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칙 투자의 제일의〔投子第一義〕
(수시)
대용(大用)이 앞에 나타나니 규칙에 의존하지 않고 산 채로 사로잡으면서도 괜한 힘을 들이지 않는다.
말해보라, 어는 어떠한 사람이 이처럼 할 수 있었을까? 거량해보리라.
(본칙)
어떤 스님이 투자(投子 : 819~914)스님에게 물었다.
“모든 소리가 부처님의 소리라고 하는데 그렇습니까?”
-호랑이 수염을 뽑을 줄 아는구나. 청천에 날벼락이다. 자기의 똥냄새는 구린 줄을 모르는 구나.
“그렇지.”
-모든 사람을 속이는구나. 몸을 팔아 그에게 바친다. (부처님의 소리가 모든 소리라고는 말 하지 않고) 한쪽만을 들어서 말하는 것은 무슨 심술인고?
“화상께서는 방귀뀌는 소리〔豚拂碗鳴聲〕하지 마십시오.”
-송곳 끝이 날카로운 것만 보았을 뿐 끌 끝이 네모진 것을 보질 못하였구나. 무슨 말을 하 느냐? 예상대로 잘못을 저질렀다.
투자스님이 문득 후려치자
-한 수 잘 두었다. 잘 쳤다. 그런 놈은 놓아주면 안된다.
또다시 물었다.
“거친 말과 자세한 말이 모두 제일의제(第一義諦)로 귀결한다는데, 그렇습니까?”
-두번째 호랑이 수염을 뽑는구나. 도둑이 훔친 장물을 끌어안고 억울하다고 울어서 무엇하 려고 동서남북에 그래도 그림자와 메아리가 있구나.
“그렇지!”
-또 몸을 팔아서 그에게 바쳐버렸다. 호랑이를 잡는 덫이군. 무슨 심술인고?
“화상을 (말뚝에 매여 있는) 노새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송곳 끝이 날카로운 것만 보았을 뿐 그 끝이 네모진 것은 보지 못하였다. 역공격을 하기는 했지만, 머리에 뿔이 없다. 피를 머금어 남에게 뿌리려다 자기 입이 먼저 더럽혀졌다.
투자스님은 다시 대뜸 후려쳤다.
-한 수 잘 두었다. 놓아주어서는 안된다. 잘 쳤다. 아직 주장자가 부러지지 않았는데 무엇 때문에 그만두었을까?
(평창)
투자스님은 소박하고 진실하면서도 많은 사람 가운데서 뛰어난 변재(辯才)를 지녔다. 흔히 사람들이 질문할 경우 (상대방이) 입을 열었다 하면 바로 속을 들여다 보아 괜한 힘들이지 않고 그의 혀를 꽉 틀어막아 꼼짝 못 하게 했다. 이는 장막 안에서 작전을 세워 천 리 밖의 승부를 결정하는 것과 같다.
이 스님이 성색불법(聲色佛法)의 견해를 핵심으로 삼아서 사람들을 만나기만 하면 곧 이를 물었다. 그러나 투자스님은 작가였다. 찾아온 그를 잘 알아보았고 그 스님 또한 투자스님의 진실을 대뜸 알고 곧바로 올가미를 만들어 투자를 집어넣으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뒷말(화상께서는 방귀뀌는 소리하지 마십시오)이 있었다. 이에 투자스님은 대뜸 호랑이 잡는 솜씨를 구사하여, 그의 뒷말을 낚아올랐던 것이다.
그 스님은 투자스님의 대답에 뒤이어 “화상께서는 방귀뀌는 소리하지 마십시오”라고 했으나, 이것은 예상했던 대로 낚시에 바로 걸려든 것이다. 만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 스님을 어떻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투자스님은 안목을 갖추고 바로 뒤이어 돼지를 물어뜯는 개와 같은 솜씨로 대뜸 후려쳤다. 반드시 작가여야 비로소 이처럼 좌측으로 회전하여도 그를 따라 자유롭게 구르며, 우측으로 회전하여도 그를 따라 자재하게 뒹굴수 있는 것이다.
스님은 올가미를 만들어 호랑이 수염을 뽑으려고 찾아왔지만 투자스님이 또한 그의 올가미 위에 있었다는 사실을 참으로 몰랐었다. 투자스님이 대뜸 후려치자, 스님은 아깝게도 처음만 있었지, 끝이 없었다. 그 당시 투자스님이 방망이 잡았을 때 바로 선상을 번쩍 들어 뒤엎어버렸더라면 설령 투자스님의 완전한 기봉이라 해도 3천 리 밖으로 도망쳐버렸을 것이다.
또다시 “거친 말과 자세한 말이 모두 제일의제로 귀결한다는데, 그렇습니까”라고 묻자, 투자스님은 “그렇다”고 하였다. 앞의 말과 전혀 차이가 없는 듯한데, 스님이 “화상을 (말뚝에 매여 있는) 노새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투자스님은 또다시 후려쳤다. 스님이 이처럼 소굴을 짓기는 하였지만 참으로 기특하다고 하겠다. 선상에 기대어 앉은 노련한 선지식이라도 정수리에 안목이 없었더라면 그를 꺾기 어려웠을 것이다.
투자스님에겐 몸을 비낄 곳이 있었다. 스님이 이러쿵저러쿵 도리를 지어 투자스님을 잡아다 시장에 싼값에 팔려고 하였으나, 막상 찾아가 보니 여전히 노련한 투자스님을 어떻게 해볼수 없었다.
