하도록한 것이다.

이는 옛사람의 뜻이 이같지 않았다는 것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러므로 “뼈가 가루되고 몸이 부서져도 은혜를 다 갚지 못하나 한 구절을 밝게 깨치면 그 공덕 백억 배나 뛰어넘는다”고 하였으니, 참으로 기특하기도 하다. “무엇이 일대시교입니까?”라 하자, 단지 그저 “상황에 맞게 말씀하신 것이다”고 말했을 뿐이다. 만약 대뜸 깨치면 곧 (본래의 자기) 집에 돌아가 편히 앉아 쉬겠지만, 깨닫지 못하면 다시 엎드려 판결을 받아야 한다.


(송)

상황에 맞게 하신 말씀

-팔팔하구나. 말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참으로 고준하다.


너무나 고절(孤絶)하다.

-옆에서 보는 사람이 오히려 잘 알 수 있다. 어찌 천 길 벼랑 위에 서 있는 정도에 그치겠으리요! 어찌 이러한 일이 있겠는가?


구멍 없는 철추로 거듭 쐐기를 박았구나.

-겉모습과 명칭을 잘못 알았군. 운문 늙은이도 (쓸데없이) 진흙 속에서 흙덩이를 씻고 있는데 설두 또한 한술 더 뜨는군.


염부제나무 아래에서 껄껄대며 웃으니,

-이 고을 저 고을 (둘러보아도) 일찍이 이런 놈을 보지 못했다. 같은 길을 걷는 자만이 알 것이다. 몇 사람이나 알 수 있을는지.


어젯밤 검은 용의 뿔이 요절났구나.

-검은 용이 뿔이 꺾였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누가 본 사람이 있는가? 증명할 수 있느냐? 벙어리.


별나고도 별남이여!

-찬탄도 분수가 있어야 한다. 설두라야 비로소 할 수 있다.


소양 늙은이(운문스님)가 용의 뿔 한 조각 얻었도다.

-어느 곳에 있느냐? 그 말뚝을 누구에게 줄려고? 덕산과 임제라도 또한 삼천 리 밖으로 내뺄 것이다. 말뚝이 다 뭐냐! 쳐라.


(평창)

“상황에 맞게 말씀하심이여! 너무나 고절(孤絶)하다”라 했으니, 제아무리 설두스님이라도 이루 다 찬탄할 수 없다. 이 말은 홀로 초탈하여 높고 높아 앞사람보다도 빛나고 뒷사람도 견줄이 없다는 것이다. 마치 만 길 벼랑과도 같고, 또한 백만 대군이 진을 치고 있는 것처럼 들어갈 곳이 없고 몹시 높고 위험할 뿐이다. 옛사람은 말하기를 “간절히 깨치고자 하면 물음을 가지고 묻지 말라. 물음은 답에 있고, 답은 물음에 있다”하였는데, 바로 이것이 고준(孤峻)한 것이다. 말해보라, 어느 곳이 고준한 곳인가를, 천하 사람들이 쩔쩔매는구나. 이 스님 또한 작가 선객인지라 이처럼 물었으며, 운문스님도 이처럼 답하였던 것이니, 이는 구멍 없는 철추로 거듭 쐐기를 박는 것과 너무도 닮았다.

설두스님은 언어문자를 쓰는 솜씨가 매우 정교하다. “염부제나무 아래에서 껄껄대고 웃는다” 송했는데, 염부제나무에 대해서는「기세경(起世經)」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수미산 남쪽 언덕에 폐유리(吠琉璃)나무 그림자가 염부주(閻浮洲)에 비치는데 모두 푸른빛이다. 이곳 염부주에서는 이 큰 나무를 염부제(閻浮提)라 한다. 그 나무는 가로가 7천 유순(由旬 : 40리 또는 30리의 거리 단위)이며, 그 아래에 염부단(閻浮檀)금괴가 있는데 그 높이는 20유순이다. 황금이 나무 아래에서 나오기에 염부수(閻浮樹)라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설두스님은 말하기를 “그가 염부제나무 아래에서 껄껄대고 웃는다”했는데, 말해보라, 그가 웃는 뜻이 무엇인지를. 그는 어젯밤에 뿔이 꺾인 검은 용을 보고 웃은 것이다. 참으로 제대로 운문스님을 받들어 칭찬하고 있다고 하겠다.

운문스님이 “상황에 맞게 하신 말씀이다”하였는데, 이는 무엇과 같다고 할까? 검은 용의 뿔이 요절난 것과 같다. 여기에 이르러 이러한 일이 없었다면 어떻게 이러한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설두스님이 일시에 송을 마치고 끝에서 문득 “별나고 별남이여. 소양노인(운문스님)이 뿔 조각 하나 얻었다”고 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전체를 얻었다 말하지 않고 조각 하나만을 얻었다고 한 것인가? 말해보라, 저 뿔 한 조각이 어디에 있는가를. 겨우 제2의제에 떨어진 사람이나 뚫을 수 있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