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38칙 풍혈의 모쇠소〔風穴鐵牛〕

通達無我法者 2008. 3. 3. 09:47
 

 

 

제38칙 풍혈의 모쇠소〔風穴鐵牛〕


(수시)

만일 점오(漸悟)를 논한다면 참된 이치에 등지고 세속의 도리에 부합되어, 법석대는 저자에서도 횡설수설할 것이다. 돈오(頓悟)를 논한다면 조짐과 자취를 남기지 않으므로 일천 성인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돈․점을 구별하지 않는다면 어떠할까? 민첩한 사람은 말 한마디에 깨치고 날쌘 말은 한 채찍이면 된다. 바로 이러한 시절에 어느 누가 작가일까? 거량해보리라.


(본칙)

풍혈(896~973)스님이 영주(郢州)의 관아(官衙)에서 법문을 하였다.

-국가 기관의 공식적인 초청을 받아 선(禪)을 설하는군. 무슨 말을 할까?


“조사의 마음 도장〔心印〕은 무쇠소〔鐵牛〕의 기봉처럼 생겼는데

-모든 사람이 흔들어 꼼짝하지 않는다. 까다롭고 잘못된 곳이 어디에 있을까? 삼요인(三要印)을   열면서 칼끝에 다치지 않는구나.


도장을 떼면 집착하는 것이고

-바른 법으로 행하여라. 잘못됐다.

찍으면 망가진다.

-재범하면 용서치 않는다. 법대로 행할 때를 보아라. 내질러라. (원오스님은) 쳤다.


떼지도 못하고 찍지도 못하니,

-(도장을) 찍을래야 찍을 수 없는 곳을 보아라. 상당히 잘못되었다.

찍어야 옳을까 찍지 않아야 옳을까?“

-천하 사람에게는 모두 목을 내밀거나 움츠릴 자격이 있다. 모습이 이미 드러났다. 선상을 들어   뒤엎어버리고 대중을 흩어버려라.


때에 노파장로(盧陂長老)가 대중 속에서 나와 여쭈었다.

“저에게 무쇠소의 기봉이 있습니다.

-깨달았다고 착각하는 놈을 한 명 낚았다. 참으로 기특하다.


스님께서는 인가하지 마십시오.“

-좋은 이야기로다. 잘못됐는 걸 어찌하랴.


풍혈스님이 말했다.

“고래를 낚아 바다를 맑히는 데는 익숙하지만, 개구리 걸음으로 진흙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짓이야 안 하지.”

-매가 비둘기를 나꿔채듯 하였다. 보배 그물이 허공에 널려 있구나. 신구(神駒 : 풍혈스님)가 천   리를 달린다.


노파장로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기자

-아이고 가엾어라. 그래도 빠져나올 곳은 있었구나. 용서해준 것이 아깝다.


풍혈스님이 소리지른 다음에 말하였다.

“장로는 왜 말을 계속하지 못하느냐?”

-깃발로 꺾고 북을 빼앗았다. 시끄러워지는구나.


여전히 노파장로가 머뭇거리니

-세 번이나 죽었군. 두 겹으로 된 공안이다.


풍혈스님은 불자로 한 번 치고

-잘 쳤다. 이 법령은 이러한 사람이어야만 시행할 수 있다.


말하였다.

“말할거리를 생각하느냐? 어서 말해보아라.”

-굳이 그럴 것이 있을까? 설상가상이다.


노파장로가 말을 하려고 하자

-한 번 죽으면 다시는 살아나지 못한다. 이 어리석은 녀석이 남을 죽이려고 하는군. 독한 상대를 만났다.


풍혈스님이 또다시 한차례 치니 목사(牧使)가 말하였다.

“불법과 왕법(王法)이 한가지군요.”

-명확하구나. 곁사람이 엿보아버렸다.


“그대(목사)가 무슨 도리를 보았느냐?”

-한 번 잘 내질렀다. 대뜸 창끝을 돌려대는구나.


