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34칙 앙산의 오로봉〔仰山五峰〕

通達無我法者 2008. 3. 3. 09:38
 

 

 

제34칙 앙산의 오로봉〔仰山五峰〕


(본칙)

앙산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요즈음 어디에 있다 왔느냐?”

-천하 사람이 모두 (질문이) 똑같군. 그렇기는 하지만 물어봐야지. 바람결을 따라서 불을 놓는다. 평상시대로 대답해야 한다.

“여산(廬山)에서 왔습니다.”

-알찬 사람을 얻기 어렵군.


“오로봉(五老峰)을 가봤냐?”

-가느라고 어깨가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어찌 이런 잘못을 하는가?

“아직 가보지 못했습니다.”

-한 걸음 옮겼군. 얼굴을 붉히는 것은 바른 말을 하는 것만 못하다. 앞으로도 못 가고 뒤로 물러서지도 못한다.


“화상아, 아직도 산놀이를 못 했구나.”

-일삼는 것이 몹시도 많은 놈이다. 눈썹을 아꼈으면 좋으련만……. 이 늙은이가 너무도 서두르는구나.


운문스님은 말하였다.

“이 말씀은 모두 자비로움 때문에 한 차원 내려서 말씀을 하신 것이다.”

-살인도 활인검이로다. (그런 말을 한 사람이) 두세 명이다. 요컨대 산에 가는 길을 알려면 반드시 갔다와본 사람이어야 한다.


(평창)

사람을 시럼하는 핵심이 되는 곳은 입만 열면 바로 알게 된다. 고인(운문스님)은 “한량없이 도량이 큰 사람은 말의 이면에서 알아차린다”고 하였다. 정수리에 안목을 갖췄다면 듣자마자 귀결점을 알 것이다. 그들의 일문일답을 살펴보면 분명하고 또렷하다. 운문스님은 무엇 때문에 “이 말씀은 모두가 자비로움 때문에 한 차원 내려서 말씀을 하신 것이라”고 하였을까? 옛사람은 여기에 이르러 밝은 거울이 경대에 걸리고 밝은 구슬이 손아귀에 있는 듯하여, 오랑캐가 오면 오랑캐가 비치고 한족이 오면 한족이 나타나며, 파리 한 마리도 거울을 도망갈 수 없다고 하였다.

말해보라, 무엇이 자비로움 때문에 한 차원 내려서 말씀하신 것인가? 이는 험준하다 하겠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러서는 모름지기 이런 자라야만 비로소 말할 수 있다.

운문스님이 염(拈)하여 말했다.

“이 스님이 몸소 여산에서 왔는데, 무엇 때문에 ‘화상아! 아직도 산놀이를 못 했구나’고 말했을까?”

하루는 위산스님이 앙산스님에게 물었다.

“여러 총림에서 어느 스님이 찾아온다면 무얼 가지고 시험하려느냐?”

“제게 시험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대는 말해보아라.”

“저는 평소 스님이 찾아오면 불자(拂子)를 들고서 그에게 ‘다른 곳에도 이것이 있더냐?’라고 묻습니다.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가 다시 ‘이것은 그만두고, 저것은 어떠냐?’고 말합니다.”

“이는 향상인(向上人)의 수단이다.”

듣지도 못하였느냐? 마조스님이 백장스님에게 다음과 같이 물은 것을.

“어디에서 오느냐?”

“산 아래에서 옵니다.”

“오는 길에 ‘한 사람’을 만났느냐?”

“못 만났습니다.”

“왜 못 만났느냐?”

“만났다면 스님께 바로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어디에서 이런 소식을 얻었느냐?”

“제가 잘못했습니다.”

“내가 잘못했다.”

앙산스님이 이 스님에게 물은 것도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일찍이 오로봉에 가봤느냐?”고 말하였을 때 이 스님이 영리한 스님이었다면 “큰일났습니다” 라고 말했어야 할 것을, 도리어 “아직 가보지 않았다”고 하였다. 스님은 작가가 아니었는데, 앙산스님은 무엇 때문에 법대로 시행하여 많은 언어 갈등을 없애지 못하고, 도리어 “화상아! 아직고 산놀이를 못 했구나”라고 말하였을까? 그러므로 운문스님은 “이 말씀은 모두 자비로움 때문에 한 단계 낮추어서 말씀을 하신 것이다”고 하였다. 만일 한 단계 낮추지 않고 말을 하였다면 이와 같이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송)

한 단계 낮추었는지, 아닌지를

-머리 위에도 질편하고 발 아래도 질펀하다. 반쯤은 낮추고 반쯤은 올렸다. 그도 이와 같고 나도 이와 같다.

누가 식별할 줄 알랴.

-정수리에 진리를 아는 눈〔一隻眼〕을 갖추었구나. 스님은 식별할 줄 모르는구나.

흰 구름은 겹겹이 쌓이고

-천겹 만겹이다. 머리 위에 머리를 얹은 격이다.


