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의 이치로 분별이 없다
18-4-47 問 衆生業果 種子現行 積劫所熏 猶如膠漆 云何但了一心 頓斷成佛. 答 若執心境 是實人法不空 徒經萬劫修行 終不證於道果. 若頓了無我 深達物虛 則能所俱消 有何不證. 猶微塵揚於猛吹 輕舸隨於迅流 只恐不信一心 自生艱阻 若入宗鏡 何往不從. 且如勇施菩薩 因犯婬欲 尙悟無生 性比丘尼 無心修行 亦證道果 何況信解一乘之法 諦了自心 而無剋證乎.
문 : 중생이 지은 업의 결과로 전생에 뿌려 놓은 씨앗이 금생에 나타나는 것은 오랜 세월 훈습되어 마치 아교나 옻칠과도 같아 떨어지지 않는데, 어떻게 일심(一心)만 알면 단번에 번뇌를 끊어 성불한다고 하십니까.
답 : 만약 마음과 경계에 집착하여 실재의 나와 대상이 공(空)하지 않다면 부질없이 백천만겁의 세월이 지나도록 수행해도 끝내 도과(道果)를 증득하지 못하리라. 만약 단번에 무아의 이치를 요달하여 깊이 모든 사물의 실체가 비어 있다는 걸 통달하면 곧 능소(能所)로 분리되는 일체의 대상이 사라지는 것이니, 무엇을 증득하지 못하겠는가. 미세한 먼지가 맹렬한 바람에 날리는 것과 같고, 가벼운 배가 빠른 물흐름을 타고 흘러가는 것과 같다.
다만 일심(一心)을 믿지 않고 스스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할까 걱정하니, 만약 일체의 근원인 종경에 들어간다면 어디에 간들 참다운 이치가 따르지 않겠는가.
용시 보살은 음욕을 범함으로써 무생(無生)을 깨달았고, 성비구니는 무심 수행으로써 또한 도과를 증득하였는데, 하물며 일승(一乘)의 법을 믿고 이해하여 자기의 마음을 분명히 알았는데 어찌 도과(道果)를 증득할 수 없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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或有疑云 豈不斷煩惱耶 解云 但諦觀殺盜婬妄 從一心上起 當處便寂 何須更斷. 是以 但了一心 自然萬境如幻. 何者 以一切諸法 皆從心幻生. 心旣無形 法何有相. 所以 高城和尙歌云 說敎本窮無相理 廣讀元來不識心 識取心了取境 識心了境禪河靜 若能了境便識心 萬法都如闥婆影.
혹 의심이 있어서 “어찌 번뇌를 끊지 않는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의심에 대하여 “단지 일심에서 살(殺)․도(盜)․음(淫)․망(妄)이 일어나는 것을 자세히 관(觀)하면 당처에 적멸하는 것인데, 여기에 어찌 다시 끊어내고자 하겠는가”라고 대답하여 의문을 풀어 줄 것이다.
이 때문에 단지 일심만 요지하면 자연 만 가지 경계가 허깨비와 같다. 왜냐하면 일체 모든 법이 모두 마음에서 허깨비와 같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마음에 이미 어떤 형태가 없는데, 마음에서 일어난 법이 어떻게 자기 모습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고성 화상은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설교로 무상의 이치 따지나
글이란 마음을 알지 못하네
마음과 경계의 사실 알아서
진실을 요지하면 편안하다네
경계가 마음이란 사실 안다면
만법은 모두가 신기루 같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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