“끊어야 할 것을 끊지 않으면 도리어 재난을 불러들이게 됩니다.”

-비슷하기는 해도 옳지는 않다. 곁에 있는 사람이 안목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죽기는 동쪽   사람이 죽었는데, 서쪽 집안 사람이 조문을 하는구나.


풍혈스님은 바로 법좌에서 내려와버렸다.

-잘못으로 인해 또 잘못을 저지르는군. 근기에 맞추어 적절하게 지도하는군. 불사(佛事) 한 번 잘    했군.


(평창)

풍혈스님은 임제스님 회하의 큰스님이시다. 임제스님이 처음 황벽스님 회하에 있으면서 소나무를 심는 즈음에 황벽스님이 말하였다.

“깊은 산 속에 소나무는 심어서 무엇 하려고?”

“첫째는 산문의 경치를 이루고, 둘째는 후인을 위한 표식을 만들려고 합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곧 괭이로 땅바닥을 찍으니 황벽스님은 말하였다.

“그렇긴 하지만 그대는 벌써 스무방망이를 맞았느니라.”

임제스님이 다시 한 차례 찍으며 “휴-”하고 길게 탄식하자, 황벽스님이 말하였다.

“나의 종풍이 그대에게 이르러 세상에 크게 일어나리라.”

위산 철(潙山喆)스님은 말하였다.

“임제스님이 이처럼 한 것은 괜히 한 대 쥐어박는 것과 꼭 닮았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위태로운 일에 임하여 절개를 변치 않아야 참으로 장부라 할 수 있다. 황벽스님은 “나의 종풍이 그대에게 이르러 세상에서 크게 일어나리라”고 말하였는데, 이는 제새끼 귀여운 줄만 알고 잘못을 못 보는 것과 똑같은 일이다.

그후 위산스님이 앙산스님에게 물었다.

“황벽스님은 당시 임제스님 한 사람에게만 부촉하였는가, 아니면 따로이 부촉한 사람이 있느냐?”

“있긴 합니다만 먼 훗날의 일이므로 말씀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나도 알고 싶으니 어서 말해보게나.”

“한 사람이 있어 남쪽을 가리키며 오월(吳越) 땅에서 법을 행하다가(남원스님을 지칭하는 듯), 큰 바람〔大風〕을 만나면 그치리라.” 이는 풍혈스님을 예언했던 것이다.

풍혈스님은 처음 5년 동안 설봉스님에게 참구하였는데, ‘임제스님이 승당에 들어가자 양당(兩堂)의 수좌가 똑같이 소리를 질러댔다. 어떤 스님이 임제스님에게 “빈(賓)․주(主)가 있습니까?”라고 물으니, 임제스님은 “빈․주가 분명하다”고 대답하였던 것’을 가지고 설봉스님에게 물었다.

“도대체 그 뜻은 무엇입니까?”

“내 지난날 암두․흠산 스님과 함께 임제스님을 친견하러 가는 도중에 스님이 이미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네(그래서 뵙질 못했다). 그러나 그의 빈․주에 대한 말을 알고 싶거든 그의 종지를 참구한 존숙이어야 알 것이다.”

풍혈스님은 그 뒤, 서암(瑞巖)스님이 항상 스스로 “주인공아!”라고 부른 후 스스로 “네!”하고 대답하며, 또다시 “정신차려라. 앞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속임을 당하지 말라”하는 것을 보고서 말하였다.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대답하는 것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느냐?”

그 뒤에 양주(襄州)의 녹문(鹿門)에서 곽시자(廓侍者)와 함께 여름 안거를 지냈다. 곽시자가 남원(南院)스님을 참방하라고 가르쳐주자, 풍혈스님이 찾아가 말하였다.

“입문(入門)하려면 반드시 주인을 알아야 한다. 단적으로 스님의 사람됨을 말해주시오.”

하루는 드디어 남원스님을 뵙고 앞서 설봉스님에게 물었던 바를 설명드린 후 말을 하였다.

