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81칙 약산의 고라니 쏘아 맞추기〔藥山射塵〕

通達無我法者 2008. 3. 3. 11:45
 

 

 

제81칙 약산의 고라니 쏘아 맞추기〔藥山射塵〕


(수시)

(적군의) 깃발을 낚아채고 북을 빼앗는 솜씨는 많은 성인도 알지 못하고, 어려운 것을 그대로 끊어버리는 것은 어떤 근기라도 하지 못한다. 이는 신통의 오묘한 기용도 아니며, 또한 본체의 여여(如如)함도 아니다. 말해보라, 어떻게 해야 이처럼 기특할 수 있는가를.


(본칙)

어떤 스님이 약산스님에게 물었다.

“널찍한 초원에 왕고라니〔塵〕와 사슴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고라니 가운데 왕고라니를 쏘아 맞출 수 있겠습니까?”

-제 스스로 상투를 잡아 끌고 관아를 찾아가 자수하네. 머리에 뿔이 돋혔네. 머리 뒤의 급  소에 박힌 화살을 뽑는군.

“화살을 보아라.”

-몽땅 빼앗겨 알몸이 됐네. 비탈길을 내려오듯 빠르게 달리지 않으면 떠나는 배를 타기 어  렵다. 맞혔다.

스님이 벌떡 몸을 누이며 거꾸러지자

-전혀 다르다. 한 번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 이 망상분별을 하는 놈아!


약산스님이 말하였다.

“시자야, 이 죽은 놈을 끌어내라.”

-법령에 의하여 처치했다. 애써서 다시 검사해볼 필요가 없다. 앞에 쏜 화살은 그래도 가벼운 편인데 뒤에 쏜 화살은 깊이 박혔다.


스님이 문득 도망치자

-널 속에서 눈알을 부라리는구나. 죽음 속에서 목숨을 얻었군. 아직도 숨이 붙어 있구나.


약산스님이 말하였다.

“허튼 짓하는 놈! 어찌 깨달을 날이 있으랴.”

-아깝게도 봐줬구나. 법령에 의거하여 시행하였다. (이 스님의 하는 짓이란) 설상가상(雪上  加霜)이다.


설두스님은 이를 들어 말하였다.

“세 걸음까지는 살아 있다 해도 다섯 걸음가면 꼭 죽을 것이다.”

-한번은 치켜올랐다가 한 번은 깎아내린다. 가령 백보를 도망한다 해도 꼭 목숨을 잃을 것   이다. 다시 말하는데 화살을 보아라. 말해보라, 설두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를.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다면 약산이 곧바로 눈알을 부라리고 입에 헤벌쩍 벌리겠지만〔目瞪口呿〕 한결같이 구멍없는 철추와 같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평창)

이 공안은 동산문하(洞山門下)에서 차사문(借事問) 또는 변주문(辨主問)이라 하는데, 이로써 지금 당면해 있는 문제의 핵심〔當機〕을 밝히는 것이다. 보통 사슴과 왕고라니를 구별하여 쏘기 쉽지만 고라니 가운데 왕고라니는 사슴 중에서도 왕이므로 가장 쏘기 어렵다. 이 왕고라니는 항상 가파른 벼랑 위에서 그 뿔을 칼끝처럼 날카롭게 갈아 자기의 몸으로 많은 사슴을 보호하고 아껴주니 호랑이 또한 가까이 하지 못한다. 이 스님도 영리한 척하며 이를 인용하여 약산스님에게 물어 핵심을 밝혔다.

약산스님이 “화살을 보아라”고 하였으니, 이는 작가종사로서 참으로 기특하였고 번뜩이는 전광석화와 같았다. 왜 듣지 못하였는가. 삼평(三平)스님이 처음 석공(石鞏)스님을 참방하자, 석공스님은 그가 찾아오는 것을 보자마자 활을 당기는 시늉을 하면서 말하였다.

“화살을 보라.”

이에 삼평스님은 가슴을 열어 제치며 말하였다.

“이는 사람을 죽이는 화살입니까, 살리는 화살입니까?”

석공스님이 활 시위를 세 번 튕기자, 삼평스님이 문득 절을 올리니 석공이 말하였다.

“30년 동안 활 한 개와 두 개의 화살을 가지고 있었는데, 오늘에야 반쪽 성인을 쏠 수 있었다.”

