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부처님을 보는 것
23-3-66 問 一念成佛 已入信門 如何得目前了了分明而見. 答 目前無物 是眞見佛. 如文殊師利巡行經 以經中說 文殊遍巡五百比丘房 皆見寂定 因以爲名 最後難舍利弗 以顯甚深般若. 問舍利弗言 我時見汝 獨處一房 結加趺坐 折伏其身 汝爲當坐禪耶否耶. 答云 坐. 難云 爲當欲令未斷者斷故 坐禪耶等 因此廣顯性空無得之理意.
문 : 한 생각에 부처님이 되면 이미 믿음의 문에 들어선 것인데, 어떻게 눈 앞에서 분명히 요지하여 볼 수 있겠습니까.
답 : 눈 앞에 한 물건도 없으면 참으로 부처님을 보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ꡔ문수사리순행경ꡕ에서 말하는 다음 내용과 같다. 이 경의 제목은 경 가운데에서 “문수가 오백 비구의 방을 두루 돌면서 모두 적정을 보았다”고 설한 내용에서 온 것인데, 이 경의 맨 마지막은 사리불에게 나무라듯 질문하여 깊고 깊은 반야의 도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문수가 사리불에게 “내가 그 때 당신이 홀로 거처하는 수행처에서 결가부좌하여 당신의 몸을 조복받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당신은 좌선을 하고 계셨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사리불은 “그렇습니다. 좌선을 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답하였다.
이 답변에 문수는 사리불을 힐난하여 “번뇌를 아직 끊지 않은 자가 번뇌를 끊도록 하기 위해 좌선을 합니까”라는 등의 질문을 하였고, 이로 인하여 성품이 공하여 얻을 수 없는 이치의 뜻을 널리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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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百比丘 從座而起 於世尊前 高聲唱言 從今已去 更不復見文殊身 不復聞其名字. 如是方處 速應捨離. 所有文殊一切住處 亦莫趣向. 所以者何 文殊煩惱解脫一相說故等. 舍利弗 令文殊 爲決了. 文殊言 實無文殊而可得故 若實無文殊可得者 彼亦不可見等 廣爲說法. 四百比丘 漏盡得果 一百比丘更謗 陷入地獄 後還得道 廣如彼說. 所以 無見是眞見 無聞是眞聞 不見不聞文殊 是眞見眞聞文殊矣.
이 때에 이런 질의 응답을 듣고 오백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 앞에서 큰 소리로 “세존이시여, 저희는 지금부터 다시는 문수의 몸을 보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그의 이름을 듣지 않겠습니다. 이 장소를 버리고 바로 떠날 것입니다. 문수가 있는 일체의 어떤 장소에도 또한 나아가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문수는 번뇌와 해탈을 하나의 모습으로 설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사리불이 문수에게 부탁하여 이들의 의심을 풀어주도록 하였다.
문수는 “실로 문수라 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문수라 할 것이 없다면 그 또한 문수를 보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여 널리 법을 설하게 되었다.
그러자 사백 명의 비구가 누진통(漏盡通)의 과(果)를 얻었고, 나머지 일백 명의 비구는 다시 이 법문을 비방한 과보로 지옥에 떨어졌으나, 뒷날 이 법문을 들은 공덕으로서 도리어 도과(道果)를 얻게 되었다고 널리 이와 같이 설하였다. 그러므로 볼 것 없음이 참으로 보는 것이며, 들을 것 없음이 참으로 듣는 것이다. 문수를 보지도 듣지도 않는 이것이 참으로 문수를 보고 듣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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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不信此說 雖起謗而陷獄 以曾聞故 終熏種而得道. 何況聞而信耶. 則成道不隔於一念. 故知 宗鏡見聞 無不獲益矣.
만약 이러한 설을 듣고도 믿지 않고 비방하여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일찍이 법문을 들은 공덕으로 끝내 바른 법의 종자를 훈습하여 도를 얻게 된다. 하물며 이 법을 듣고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야 어찌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곧 도를 이룸이 한 생각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종경으로 보고 들으면 획득치 못할 이익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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