“제가 이 때문에 일부러 찾아뵈러 온 것입니다.”

“설봉스님은 고불(古佛)이로구나.”

하루는 경청(鏡淸) 스님을 뵙자, 경청스님이 말하였다.

“요즈음 어디에 있다가 왔는가?”

“동쪽에서 오는 길입니다.”

“작은 강을 건너왔느냐?”

“큰 배는 허공을 건너가니 작은 강은 건널 수 없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경치와 그림 속의 산은 새들도 건너가지 못하는 것이니, 그대는 남들이 남긴 말을 엿듣지 말라.”

“큰 바다도 전함의 위세를 겁내며, 은하수를 나는 돛단배가 오호(五湖)를 건넙니다.”

경청스님이 불자를 곧추세우며 말하였다.

“‘이걸’ 어찌하겠는가?”

“이게 뭔데요?”

“그럼 그렇지, 모르는군.”

“출몰(出沒)과 권서(卷舒)를 스님과 함께 합니다.”

“점치는 사람의 헛소리를 듣고 깊은 잠꼬대를 하는구나.”

“늪은 넓어서 산을 숨길 만하고, 이리가 표범을 굴복시킵니다.”

“죄를 용서해줄 터이니 속히 나가도록 해라.”

“나가면 잃을 것입니다.”

곧 밖으로 나와 법당에 이르러 혼자서 중얼거렸다.

“대장부가 공안을 깨치지 못했는데 어찌 그만둘 수 있으랴.”

이에 다시 방장실로 찾아가니 경청스님은 막 앉으려는 참이었는데 대뜸 여쭈었다.

“제가 조금 전에 무지한 견해로 스님을 모독하였습니다. 엎드려 바라오니 스님께서는 자비로 용서해주소서.”

“조금 전에 동쪽에서 왔다 했으니, 아마 취암(翠巖)에서 온 것이 아니냐?”

“설두스님은 보개(寶蓋)의 동편에 계십니다.”

“잃어버린 양을 쫓고 미치광이 견해를 쉬지 않고, 여기에 와서도 시편(詩篇)만 외우고 있구나.”

“검객을 만나면 모름지기 칼을 드리고, 시인이 아니면 시를 바쳐서는 안 됩니다.”

“시는 빨리 감춰두고 칼을 조금만 보여주게.”

“목을 자른1) 증산(甑山) 땅 사람이 칼을 가지고 가버렸습니다.”

“가르침을 따르지 않을 뿐 아니라, 스스로 어리석음을 드러내는구나.”

“가르침에 따른다면 옛 부처의 마음을 밝힐 수 있겠습니까?”

“무엇을 옛 부처의 마음이라고 하느냐?”

“거듭 용서해주십시오. 스님께서는 지금 무엇을 가지셨는지요?”

“동쪽에서 온 납자가 콩과 보리도 분간치 못하는구나.”

“아직 (생사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으면서 해결했다고 하는 말만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정말 해결하고 해결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큰 물결은 천 길이나 용솟음쳐도 맑은 파도는 그래도 물이니라.”

경청스님이 다시 이어 말하였다.

“한 구절로 많은 생각을 끊어버리니 일만 기틀이 고요하다.”

풍혈스님이 갑자기 절을 올리자 경청스님은 불자로 세 번 친 후 말하였다.

“훌륭하구나. 자, 앉아서 차나 마시도록 하라.”

풍혈스님이 처음 남원스님의 처소에 이르러 문에 들어서도 절을 올리지 않자, 남원스님은 말하였다.

“남의 집에 가서는 주인을 알아야지.”

“스님께서는 단적으로 일러주십시오.”

남원스님이 왼손으로 한 차례 무릎을 치자, 풍혈스님이 대뜸 일갈(一喝)을 하였다.

남원스님이 오른손으로 다시 무릎을 치자, 풍혈스님은 또다시 일갈을 하였다. 이에 남원스님은 왼손을 들고서 “내가 이것을 어떻게 하리라 생각하느냐?”하고 다시 오른손을 들고서 말하였다.