그는 문득 활과 화살을 꺾어버렸다.

삼평스님이 그 뒤에 태전(大顚)스님에게 이를 말하자 태전스님은 말하였다.

“사람을 살리는 화살이었다면 무엇 때문에 활과 화살을 가지고 상대를 분별하였겠는가?”

삼평스님이 대답이 없자, 태전스님은 말하였다.

“30년 뒤에 이 화두를 남에게 말해주려 해도 하기 어려울 것이다.”

법등(法燈)스님은 이를 송하였다.

 

옛날 석공스님이

활에 화살을 걸어놓고 앉아서

이처럼 서른 해를 지내왔건만

한 사람의 지기(知己)도 만나지 못하다가

삼평이 적중하여

부자가 서로 만났네.

돌이켜 자세히 생각해보니

원래 그는 과녁 받침대를 쏘았더라.


석공스님의 계책은 약산스님과 똑같았다. 삼평스님은 정수리〔頂門〕에 안목을 갖추고 한마디에 적중시켰는데, 이는 약산스님이 “화살을 보라”고 말했던 것과 같다 하겠다.

스님은 문득 왕고라니가 되어 벌떡 몸을 누이며 거꾸러졌는데, 이 스님 또한 작가 선지식인 척했지만 처음만 있었지 끝은 없었다. 그는 올가미를 만들어 약산스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였으나 약산스님이야말로 작가인 걸 어떻게 할 수 있었으랴. 한결같이 (상대를) 추궁해나갔을 뿐이다. 약산스님이 “시자야, 이 죽은 놈을 끌어내라”고 말하자, 마치 진을 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았다.

마침내 이 스님이 도망을 치니, 이는 매우 옳기는 옳은 듯하나 초탈하여 씻은 듯 말끔하지 못하고 손발이 꼭꼭 달라붙어 있는 듯하니, 어찌할 수 있으랴. 그러므로 약산스님은 “허튼 짓하는 놈! 어찌 깨달을 날이 있으랴”고 하였다. 약산스님이 당시에 이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다른 사람에게 점검을 당하였을 것이다.

약산스님이 “화살을 보라”고 말하자, 스님은 벌떡 거꾸러졌는데 말해보라, 이는 알고 한 것인지 모르고 한 것인지를. 알고서 했다면 약산스님은 무엇 때문에 이처럼 “허튼 짓하는 놈”이라고 말하였겠는가? 이것이 가장 악한 것이다. 이는 바로 어느 스님이 덕산스님과 서로 주고받은 문답과 같은 경우이다. 어느 스님이 덕산스님에게 물었다.

“학인이 막야(鏌鎁)보검을 가지고서 스님의 머리를 베려고 할 때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덕산스님이 목을 쑥 빼어 앞으로 가까이 가더니 “탁!”하고 말하자, 스님이 “스님의 머리는 떨어졌습니다”라고 말하니, 덕산스님은 머리를 숙이고 방장실로 돌아가버렸다.

또 암두스님이 스님에게 물었다.

“어느 곳에서 왔느냐?”

“서경(西京)에서 왔습니다.”

“황소(黃巢)의 난리가 지나간 뒤에 칼이라도 주웠느냐?”

“주웠습니다.”

암두스님이 목을 쏙 빼고 앞으로 가까이 가더니 “탁!” 하고 말하자, 스님의 머리가 떨어졌습니다”고 하니 암두는 껄껄거리며 크게 웃었다.

이러한 공안은 모두가 호랑이 잡는 솜씨〔機〕이다. 바로 이와 같이 약산스님도 그를 개의치 않고 이 스님이 어쩌나 보려고 추궁해갔을 뿐이다.

설두스님은 “스님이 세 걸음까지는 살아 있다 해도 다섯 걸음가면 죽을 것이다”고 하였다. 스님은 “화살을 보라”는 말을 깊게 이해하고 벌떡 몸을 눕혔으나, 약산스님의 “시자야, 이죽은 놈을 끌어내라”는 말에 곧바로 도망쳤다.

설두스님은 “세 걸음 벗어나서는 아마도 살지 못하겠지만, 당시에 다섯 걸음 밖으로 벗어났더라면 천하 사람들이 그를 어찌하지 못하였을 것이다”고 하였다.

