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과 색여와 색성
20-9-55 天台淨名疏 釋不觀色不觀色如不觀色性者. 不觀色者 心如幻師 幻作種種色. 若知幻師是誑 則不得所幻之色 今色從心 幻師幻出 尙不得此心 何處見有此色 故不應觀色. 不觀如者 若見色與如異 是則泯色入如 今不見色如之別 故不觀如. 不觀性者 卽不觀佛性 不觀色是空俗 不觀如是空眞 不觀佛性是空中道.
천태의 ꡔ정명소ꡕ에서는 ꡔ유마경ꡕ 「아축불품」의 구절인 “색(色)도 보지 않고 색여(色如)도 보지 않으며 색성(色性)도 보지 않는다”를1)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색도 보지 않는다’는 것은 환사(幻師)와 같은 마음이 환(幻)으로 여러 가지 색을 만드는 것이다. 만약 환사가 속인다는 것을 알면 환사가 만들어 낸 색을 취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색이 마음을 좇아 나옴도 환사(幻師)가 환(幻)을 내놓은 것이니 오히려 이 마음도 얻을 수 없는 것인데, 어느 곳에서 마음이 만들어 낸 색을 보겠는가. 그러므로 응당 색을 보지 않는 것이다.
‘색여(色如)를 보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약 색(色)을 진여(眞如)와 다르다고 보면 이것은 색을 버리고 진여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색과 진여를 다르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진여를 보지 않는 것이다.
‘색성(色性)을 보지 않는다’는 불성(佛性)을 보지 않는 것이다. 색을 보지 않음은 속제(俗諦)가 공(空)한 것이고, 색여(色如)를 보지 않음은 진제(眞諦)가 공(空)한 것이며, 불성을 보지 않음은 중도(中道)가 공(空)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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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其計中道有佛性 而起順道愛生 是爲頂墮. 故經云 我及涅槃 是二皆空 唯有空病 空病亦空. 今不觀性 是無順道愛故. 夫受世間差別果報 皆爲一念心異分別情生 取衆生相爲凡 執諸佛境爲聖. 如經所說 觀衆生 如幻師見幻 觀如來 則三際體空. 二見於是雙消 情量爲之俱泯 則可以成諸佛之喜 除菩薩之憂. 信此一心 能入宗鏡 .
사람들은 중도에 불성이 있다고 생각하므로 중도를 따르고자 하는 애틋한 마음이 일어나지만, 이것은 자기 경계에 집착하여 정상의 공부에서 추락하는 잘못된 길이다.2) 그러므로 ꡔ유마경ꡕ에서 “나와 열반 이 두 가지가 모두 공하다. 여기에 오직 공에 집착하는 병이 있지만, 공에 집착하는 병 또한 공하다”고 하였다.
지금 ‘불성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중도를 따르고자 하는 애착이 없다는 것이다. 대개 세간의 차별된 과보는 모두 한 생각에 마음이 달라져 분별된 알음알이로 생기니, 중생의 모습을 취하면 범부가 되나 부처님의 경계에 집착하면 성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경에서 설한 것과 같이 중생 보기를 환사(幻師)가 환(幻) 보듯하며, 여래를 보면 과거․현재․미래의 바탕이 공한 것이다. 여기에서 온갖 차별되는 견해가3) 하나로 녹고 알음알이로 행하는 모든 것들이 함께 사라지니, 곧 모든 부처님이 기뻐하는 자리이며 보살의 걱정이 없어지는 곳이다. 이 하나의 마음을 믿어서 종경에 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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