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12칙 동산의 삼 세 근〔洞山麻三斤〕

通達無我法者 2008. 3. 3. 07:41
 

 

 

제12칙 동산의 삼 세 근〔洞山麻三斤〕


(수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칼은 옛부터의 지도법이기도 하며 또한 이 시대의 요체이기도 하다. 만일 죽이는 것을 논하면 한 터럭 끝도 상하지 않으며, 살리는 것을 논하면 목숨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끝없이 초월해가는 길〔向上一路〕은 일천 성인도 전하지 못한 것인데, 배우는 사람이 원숭이가 물 속에 어린 그림자를 잡으려는 것처럼 애를 쓴다”고 했다.

말해보라, 이미 전하지 못했다면 무엇 때문에 잡다한 언어문자의 공안이 있는가를. 안목을 갖춘 이는 말해보아라.


(본칙)

어떤 스님이 동산(910~990)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쇠 가시로다. 천하의 납승들이 뛰어도 벗어나지 못하리라.


동산스님이 말하였다.

“삼 세 근〔麻三斤〕이다.”

-분명히 떨어진 짚신이다. 괴목나무를 가리켜 (악담을 하고는) 버드나무를 꾸짖는 꼴이구먼. 저울질하는구나.


(평창)

이 공안은 꽤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다. 이는 참으로 씹기가 어려워 입을 댈 수가 없다. 왜냐하면 담박하여 맛이 없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은 부처에 대한 답변을 제법 많이 했다. 어떤 이는 “대웅전 안에 계신 분이다”라고 하였고, 어떤 이는 “삼십이상(三十二相)을 갖춘 분이다”라고 하였고, 어떤 이는 “장림산(杖林山) 밑에 있는 대나무 지팡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동산스님은 “삼 세 근”이라 하였으니, 참으로 옛사람의 혓바닥을 옴짝달싹 못 하게 했다고 하겠다.

사람들은 흔히들 이말 저말 둘러대어 “동산스님이 그때에 창고에서 삼〔麻〕을 저울질 하는데 어떤 스님이 이를 물었기에 이처럼 답하였다”하기도 하고, 또는 “동산스님이 동문서답(東問西答)을 하였다”하기도 하고, 또는 “그대가 부처인데 다시 부처를 물었기에 동산스님이 우회해서 답변하였다”하기도 한다. 더욱이 썩어빠진 놈들〔死漢〕은 한결같이 말하기를 “이 삼 세 근이 바로 부처이다”하니, 전혀 관계가 없다 하겠다.

너희들이 만일 이처럼 동산스님의 말을 더듬거렸다가는 미륵 부처님이 하생(下生)할 때가지 참구하여도 꿈에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말이란 도를 담는 그릇일 뿐인데, 옛사람의 뜻은 전혀 모르고 다만 말만 따지니 어찌 핵심이 있겠는가? 듣지 못하였는가? 옛사람의 “도란 본디 말이 아니나 말로 말미암아서 도가 나타나는 것이니, 도를 깨닫고 나서는 곧 말을 잊어야 한다”라는 말을. 이 뜻을 알려면 나에게 첫 번째 기틀〔第一機〕을 되돌려주어야 한다. 이 삼 세 근은 마치 장안(長安)에 쭉 뻗어있는 한 줄기의 큰길과 같아서 발을 들거나 내리거나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

이 화두는 운문(雲門)스님의 ‘호떡〔餬餅〕’화두와 더불어 한결같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은사 스님 오조(五祖)께서는,


싸구려 물건 파는 외통수

삼 세 근을 저울에 달아본다.

천백 년 동안 해묵은 재고품

어디에도 몸 둘 곳이 없네.


라는 송을 하였다. 그대가 망정(妄情)․육진(六塵)․뜻〔意〕․망상․헤아림․득실․잘잘못들을 한데로 쌓아 일시에 말끔히 없애버리면 자연히 알게 되리라.


(송)

금까마귀(해)는 급히 날고

-왼쪽 눈이 반 근. 재빠른 매를 쫓아갈 수 없다. (태양의) 불꽃 속에 비껴 누웠구나.


옥토끼(달)는 빨리 달아나네.

-오른쪽 눈을 여덟 냥이다. 달나라의 궁전에 소굴을 지었구나.


훌륭하게 응수했으니 어찌 경솔하게 건드렸으랴.

-두드리는 정도에 따라 종소리의 크기가 달라지는 것 같고, 골짜기의 메아리 같구나.


현상적인 것을 예로 들어서 상대방을 깨우쳤다고 동산을 이해한다면

-저울 눈금을 잘못 읽었구나. 원래 그대가 이렇게 읽은 것일 뿐.


절름발이 자라와 눈먼 거북이 빈 골짜기로 들어가는 꼴일세.

