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이 수기하면 무정도
23-17-71 問 若卽心是佛者 則一切含生 皆有此心 盡得成佛 敎中 云何不見 授劫國名號之記. 答 劫國名號 乃是出世化門之中 現前別記. 欲知眞記者 淨名經云 一切衆生亦如也 一切法亦如也 華嚴經頌云 顯佛自在力 如說圓滿經 無量諸衆生 悉受菩提記.
문 : 만약 마음 자체가 부처라면 일체중생 모두에게 이 마음이 있으니 다 성불할 것입니다. 그런데 가르침 가운데 무엇 때문에 무정(無情)에게 겁(劫)과 나라(國)와 명호(名號)를 주어 수기하는 것을 볼 수 없습니까.
답 : 겁과 나라와 명호는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시어 중생을 교화하며 중생의 앞에서 바로 주는 개별적인 수기다. 참다운 수기에 대하여 ꡔ정명경ꡕ에서는 “일체중생도 여여(如如)하고, 일체법도 여여하다”고 하였고, ꡔ화엄경ꡕ 게송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부처님이 자재한 힘 나투시어서
일체법을 원만하게 설하심 같이
여기에 한량없는 온갖 중생들
모두 다 깨달음의 수기를 받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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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頌云 一一心念中 普觀一切法 安住眞如地 了達諸法海. 又頌云 一一微塵中 能證一切法 如是無所礙 周行十方國. 斯則 人法心境 悉記成佛 以一念具足 一塵不虧. 念念證眞 塵塵合體 同居常寂光土 俱號毘盧遮那. 終無異土別身聖强凡劣 與三世佛 一時成道 前後情消 共十類生 同日涅槃.
하나하나 쓰여지는 마음 가운데
널리 두루 일체법을 쳐다보며는
진여의 여래 땅에 안주하여서
모든 법의 진리 바다 요달하였네.
하나하나 나타나는 미진 가운데
둘이 아닌 일체법을 증득하나니
이와 같이 걸림없는 법의 진리가
두루두루 시방국토 나아 간다네.
이런즉 주관과 객관 및 마음과 경계가 모두 다 수기하여 부처님이 되니, 한 생각에 모든 것을 갖추어 한 티끌도 어그러지지 않는 것이다. 생각마다 진여를 증득하고 티끌마다 진여의 바탕에 계합하여 항상 고요하고 빛나는 나라에 같이 있으면서 비로자나 부처님이라 부르는 것이다. 끝내 다른 국토나 다른 몸으로서 성인은 우수하고 범부는 하열하다는 구별 없이, 삼세의 부처님과 더불어 일시에 도를 이루어 전후(前後)라는 분별의 망정이 사라지며, 십법계(十法界)의 중생과 같은 날 함께 열반을 증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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始終見絶 免起有情無情之妄解 不生心內心外之邪思. 可謂 上無所求 下無可化 冥眞履實 得本歸宗. 俱登一際解脫之門 盡受平等菩提之記. 又 古德問云 旣色心不二 修性一如 何不見 木石受菩提記耶. 答 一一諸色 但唯心故 心外無法 豈唯心滅 而色猶存. 佛但記有情 攝無情也. 譬如 幻事要藉幻心 心在幻中 能持幻事. 若其心滅 幻事同無.
처음과 끝이라는 분별 견해가 끊어지니 유정과 무정이라는 허망한 견해도 일으키지 않으며, 마음 안과 마음 밖이라는 삿된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다. 위로는 구할 것이 없고 아래로는 교화할 것이 없다고 할 만하니, 진실에 명합해 들어가서 근본을 얻어 종지에 돌아간다. 다 함께 하나의 진리인 해탈문에 올라, 모두가 다 평등한 깨달음의 수기를 받는 것이다. 또한 옛 스님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물었다.
문 : 마음과 경계가 둘이 아니어서 닦는 성품이 하나같이 여여한데, 어찌 나무와 돌이 깨달음의 수기받는 것을 볼 수 없습니까.
답 : 하나하나의 모든 경계가 단지 마음이기 때문에 마음 이외에 다른 법이 없는데, 어찌 마음만 멸하고 경계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부처님은 단지 유정을 수기하는 것만으로 무정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이것을 비유하면 환(幻)으로 일어나는 일이 환(幻)을 일으키는 마음의 힘을 빌려야 하는 것과 같이, 마음이 환(幻) 가운데 있어야 환(幻)으로 일어나는 일을 지닐 수가 있다. 만약 환(幻)을 일으키는 마음이 멸하면 환(幻)으로 일어나는 일도 똑같이 없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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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但滅心 不復滅事. 衆生色心 亦復如是 皆如幻相. 一切外境 從幻心生 豈猶滅心 而存幻色. 此卽有情得記 無情亦然 是故 無情不須別記. 夫立劫國名號授記作佛者 爲引未發心者 令嚮慕耳.
그러므로 단지 환을 일으키는 마음을 멸하면 다시 그로 인해 일어나는 일을 멸할 필요가 없다. 중생의 마음과 경계도 또한 이와 같아 모두가 환으로 일어나는 모습과도 같다. 일체의 바깥 경계가 환 같은 마음에서 생겨난 것인데 어찌 환 같은 마음을 멸하고 환 같은 색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곧 유정(有情)이 수기하면 무정(無情)이 또한 그러하므로 무정은 따로 수기를 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겁(劫)과 나라 또는 명호를 세워서 수기를 받아 부처님이 된다고 함은 아직 발심(發心)하지 못한 사람을 인도하여 부처님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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