작가가 서로 만났을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가 번갈아가며 손님과 주인이 되면서 한결같아야 자유자재한 경지가 있는데, 스님은 당시에 시종일관하지 못했기 때문에 설두스님에게 점검을 당한 것이다. 뒤에 다시 자신의 말을 인용하여, 송하였다.


(송)

고라니 중의 왕고라니를

-높이 눈을 들어보아라. 머리에 뿔이 돋쳤구나.


그대는 보아라.

-무엇일까? 제이의 속제(俗諦)로 달려가는군. 쏠테면 쏴라. 어떤가 보자.


한 화살을 쏘아

-적중했다. 약산의 좋은 솜씨를 알아줘야 한다.


세 걸음 도망치게 했네.

-팔팔한 경지로다. 세 걸음 겨우 걷고 오랜 동안 죽어 있었다.


다섯 걸음 가서도 살 수 있다면

-무엇 하느냐. 백보를 뛰었다. 죽음 속에서 살아나는 이가 혹 있다면 어떠할까?


떼를 지어 호랑이를 쫓으련만 …….

-(삶과 죽음을) 둘 다 관조한다. 반드시 그를 물리쳐야 될 것이다. 천하의 납승들이 그를 놓아주었다. 그래도 (번뇌의) 풀 속에 있을 뿐이다.


정안(正眼)은 원래 사냥꾼에게 주어져 있었군.

-약산스님이 이 말을 인정하지 않은 것을 어찌하겠는가? 약산스님은 그렇다치더라도 설두  스님 또한 어떠한가. 약산스님의 일과도 관계없고 설두스님의 일과도 관계없고 산승의 일   과도 관계없고 상좌의 일과도 관계없다.


설두스님은 소리높여 말한다.

“화살을 보아라.”

-한 죄상으로 몽땅 처리하는 것처럼 (전체의 공안을 한마디로 처리하는군). 그래도 그를 물러나게 해야 할 것이다. (원오스님은) 치면서 말한다. 벌써 그대의 목구멍을 막아버렸다.


(평창)

“고라니 중의 왕고라니를 그대는 보아라”라는 것은, 납승가라면 반드시 고라니 가운데서도 왕고라니의 안목을 갖추어야 하며 또한 고라니 중의 왕고라니의 뿔을 갖추고, 기관(機關 : 납자를 지도하는 솜씨)과 지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비록 날개 돋친 사나운 호랑이와 뿔 돋친 호랑이라도 몸을 사리고 위험을 피하여 멀리 도망갈 것이다.

스님이 당시에 몸을 눕혀 거꾸러지면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고라니라”고 했기 때문에, (설두스님은) “한 화살을 쏘았더니 세 걸음을 도망했을 뿐”이라 하였다.

약산스님이 “화살을 보아라”고 하자, 스님이 벌떡 거꾸러지니, 약산스님은 말하였다.

“시자야, 이 죽은 놈을 끌어내도록 하라.”

그러자 스님은 바로 도망갔으니 이는 매우 잘하기는 하였지만 세 걸음을 도망했을 뿐이니 이를 어찌하겠는가? 다섯 걸음 가서도 살 수 있다면 떼를 지어 호랑이를 쫓으련만. 설두스님이 말하기를 “다섯 걸음을 도망하다가 죽게 될까 염려스럽다. 당시에 다섯 걸음 밖을 벗어나 살아남았을 때는 무리를 이루어 호랑이를 쫓아갔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고라니 가운데 왕고라니는 창처럼 날카로운 뿔이 있어 호랑이도 그를 보면 두려워하여 도망을 한다. 고라니는 사슴 가운데 왕이다. 항상 많은 사슴을 이끌고 호랑이를 쫓으며 다른 산으로 들어간다.

설두스님은 뒤이어 노래하기를, 약산스님에게도 문제의 핵심에 당면하여 몸을 벗어날 곳이 있었기 때문에, “정안(正眼)은 원래 사냥꾼에게 주어져 있었다”고 하였다. 약산스님은 활을 쏠 줄 아는 사냥꾼과 같았고, 그 스님은 고라니와 같았다.

설두스님이 마침 상당(上堂) 법문에서 이 화두를 들어 한 덩어리로 묶고 소리높여 한 구절을 말하였다.

“화살을 보아라.”

이에 앉은 사람이나 서 있는 사람도 모두 일어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