-꺼져라! 그놈이 그놈이군. (바로 네 놈이 아니라면) 누가 네 새끼를 쳐죽이겠는가?

꽃도 수북수북, 비단도 수북수북.

-두 번 거듭된 잘못이다. 한꺼번에 처단하는군. 여전히 그 모양이구먼.


남쪽 땅에는 대나무, 북쪽 지방은 나무이다.

-세 번 거듭되고 네 번 거듭된 잘못이다. 머리 위에 머리를 두었구나.


그리하여 장경(長慶)스님과 육긍대부를 회상하노니

-끼리끼리 노는구먼. 산승도 이러하고 설두스님도 이러하다.

‘마땅히 웃어야지, 통곡해서는 안된다’라 말할 줄을 알았구려.

-껄껄. 아이고, 오밤중에 더더욱 원한만 더하는구나.


아이쿠!

-쯧쯧. 이 무엇인고 (원오스님은) 후려쳤다.


(평창)

설두스님은 투철히 알아차렸기 때문에 벽두에서 “금까마귀는 급히 날고 옥토끼는 빨리 달아난다”고 하였다. 이는 동산스님이 “삼 세 근”이라고 대답한 뜻과 결코 서로 다르지 않다. 해가 뜨고 달이 지고 날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많이들 알음알이로 이해하여 그저 “금까마귀는 왼쪽 눈이고, 옥토끼는 오른쪽 눈이다”고 하며, 질문을 받으며 눈알을 부릅뜨고 “여기에 있다”고 하지만, 이와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이처럼 이해한다면 달마의 종지는 싹 쓸어 없어져버리리라.

그러므로 “사해(四海)에 낚시를 드리운 것은 사나운 용을 낚으려는 것이며, 격식 밖〔格外〕의 현묘한 기틀은 지기(知己)를 찾기 위함이라”하였다. 설두스님은 미혹을 벗어난 인물인데 어찌 이같은 견해를 내었는가? 설두스님은 핵심이 되는 곳으로 사뿐히 가서는 살짝 드러내보이어 그대들을 깨닫도록 해주고, 바로 설명하여 말하기를 “훌륭히 응수했으니 어찌 경솔하게 건드렸으랴!”고 하였다. 동산스님은 이 스님에게 경솔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이는 마치 종소리는 치는 대로 나고 골짜기가 메아리를 발산하는 것처럼 크고 작음에 따라 응하면서 감히 경솔하게 굴지 않은 것이다. 설두스님은 심장이며 간이며 오장(五臟)을 일시에 노출시켜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설두스님은 ‘고요한 가운데 훌륭한 응수’라는 송을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눈 앞에 보여주었으니

참으로 핵심을 찔렀구나.

용과 뱀은 판단하기 쉽지만

납자는 속이기 어렵네.

황금 철퇴는 그림자 번쩍이고 보검의 광채는 싸늘하기만 하다.

그대로 다가오니

어서 보아라.


동산스님이 처음 운문스님을 참방하자, 운문스님이 물었다.

“요사이 어느 곳을 떠나왔느냐?”

“사도(渣渡 : 강남성에 있는 나루터)에서 왔습니다.”

“여름에는 어느 곳에 있었는고?”

“호남 보자사(報慈寺)에 있었습니다.”

“언제쯤 그곳을 떠나왔느냐?”

“8월 25일입니다.”

“그대에게 세 방망이를 때리리니 승당으로 꺼져라.”

스님은 저녁나절에 입실(入室)하여 바싹 붙어서 운문스님에게 물었다.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이 밥통아! 강서와 호남에서도 그렇게 했겠구나!”

동산스님이 그 말에 크게 깨치고서 말하였다.

“제가 후일 인적(人迹)이 끊긴 곳에 암자를 세우고, 한 톨의 쌀도 저축하지 않고 한 포기 채소도 심지 않고서 항상 시방(十方)에 왕래하는 대선지식(大善知識)을 맞이하여 그들에게 (자기 본래면목을 얽어매는) 못과 문설주를 모조리 뽑아주고, 기름때에 절은 모자와 노린내 나는 적삼을 훌훌 벗어버려, 그들 모두가 그지없이 청정〔灑灑落落〕한 경지에서 할 일 없는 사람이 되게 하겠습니다.”

“몸은 야자(椰子)씨 만한게 주둥이는 커다랗게 벌리는구나.”

동산스님은 바로 하직하고 떠나갔다. 그가 당시에 깨달았던 바는 단박에 탁 튀어나온 것이니, 어찌 자그마한 견해와 같겠는가? 그후에 세간에 나와 납승을 지도했다.

