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39칙 운문의 황금털〔雲門金毛〕

通達無我法者 2008. 3. 3. 09:49
 

 

 

제39칙 운문의 황금털〔雲門金毛〕


(수시)

깨달음의 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범이 산을 의지한 것과 같고, 세속적인 지식만을 유포하는 사람은 원숭이가 우리에 갇힌 것과 같다. 불성의 의미를 알고저 한다면 마땅히 시절인연을 살펴보아야 하며, 백 번 달구어 순금으로 제련코저 한다면 모름지기 작가의 풀무가 있어야 한다. 말해보라, 대용(大用)이 눈앞에 나타나는 사람은 무엇을 가지고 시험해야 할까?


(본칙)

어떤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청정법신(淸淨法身)입니까?”

-거름더미 속에서 장육금신(丈六金身)을 보았도다. 얼룩덜룩한 이것은 무엇일까?”

“꽃나무로 장엄한 울타리니라.”

-물음 자체가 진실치 못하니 대답도 거칠군. 이리저리 희롱하는군. 굽은 데에는 곧은 것을 간직    하지 못한다.


“이럴 때는 어떠합니까?”

-대추를 통째로 삼키고 우물거린다. 어리석게 굴어 무엇 할거냐?


“황금빛털 사자니라.”

-칭찬하기도 하고 깎아내리기도 한다. 한판의 승부에 각자가 모두 이겼군. 한 번 잘못하고 그로    인해 또 다른 잘못을 하니 이 무슨 심보인고?


(평창)

여러분은 이 스님이 물은 뜻과 운문스님이 답한 뜻을 알겠는가? 알 수 있다면 두 사람이 한 말은 모두 언어 이전의 표현이 되겠지만, 몰랐다면 어리석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어떤 스님이 현사(玄沙)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청정법신입니까?”

“고름이 뚝뚝 떨어지느니라.”

이는 금강의 눈〔金剛眼〕을 갖추어 판별해보도록 하라.

운문스님은 이 스님과는 같지 않았다. 어느 때는 (모든 방편을) 거두어들여서 마치 만 길 벼랑에 홀로 서 있어 가까이 할곳이 없고, 어느 때는 (방편으로) 한 가닥 길을 터놓고 생사를 함께 하기도 하였다. 운문스님의 세 치 혀끝은 매우 빈틈이 없다하겠다.

어떤 사람은 “이는 주사위의 숫자에 (모든 성패를) 맡기듯이, 무심하게 대답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말해보라, 운문스님의 귀착점은 어디에 있는가를. 이는 자기 자신의 일이니 바깥에서 헤아리지 말라.

그러므로 백장스님은 “삼라만상과 모든 언어를 자기에게 귀결시켜, 수레바퀴처럼 매끄럽게 운용해야 한다”고 하였다. 활발발(活發發)한 곳에서 대뜸 이르기를, “만일 여기에서 머뭇거리며 생각한다면 바로 제이구(第二句)에 떨어진다”고 하였다. 영가(永嘉)스님은 “법신을 깨달으니 한 물건도 없다. 본원(本源)의 자성(自性)이 본래의 부처이다”라고 말하였다.

운문스님은 이 스님을 시험하였으나, 스님 또한 그(운문스님) 집안 사람인 터라 원래 오래 참구했다. 집안 사정을 알고 있기에 이어서 말하였다.

“그럴 때는 어떠합니까?”

“황금빛털 사자니라.”

말해보라, 이는 그를 인정한 것일까, 인정하지 않은 것일까? 칭찬한 것일까, 깎아내린 것일까?

암두스님은 말하였다

“전쟁으로 말한다면 어디에서라도 몸을 비킬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

또 말하였다.

“활구(活句)를 참구해야지, 사구(死句)를 참구해서는 안된다. 활구에서 알면 영겁토록 잊지 않겠지만 사구에서 알면 자신마저 구제하지 못한다.”

또 스님인 운문스님에게 물었다.

“불법은 물 속에 어린 달 그림자와 같다 하는데, 그렇습니까?”

“맑은 파도는 뚫을 길이 없느니라.”

다가서서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떻게 얻으셨습니까?”

“다시 물어 뭘 하겠는가?”

“이럴 때는 어떠합니까?”

“겹겹이 쌓인 멀고먼 관산(關山) 길이다.”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이 일은 언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마치 전광석화와 같아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목숨을 잃게 된다. 설두스님은 바로 그런 경지에 있는 사람이기에 곧바로 송을 하였다.


(송)

꽃울타리여!

-너무도 많이 들어 귀에 더덕지가 졌다.


어리석은 짓하지 말라.

-삼대 같고 좁쌀처럼 많다. (영리한 놈이) 조금은 있었구나. 냉큼 꺼져라!


눈금은 저울대에 있지 받침대에 있지 않다.

-말이 많네! 각각 스스로 자신에 돌이켜보라. 이러쿵저러쿵 말하였구나.


이러함이여!

-통째로 대추를 삼켰다.


전혀 잡다함이 없나니.

-냉큼 꺼져라! 분명하구나. 운문스님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황금털빛 사자를 그대들은 살펴보라.

-(그런 사람이) 한 명은커녕 반 명이나 될까? (사자는커녕) 개이다. 운문스님 또한 보주(普州 : 도   적 집단 거주지) 사람이 도적을 전송하는 격이로다.


(평창)

설두스님은 적절하게 분위기를 보아가면서 음식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하듯이, 줄을 튕겼다 하면 별곡(別曲)을 연주하듯이, 한 구절 분명하게 판결을 내린다. 이 송은 염고(拈古)의 격식과 다른 점이 없다.

“꽃울타리여!” 하더니, 바로 “어리석은 짓하지 말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운문스님은 주사위의 어떤 숫자가 나오든 개의하지 않듯이, 무심하게 대답하였다”고들 한다. 모두가 그의 뜻을 망정으로 이해하였다. 이 때문에 설두스님은 본분소식으로 “어리석은 짓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운문스님의 뜻이 “꽃 울타리”에 있지 않았기에, “저울 눈금은 저울대에 있지, 받침대에 있지 않다”고 한 것이다.

이 한 구절을 참으로 잘못 알고 있다. 물 속에는 원래 달이 없고 달은 하늘에 있듯이, 저울 눈금은 저울대에 있지 받침대에 있지 않다. 말해보라, 무엇이 저울대인가를. 이를 분별하여 밝힐 수 있다면 설두스님의 뜻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옛사람(설두스님)은 여기에 이르러서 자비로써 분명히 그대에게 말하기를 “여기에 있지 않고 저기에 있다”하였다 말해보라, 저기는 어느 곳인가를. 이는 첫 구절에서 이미 노래하였으며, 뒤이어 그 스님이 “그럴 때는 어떻게 합니까?”라고 말한 데 대해서, “전혀 잡다함이 없다”고 노래하였다.

말해보라, 이는 밝은 것일까, 어두운 것일까? 알고서 이처럼 말했을까, 모르고서 말했을까? “황금빛털 사자를 그대들은 살펴보라”하였는데, 황금빛털 사자를 보았느냐? 태양과 같아서 정면으로 보았다가는 눈이 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