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추회요(冥樞會要)

17. 법계의 성품을 관하라

通達無我法者 2008. 3. 3. 17:38
 

법계의 성품을 관하라

 

9-3-17 華嚴踈云 由迷境唯心 方能現妄境 又喩正由無性 方成萬境也. 故云 諸法性如是. 應觀法界性者 卽眞如理觀 一切唯心造者 卽唯識事觀. 以理觀唯識之性 諸佛證此 爲成佛之體 以事觀唯識之相 衆生達此 爲出離之門. 如華嚴演義云 良以 一文之妙 攝義無遺 一偈之功 能破地獄. 故普賢菩薩告善財言 我此法海中 無有一文 無有一句 非是捨施轉輪王位而求得者 非是捨施一切所有而求得者.



ꡔ화엄소ꡕ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말하였다.

경계가 오직 마음임을 모르기 때문에 허망한 경계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에, 또 바로 결정된 성품이 없으므로 바야흐로 만 가지 경계를 만든다고 하는 것을 비유했다. 그러므로 모든 법의 성품이 이와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법계의 성품을 관()해야 한다는 것은 곧 진여의 이치를 관하는 것이고, 일체를 오직 마음이 만든다는 것은 곧 유식(唯識)의 현상을 관하는 것이다. 이치로 유식의 성품을 관하는 방법으로써 모든 부처님께서는 유식의 성품을 증득하여 성불하는 바탕으로 삼았고, 현상으로 유식의 모습을 관하는 방법으로써 중생은 유식의 모습에 통달하여 생사를 벗어나는 문으로 삼은 것이다. 이것은 ꡔ화엄연의ꡕ에서 “진실로 한 문장의 깊고 오묘한 이치로 무량한 뜻을 다 거두며, 하나의 게송이 갖는 공능(功能)의 힘으로 지옥고를 타파할 수 있다”고 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보현 보살이 선재 동자에게 “내가 지닌 많은 법 가운데의 한 문장 한 구절이라도 전륜왕의 자리를 버리고 구하지 않음이 없었으며, 일체의 소유물을 버리고 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한 것이다.

釋曰 以一是一切之一故 稱性之一故. 纂靈記 云. 有京兆人 姓王失其名. 本無戒行 曾不修善 因患致死. 被二人引 至地獄. 地獄門前 見一僧 云是地藏菩薩 乃敎誦偈云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이것을 풀이하여 “여기에서 말하는 한 문장 한 구절의 하나는 하나로써 일체에 통하는 하나이기 때문에, 법성의 개념에 맞추어서 말하는 하나이다”라고 하였다.


ꡔ찬령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경조 지방에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성은 왕씨이며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는 본래 행동이 바르지 않아서 일찍이 좋은 일을 하지 않다가 병으로 죽게 되었다. 그는 지옥사자 두 사람에게 끌려 지옥으로 가게 되었다. 가는 도중에 지옥문 앞에서 한 스님을 만났는데, 그 스님의 이름은 지장 보살이었다. 지장 보살은 그에게 하나의 게송을 암송하도록 하였다.


   세상에 계시는 모든 부처를

   중생이 분명히 알고자 하면

   법계의 성품을 관해야 한다

   모두 다 마음이 만들었음을.


菩薩授經已 謂之曰 誦得此偈 能破地獄苦. 其人誦已 遂入見王. 王問 此人有何功德. 答云 唯受持一四句偈 具如上說. 王遂放免. 當誦此偈時 聲所至處 受苦之人 皆得解脫. 後三日方穌 憶持此偈 向諸道俗說之. 參驗偈文 方知是華嚴經夜摩天宮 無量菩薩雲集所說 卽覺林菩薩偈. 意明地獄心造 了心造佛地獄自空耳. 故知 若觀此心 言下離苦. 不唯破地獄界 乃至 十法界一時破. 以入眞空一際法故 則平等眞法界 無佛無衆生.



보살이 이 게송을 전수하며, 그에게 “이 게송을 외울 수 있으면 지옥의 고통을 타파할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 왕씨는 지장 보살의 이야기를 듣고 게송을 외워서 지옥에 들어가 염라대왕을 만나게 되었다. 염라대왕은 “이 사람에게는 무슨 공덕이 있는가” 하고 물었다. 지옥 사자는 “오직 하나의 사구(四句) 게송만을 받아 지녔을 뿐입니다” 하고 대답하면서 지장 보살과의 일을 전부 설명하게 되었다. 그러자 염라대왕은 이 사람을 지옥에서 나가도록 하였다.

또 이 게송을 암송할 때 이 소리를 듣는 고통받던 사람도 모두 해탈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은 죽은 지 삼일 후에 소생하였으나 이 게송을 기억하였고, 모든 사람들에게 이 일을 설명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지장 보살에게 받은 게송이 ꡔ화엄경ꡕ 야마천궁에서 한량없는 보살들이 운집하였을 때 설해진 각림 보살의 게송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뜻은 지옥도 마음이 만들었다는 것을 밝혀서, 마음이 만들어낸 부처나 지옥이 본래 공함을 요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이 마음을 관한다면 곧바로 지옥의 고통을 벗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옥을 타파할 뿐만 아니라 십법계(十法界)를 일시에 타파하는 것이다. 참다운 공으로서 하나의 진리인 법에 들어가기 때문에 평등한 참법계로서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는 것이다.

此非妙術神通 假於他勢 以法如是故 可驗自心不可思議神妙之力. 高而無上 淵而不深 延而不長 促而非短 廣而無相 顯而無蹤 有而不常 無而不滅 照體獨立 稱性普周 妙萬物故 稱之爲神 孕一切故 名之爲母. 統御該攝 通變無窮. 任照忘疲 若明鏡之寫像 應緣無作 猶虛谷之傳聲. 居方而方相分明 處圓而圓文顯現. 在悟而悟成諸佛 墮迷而迷作衆生. 跡任千途 本地不動.



이것은 묘한 기술과 신통을 사용하여 다른 세력을 빌려 오는 것이 아니고, 법이 이와 같기 때문에 자기 마음의 불가사의한 신묘한 힘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지는 높고 높아서 더 높을 것이 없으며, 깊고 깊어서 더 깊을 것이 없으며, 늘려도 늘어나는 것이 아니며, 쪼그라뜨려도 쪼그라지는 것이 아니며, 광범위하게 나타나더라도 어떤 모습이 없으며, 확 드러나더라도 어떤 자취가 없으며, 있으면서 영원하지도 않으며, 없으면서 단멸하지도 않으며, 바탕을 비추는 작용이 낱낱이 드러나나 성품에 칭합하여 널리 두루해서 만물에 미묘하게 작용하므로 신()이라 하기도 하고, 일체를 품고 있기 때문에 어머니라 하기도 한다. 전체를 통괄하여 싸안고 거두며 하나로 통하면서 변화시키는 것이 무궁무진한 것이다.

일체를 비추는 작용 속에 있으면서도 지칠 줄 모르니 마치 밝은 거울에 비추이는 그림자와 같고, 인연에 응하여도 작위(作爲)가 없으니 빈 골짜기의 메아리와 같다. 모난 곳에 있으면 모난 모습이 분명하고, 둥근 데에 있으면 둥글고 부드러운 모습이 나타난다. 깨달음에 있으면 깨달아서 모든 부처를 이루고, 미혹한 데 떨어지면 미혹하여 중생이 된다. 움직이는 흔적이 여러 갈래로 나타나나 본래의 마음 자리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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