“삼 세 근”이란 말을 여러 총림에서는 부처에 대한 답으로 알고 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라고 물으면, “장림산 아래 있는 대나무 지팡이” 또는 “병정동자(丙丁童子)가 불을 찾는구나”라고 대답했으니, 그저 모두들 부처와 관련지어 이러쿵저러쿵했을 뿐이다. 설두스님은 “동산스님의 ‘삼 세 근’을 만약 사(事 : 현상적인 것)를 말하여 상대의 근기에 맞춰준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마치 절름발이 자라와 눈먼 거북이 빈 골짜기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했다. 어느 세월에 (미혹에서) 헤어날 수 있을까?

“꽃도 수북수북, 비단도 수북수북하다”고 한 유래는 다음과 같다. 어떤 스님이 지문(智門 : 설두의 은사)스님에게 물었다.

“동산스님이 삼 세 근이라 말한 뜻은 무엇입니까?”

“꽃도 수북수북, 비단도 수북수북하다, 알았느냐?”

“모르겠습니다.”

“남쪽 땅엔 대나무, 북쪽 지방은 나무이다.”

스님이 되돌아와서 이를 동산스님에게 말씀드리자 동산스님은 “나는 그대에게 말하지 않고 대중에게 말하리라”고 대답하고 드디어 상당(上堂) 법문을 하였다.

“말로써는 사(事 : 현상적인 것)를 설명할 수 없고, 말로써는 눈앞에 당면한 문제를 딱 들어맞게 설명할 수가 없다. 말을 따르는 자는 죽게 되고 구절에 얽매이는 자는 흘리게 된다.”

설두스님은 사람들의 정견(情見)을 타파하고자 고의로 이를 인용하여 하나로 뭉쳐서 송을 하였다. 그런데 후인들은 도리어 정견(情見)을 내어 말하기를, “삼〔麻〕은 상복(喪服)이며, 대나무는 상주가 짚는 지팡이다. 때문에 ‘남방에서는 대나무 지팡이를 쓰고 북방에서는 나무 지팡이를 쓴다’하였으며, ‘꽃도 수북수북, 비단도 수북수북하다’는 것은 관(棺)의 머리쪽에 그려놓은 화초”라고 한다. 부끄러운 줄을 알까?

“남쪽 땅의 대나무 북쪽 지방의 나무”라 한 것과 “삼 세 근”은, 아야(阿爺)와 아다(阿爹 : 둘 다 아버지라는 뜻으로 남쪽에서는 爺, 북쪽에서는 爹라 한다)가 서로 같다는 것을 전혀 모른 것이다.

옛사람이 우리의 생각을 뒤집어주기 위해 하신 말씀은 결코 이같은 의도가 아닐 것이다. 바로 설두스님이 말한 “금까마귀는 급히 날고 옥토끼는 빨리 달린다”는 것과 똑같아서, 본래부터 이는 한결같이 여유있고 드넓다. 다만 황금과 놋쇠를 분별하기 어렵고 어(魚)자와 노(魯)자가 헷갈리는 것과 같을 뿐이다.

설두스님은 노파심이 간절하여 그들의 의심 덩어리〔疑情〕를 타파하고자 또다시 썩어빠진 놈들을 인도하였다. “그리하여 장경스님과 육긍대부를 회상하노라니, ‘마땅히 웃어야지 통곡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할 줄 알았네”라고 말했다.

그의 송을 논하여 보면 단지 처음 세 구절로 일시에 송을 끝마쳤다 하겠다. 나는 그대에게 묻노니, 똑 떨어지게 단지 “삼 세 근”이라는 한마디일 뿐인데, 설두스님이 도리어 수많은 언어문자를 말한 것은 자비의 마음이 각별하였기에 그랬던 것인가?

육긍대부(陸亘大夫)는 선주관찰사(宣州觀察使)가 되어 남전(南泉)스님을 참방하였으니 남전스님은 이미 돌아가신 뒤였다. 육긍이 남전스님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절에 들어가 제사를 지내다가 갑자기 껄껄대며 큰 소리로 웃으니, 원주가 그에게 말하였다.

“돌아가신 스님과 대부와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인데 어찌하여 통곡하지 않습니까?”

“말할 수 있다면 곡하리다.”

원주가 아무런 말이 없자, 육긍이 큰 소리로 곡하면서, “아이고, 아이고! 스님께서 세상을 떠나셨구나.”

그 후 장경스님이 이 소문을 듣고 말하였다.

“대부는 웃었어야지. 결코 통곡해서는 안 된다.‘

설두스님이 이 뜻의 핵심을 빌려 말하였다.

“그대가 이렇게 알음알이로 이해한다면, 참으로 웃어야지 통곡해서는 안 된다.”

이는 옳기는 옳으나 맨 끝에 한마디를 했으니 참으로 잘못했구나. 다시 “아이쿠!”라고 하였으나, 설두스님은 이를 완전히 씻어버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