듣지 못하였느냐, 암두스님의 말을.
“전투로 논한다면 곳곳마다 몸을 피할 곳에 있는 것과 같다.”
투자스님은 아주 느슨히 놓아주었다가 빨리 거두어들였다. 스님이 당시에 몸을 비껴서 말할 줄 알았다면 입에 피를 머금어 남에게 뿌리려다 제 입이 먼저 더러워지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납승들이란 제일의(第一義)도 만들지 말고, 제이의(第二義)에 쉬어서도 안된다. 스님은 이를 던져버리지 못하여, 투자스님에게 콧구멍이 뚫린 것이다. 송은 다음과 같다.
(송)
투자여, 투자여!
-뚜렷하구나. 천하에 이처럼 진실한 늙은이는 없다. 남의 집 애들을 못쓰게 만드는구나.
상황에 대처하는 솜씨〔機輪〕는 걸림이 없네.
-무엇이 있었기에 그를 어찌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래도 조금은 있었지.
한 번 휘둘러 둘을 얻고
-그대의 눈동자를 바꿔버렸다. 투자스님의 뜻이 무엇인가?
저기도 이와 같고 여기도 이와 같네.
-이처럼 해도 방망이를 맞을 것이며 저처럼 해도 방망이를 맞는다. (설두스님)화상이 그를 대신했군. 쳐라.
가련쿠나. 험난한 파도를 타고 넘나드는 무수한 사람들아.
-이러는 이는 총림 중에 한 명은커녕 반 명도 드물다. 이놈을 용서해준다. 천하 납승이 이 와 같다.
결국은 파도에 떨어져 죽는구나.
-가엾구나. 이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어찌하랴. 근심하는 사람은 근심있는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 (근심만 더할 뿐이다.)
홀연히 되살아나면
-선상(禪床)니 진동한다. 산승을 놀라게 하는구나. 뒤로 삼천 리를 도망쳤다.
많은 시냇물이 콸콸콸〔鬧扌耳舌 扌耳舌 〕거꾸로 흐르게 된다.
-준험하군. 부질없이 사량분별하는군. 산승은 감히 입을 열지 않겠다. 투자스님도 주장자를 꺾어버려야 할 것이다.
(송)
“투자여, 투자여! 상황에 적절한 솜씨 걸림이 없네”라는 것은, 투자스님은 평소에 말하기를 “그대들은 투자의 진실을 모조리 말하였지만 산에서 세 걸음 내려가다가 어느 사람이 ‘무엇이 투자의 진실함인가’라고 물으면, 무어라고 말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옛사람(설두스님)의 말에 “상황에 적절한 솜씨가 한 번 나오면 작가도 오히려 미혹한다”고 하였다.
투자스님은 적절한 솜씨를 도르르 굴리면서 완전히 막힘이 없었다. 그러므로 설두스님은 “한 번 휘둘러 둘을 얻었다”고 하였다.
듣지도 못하였는가. 어떤 스님이 투자스님에게 물었던 것을.
“무엇이 부처입니까?”
“부처지.”
“무엇이 도입니까?”
“도라네.”
“무엇이 선(禪)입니까?”
“선이지.”
“달이 둥글기 전에는 어떠합니까?”
“세 개 네 개 삼켜버렸다.”
“온전히 둥근 뒤에는 어떠합니까?”
“일곱 개 여덟 개를 토하였다.”
투자스님은 사람을 제접하면서 항상 이 솜씨를 사용하였다.
이 스님에게 답한 것도 똑같이 “그렇다”는 말이었을 뿐이나 이 스님은 두 차례나 얻어맞았다. 그러므로 설두스님은 “저기에서도 이와 같았고 여기에서도 이와 같았다”고 말하였다. 이 네 구절은 투자스님을 일시에 송(頌)한 것이다. 끝에서 다시 이 스님을 노래하기를 “가련쿠나, 험난한 파도를 타고 넘나드는 무수한 사람들아”라고 하였는데, 이 스님은 감히 (적군의) 깃발과 북을 훔치는 것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화상은 방귀뀌는 소리하지 말라”하였고, 또한 “화상을 말뚝에 매인 노새라고 불러도 되느냐”고 말하였다. 이것이 바로 험난한 파도를 타고 넘나드는 것이다.
스님이 갖은 재주를 다 부렸지만 여전히 투자스님의 언구 속에서 죽어버려, 투자스님은 이 스님을 후려쳤다.
바로 이것 때문에 결국 조수물 속에 떨어져 죽은 것이다.
설두스님께서 스님을 염송(捻頌)하였다.
“홀연히 다시 살아나 선상을 번쩍 들어 엎어버렸다면 투자스님도 반드시 뒤로 3천 리 밖으로 도망쳤을 것이다. 마치 많은 시냇물이 거꾸로 콸콸콸거리며 흐르는 것처럼.”
이는 선상이 진동했을 뿐 아니라, 산천이 솟아올랐다 꺼졌을〔岌崿〕 것이며 온 천지도 깜깜깜해졌을 것이다. 만일 참으로 이와 같다면 산승 또한 퇴산(退山)을 알리는 큰 북을 울렸을 것이다. 여러분은 어느 곳에서 안신입명(安身立命)을 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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