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추회요(冥樞會要)

54. 허망한 몸과 마음은

通達無我法者 2008. 3. 3. 20:47
 

허망한 몸과 마음은

 

20-8-54 維摩經 觀衆生品 云. 爾時 文殊師利 問維摩詰言 菩薩云何觀於衆生. 維摩詰言 譬如幻師 見所幻人 菩薩觀衆生爲若此. 如智者見水中月 如鏡中見其面像 如熱時焰 如呼聲響 如空中雲 如水聚沫 如水上泡 如芭蕉堅 如電久住 如第五大 如第六陰 如第七情 如十三入 如十九界 菩薩觀衆生爲若此..



ꡔ유마경ꡕ 「관중생품」에서 문수사리가 유마힐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다.


문수 : 보살은 중생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유마 : 비유하면 요술을 부리는 사람이 요술로 만들어 낸 사람 보듯, 보살이 중생을 보는 것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마치 지혜로운 자가 물 속의 달 보듯, 거울에 비친 자기의 얼굴 보듯, 뜨거운 사막의 아지랑이 보듯, 골짜기의 메아리를 보듯, 허공의 구름을 보듯, 흐르는 물에 일어나는 거품을 보듯, 물 위에 있는 물방울 보듯, 속이 빈 파초의 단단한 껍질 보듯, 번개가 오래 머무는 것을 보듯, 제오대(第五大)제육음(第六陰)․제칠정(第七情)십삼입(十三入)․십구계(十九界)를1) 보듯 보살이 중생을 보는 것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如無色界色 如焦穀芽 如須陀洹身見 如阿那含入胎 如阿羅漢三毒 如得忍菩薩貪恚毁禁 如佛煩惱習 如盲者見色 如入滅盡定出入息 如空中鳥跡 如石女兒 如化人煩惱 如夢所見已寤 如滅度者受身 如無煙之火 菩薩觀衆生爲若此. 文殊師利言 若菩薩作是觀者 云何行慈. 維摩詰言 菩薩作是觀已 自念 我當爲衆生 說如斯法 是卽眞實慈也.



무색계(無色界)의 색을 보듯, 타버린 곡식의 새싹을 보듯, 오온이 화합하여 이루어진 몸을 실재한다고 잘못 아는 견해를 끊은 수다원(須陀洹)의 신견(身見)을 보듯, 다시 태어나지 않는 아나함이 태() 속에 들어가듯, 삼독(三毒)을 끊은 아라한의 삼독을 보듯, 모든 것을 참는 득인보살(得忍菩薩)이 탐욕과 성냄으로 금계를 훼손하는 것을 보듯, 부처님이 번뇌의 습기가 남아 있음을 보듯, 눈이 먼 자가 색을 보듯, 멸진정에 들어간 사람이 들여 마시고 내쉬는 숨을 보듯, 허공에 새 지나간 흔적을 보듯, 돌여자의 아이를 보듯, 허수아비의 번뇌를 보듯, 잠을 깬 뒤 꿈 속에 보았던 일을 보듯, 윤회를 끊은 자가 사람의 몸 받음을 보듯, 불이 없는 연기를 보듯, 보살이 중생을 보는 것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문수 : 보살이 이와 같이 본다면 어떻게 자비를 행하겠습니까.

유마 : 보살이 이와 같이 본다면 스스로 “나는 중생을 위하여 마땅히 이와 같은 법을 설한다”고 생각할 것이니, 곧 이것이 진실한 자비입니다.

淨名私記釋 云. 今明觀衆生品大精 只依其中一句行則足 得一句攝心 常照行之 一切萬行足. 只令汝自觀 觀汝身心 如此畢竟空 卽是菩薩觀衆生. 菩薩名道 道能通 通汝色心本性. 令離虛妄 卽是菩薩 菩薩只在汝身中. 觀汝身心如第三手 爲畢竟無身心.



ꡔ정명사기ꡕ에서 이것을 해석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금 「관중생품」의 요점을 밝히자면 다만 그 중에 한 구절만 의지하여도 충분하니, 한 구절에 마음을 거두어 항상 비추고 행하면 일체 만행이 구족하다. 단지 네가 스스로 보아 몸과 마음을 이와 같이 필경에 공()하다고 보면 곧 보살이 중생을 보는 것이다.

보살을 보살도(菩薩道)라 부르는 것은 도는 통할 수 있다는 뜻이니 너의 몸과 마음의 본래 성품에 통한다는 것이다. 허망함을 떠나도록 하면 곧 보살이니, 보살은 단지 너의 몸 가운데에 있다. 너의 몸과 마음을 존재하지 않는 제삼의 손같이 본다면 필경에 허망한 몸과 마음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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