“이것은 또…….”

“눈이 멀었습니다.”

이윽고 남원스님이 주장자를 집어들자 풍혈스님이 말하였다.

“무엇을 하시렵니까? 제가 주장자를 빼앗아 스님을 칠 것이니, 말하지 않았다고 하시지는 마십시오."

남원스님은 바로 주장자를 던지면서 말하였다.

“오늘 이 누렁이 절강(浙江)놈한테 한바탕 바보가 되었구나.”

“스님께서는 바리때도 없으면서 배고프지 않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과 꼭 같군요.”

“스님은 전에 여기에 온 적이 있었던가?”

“무슨 말씀입니까?”

“참 잘 물었네.”

“그래도 그냥 용서해줘서는 안되겠군요.”

“자, 앉아서 차나 마시게.”

그대들은 보아라. 준수한 사람은 스스로의 기봉이 높아 남원스님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 이튿날 남원스님이 평상시 그러듯이 물었다.

“올 여름 안거는 어느 곳에서 났는가?”

“녹문에서 곽시자와 함께 지냈습니다.”

“참된 작가를 직접 만났군.”

이어 또다시 말하였다.

“그가 그대에게 무어라 하던가?”

“시종 저더러 한결같이 주인이 되어라〔作主〕하였습니다.”

남원스님이 대뜸 몽둥이로 친 후 방장실 밖으로 밀쳐내면서 말하였다.

“이런 패배한 놈을 어디에 쓰겠는가.”

풍혈스님은 이로부터 마음에 새기고 남원스님의 회하에서 원두(園頭)소임을 보았다. 하루는 남원스님이 밭에 와서 물었다.

“남방에서는 한 방망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기특하다고 생각합니다. 스님, 그러면 여기에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남원스님이 주장자를 일으켜 세우며 말하였다.

“방망이 아래 무생법인(無生法忍)은 문제의 핵심에 직면해서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

풍혈스님은 이에 완전히 깨쳤다.

이때는 오대(五代)의 난리를 겪는 시대였다. 영주(郢州)의 목사가 스님을 맞이하여 여름을 지내게 하였는데 이때 임제종만이 크게 성행하였다. 그의 문답과 수시(垂示)가 날카롭고 참신하여, 마치 꽃이 한군데 모여 있고 비단이 촘촘한 것처럼 말마다 모두 다 귀착점이 있었던 것이다.

하루는 목사가 스님에게 상당법문을 청하자 대중 설법을 하였다.

“조사의 심인(心印)은 무쇠소의 기봉처럼 생겼는데 도장을 떼면 집착하는 것이고 누르면 망가져버린다. 떼지도 못하고, 누르지도 못할 경우 도장을 찍어야 옳을까 찍지 않아야 옳을까?”

이는 돌 사람〔石人〕이나 나무 말〔木馬〕의 기봉과는 다르며, 마치 무쇠소의 기봉처럼 생겨서, 그대가 흔들거나 움직이게 할 수가 없다. 그대가 도장을 떼었다 하면 도장이라는 집착이 남아 있고, 눌렀다 하면 망가져버리어 산산조각난다. 도장을 떼지도 않고 누르지도 못할 때 찍어야 옳을까, 말아야 옳을까? 이 말을 살펴보면 낚시 끝에 미끼가 있었다고 할 만하다.

그때 법좌 아래에 노파(盧陂)장로가 있었는데, 그 또한 임제스님 회하의 큰스님이었다. 감히 앞으로 나와 기봉을 겨루면서 대뜸 그에게 화두를 던져 질문을 했으니, 참으로 기특하다 하겠다. “저에게 무쇠소의 기봉이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인가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지만 풍혈스님 또한 작가인 것을 어찌하랴. 그러므로 망설이지 않고 그에게 대답하기를 “고래를 낚아 바다를 맑게 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개구리 걸음으로 진흙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짓이야 안 하지”라고 하였다.