붉은 해는 높이 솟았다.

-부서졌다. (보았다가는) 눈이 먼다. 눈을 떴다 하면 잘못된다.

왼쪽으로 돌아볼 틈도 없고

-눈먼 놈아. 여전히 할 일이 없어야지. 그대는 허다한 재주를 부려 무엇하려는가?


오른쪽으로 돌아보니 벌써 늙어버렸다.

-한 생각이 만년이로다. 지나갔다.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한산자(寒山子)를.

-문둥이가 짝을 끌고가는구나.


너무 일찍 길을 떠나

-빠르지 않다.


십 년이 되도록 돌아오질 못하고,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분명하다.


왔던 옛길마저 잊어버렸구나.

-너나 나나 자유를 얻었다. 한 수 용서해줬다. (원오스님은) 후려쳤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는 안되지.


(평창)

“한 단계 낮추었는지 아닌지를 누가 식별하랴”하였는데, 설두스님은 도리어 그의 귀착점을 알았던 것이다. 그는 여기에서 한번은 추켜올렸다 한 번은 깎아 내렸다 한 것이다. “흰 구름 겹겹이 쌓이고 붉은 해는 높이 솟았다”하였는데, 이는 “풀은 더부룩하고 연기는 자욱하다”는 것과 몹시 흡사하다. 여기에 이르러서는 실낱만큼 범부에 속하지 않고, 성인에게도 속하지 않는다. 온 법계에도 감추기 못하고 모두를 덮으려 해도 덮을 수 없다. 이는 이른바 ‘무심(無心)의 경계’이다. 추워도 차가운 줄 모르고 더워도 뜨거운 줄 모른다. 모두가 하나의 큰 해탈문이어서 왼쪽을 돌아볼 짬도 없고, 오른쪽을 쳐다보면 벌써 세월은 지나간다.

나찬(懶瓚)스님은 형산(衡山)의 석실(石室)에서 은거하였는데, 당(唐) 덕종(德宗)이 그의 명성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그를 맞이하려 하였다. 사신이 석실에 이르러 “천자의 조서가 내렸으니, 스님은 일어나 성은에 감사하는 절을 올리시오”라는 명을 하였다. 나찬은 쇠똥불을 뒤척거리며 토란을 구어 먹고 추위에 떨며 콧물을 턱까지 흘리면서 대답도 하지 않았다. 사신은 웃으면서,

“우선 스님께서는 콧물부터 닦으시지요.”

라고 하자, 나찬스님이 말하였다.

“내가 어찌 속인을 위해서 콧물을 닦는 짓을 하리요.”

그는 끝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사신이 돌아와 이 사실을 아뢰니, 덕종은 몹시 흠모하여 찬탄하였다. 그는 이처럼 맑고 고요하면서도 밝고 또렷하여, 남의 휘둘림을 받지 않고, 확실히 잡아들여 마치 무쇠로 주조한 자와 같았다.

선도(善道)스님 같은 이는 사태(沙汰)를 겪은 뒤에 다시는 승려생활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를 석실행자(石室行者)라 하였다. 그는 언제나 디딜방아를 밟으면서도 밟는 것마저 까마득히 잊었었다. 어떤 스님이 임제스님에게 물었다.

“석실행자는 밟는 것마저 잊고 있으니 그 뜻은 무엇입니까?”

“깊은 구덩이에 빠져 있느니라.”

법안(法眼)스님은 원성실성송(圓成實性頌)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이치가 다하고 알음알이마저 잊는데

어찌 비유조차 있겠는가.

필경 서리 내리는 밤

달은 고스란히 앞 시내에 떨어지네.

과일이 익으니 원숭이 따라 살찌고

산이 깊으니 길이 아득하구나.

고개를 들어보니 낙조가 지는데

원래부터 서방에 살았었구나.


설두스님은 말하기를, “그대 보지 못하였는가 한산자를. 너무나 일찍 길을 떠나 십 년이 되도록 돌아오질 못하고, 왔던 옛길마저 잊어버렸구나”하였다. 한산자의 시에서는 이렇게 노래했다.


몸 쉴 곳을 얻고자 하는가.

한산(寒山)을 길이 보존하오.

산들바람 그윽한 소나무를 스치니

가까이 들을수록 더욱 좋아라.

그 아래 초로(初老)의 늙은이가

술술 불경을 읽는다.

십 년이 되도록 돌아가질 못하여

왔던 옛길마저 잊었어라.


영가(永嘉)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마음은 뿌리요 법은 티끌이니

이 모두 한낱 거울 위의 티끌이다.

티끌이 사라질 때 광명이 나타나듯

마음과 법을 모두 잊으면 본성 그대로가 참이네.


여기에 이르러서는 바보 같고 멍한 사람 같아야 이 공안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언어 속에 치달리리니, 언제 끝마칠 날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