이는 말 가운데 심금을 울리는 메아리가 담겨 있다. 운문스님도 말하기를 “사해에 낚시를 드리움은 사나운 용을 낚으려 함이요, 격식 밖의 현묘한 기봉은 지기(知己)를 찾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큰 바다에 열두 마리의 물소(비구)를 낚시 미끼로 삼았으나 개구리 한 마리를 낚았을 뿐이다. 이 말은 현묘한 것도 없고 이러쿵저러쿵 계교함도 없다. 옛사람은 말하기를 “사(事)의 측면을 살펴보는 것은 쉽겠지만 생각〔意根〕으로 헤아리면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하였다.

“노파장로가 한참 생각에 잠기자”라는 것은 그것을 보고서도 얻지 못하면 천 년이 되도록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애석하다. 그러므로 “일천 권의 경론을 강할 수 있어도, 한 구절의 기봉에 임해서는 입 벌리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실로 노파장로는 좋은 말을 찾아 대답하기 위해 (말해보라는 풍혈스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다가, 대뜸 깃발을 꺾고 복을 빼앗는 풍혈스님의 기봉에 당해버렸다. 완전히 핍박당해 어찌할수 없게 돼버린 것이다. 애당초 반드시 창쓰는 법을 배워두었다가 그와 겨루었어야 하니, 그대에게 가르쳐주기를 기다렸다가는 머리는 벌써 땅위에 나뒹굴게 될 것이다.

목사 또한 오랜 동안 풍혈스님 밑에서 참구하였으므로 “불법과 왕법이 한가지군요”라고 말할 줄 알았다.

풍혈스님은 말하였다.

“그대가 무슨 도리를 보았는가?”

“끊어야 할 것을 끊지 않으면 도리어 재난을 초래하게 됩니다.”

풍혈스님은 완전히 정신이 한덩어리로 되어 있었다. 그는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호로병과 같았다. 잡으려 하면 빠져나가고 누르면 움직여서, 근기에 맞추어 설법할 줄을 알았던 것이다. 근기에 맞추지 않았다면 도리어 허튼 말을 했을 것이다. 풍혈스님이 대뜸 법좌에서 바로 내려와버렸다.


이는 임제스님 사빈주(四賓主)의 화두와도 같다. 참선하는 사람이라면 이를 자세히 보아야 한다. 빈․주가 서로 만나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것과 같다. 혹은 사물을 빌려서 형상을 보이기도 하며, 혹은 본체를 고스란히 활용하기도 하며, 혹은 방편을 써서 웃기도 하고 노하기도 하며, 혹은 몸을 절반만 나타내기도 하며, 사자를 타고 나타나기도 하며, 코끼리를 타고 나타나기도 한다.

만일 진정한 학인이 있어 그 학인이 큰 소리를 지르면, 먼저 집착의 단지를 드러내버리되, 선지식이 이 경계를 분별하지 못하고 그 경계 위에서 모양을 지으면, 그 학인은 또다시 큰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선지식이 이를 기꺼이 놓아버리려 하지 않으니, 그것이 바로 불치병으로서 치유될 수 없는 것이다. 이를 ‘손님이 주인을 봄〔賓看主〕’이라 한다.

또 선지식이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그 학인이 질문하려 했던 것을 선수로 가로채버린다. 그러면 학인은 빼앗기고 말았는데도, 필사적으로 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 ‘주인이 손님을 봄 〔主看賓〕’이라 한다.

또는 학인이 목에 칼을 쓰고 족쇄에 묶이어 선지식 앞에 나오면, 선지식은 다시 그에게 한 꺼풀 더 결박을 지어준다. 이것은 학인이 기뻐하며 피차를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인데, 이를 ‘손님이 손님을 봄〔賓看賓〕’이라 한다.2)

대덕(大德)이여, 산승(원오스님 자신)이 이상에서 거량한 것은 모두가 마구니와 외도를 분별하여 삿된 도와 바른 도를 알게하고저 함이다.

듣지 못하였느냐? 어떤 스님이 자명(慈明)스님에게 물었던 것을.

“일할(一喝)에서 손님과 주인을 분별하고 비춤〔照〕과 작용〔用〕이 일시에 행할 때는 어떠합니까?”

자명스님은 바로 일할을 하였다.

또한 운거(雲居)의 홍각(弘覺)선사는 다음과 같이 대중법문을 하였다.

“비유하자면 사자가 코끼리를 잡을 때도 모든 힘을 다하고, 토끼를 잡을 때도 모든 힘을 다하는 것과 같다.”

그때 어느 스님이 물었다.

“도대체 무슨 힘을 다해야 합니까?”

“속임이 없는 힘이니라.”

설두스님의 송을 보도록 하라.


(송)

노파스님을 사로잡아 무쇠소에 앉혔으니

-천만 인이 모인 가운데에서 교묘한 재주를 보이려 하는군. 패배한 장수는 거듭 목을 베지 않는    법이다.


삼현(三玄)의 창과 갑옷에 가벼이 덤비지 못하리라.

-(옆에 있는 이는 정신을 차렸는데) 당사자는 어리둥절하군. 재앙을 받는 것이 복받는 것과 같다.    항복하는 것이 대적하는 것과 같다.


초왕(楚王)의 성으로 모여든 물이여!

-모여든 물을 말해 무엇 하리요, 아득히 천지에 가득하다. 사해의 바다가 그대로 거꾸러 흘렀을    것이다.


‘할’하는 소리에 거꾸로 흐르는구나.

-이 일할이 그대의 혀끝만을 끊은 것이 아니다. 쯧쯧! 협부(陜府)으 무쇠소를 깜짝 놀라 달아나    게 하고 가주(嘉州)의 큰 코끼리를 놀라게 하였다.


(평창)

설두스님은 풍혈스님에게 이러한 종풍이 있음을 알고 “노파스님을 사로잡아 무쇠소에 앉혔으니, 삼현의 창과 갑옷에 가벼이 덤비지 못하리라”고 하였다. 임제스님이 문하에는 삼현 삼요(三玄三要)가 있다. 이는 반드시 한 구절 가운데 삼현(三玄)이 갖춰 있어야 하고, 일현(一玄) 가운데 꼭 삼요(三要)가 갖춰 있어야 한다.

스님이 임제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제일구(第一句)입니까?”

“삼요(三要)의 도장을 찍으니 빨갛게 찍혔다. 주․빈을 나누려고 머뭇거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무엇이 제이구(第二句)입니까?”

“능란한 변재로서 어찌 무착(無着)의 물음을 용납하겠는가마는 방편으로는 많은 생각을 끊는 기봉을 저버리지 않는다.”

“무엇이 제삼구(第三句)입니까?”

“장대 끝에 나불대는 꼭두각시를 보라. 모두 뒤에 있는 사람이 조종하는 것이니라.”

풍혈스님의 한 구절 속에는 삼현(三玄)의 창과 갑옷으로 무장하여, 칠사(七事 : 창․방패․활․화살․갑옷․투구․칼)가 몸에 있으므로 가벼이 덤비지 못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파장로를 어떻게 당해낼 수 있었겠는가?

뒤이어 설두스님은 임제스님의 기봉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이를 노파(盧陂)라고 말하지 말라. 설령 초왕의 성 언덕에 큰 파도가 아득하고 흰 물결이 하늘까지 닿아 많은 물이 모여 들어간다해도, 일할에 거꾸로 흐른다.

1)#교72 : 堅자와 堯자의 반절. 梟자와 음이 통한다. 머리를 베고 거꾸로 매단다는 뜻이다.

1)이 부분의 내용은, 촉본(蜀本)이나 복본(福本)에는 없다고 한다. 아마도 뒷날 끼어넣은 듯하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삼성본(三省本)을 따라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