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와 문수와 보현
34-6-109 心垢則娑婆現相 心淨則華藏含空. 迴轉而恆起識輪 交羅而匪離心網. 故海幢不起寂定 廣作十方佛事之門 善財不出道場 遍歷一百十城之法. 是以 文殊卽自心能證之妙慧. 善財至彌勒 一心佛果滿後 却令見文殊 因位將極 令返照心原. 更無有異 未始動念故. 再訪文殊 不見其身者 但了自心空般若故 是眞見文殊. 普賢是自心所證法界無盡妙行. 善財 雖遍法界 參諸善友 欲見普賢 不假別指. 便於初會 始成之處.
마음에 번뇌가 있으면 사바세계의 모습이 나타나나, 마음이 청정하면 허공 가득 꽃으로 장엄한 세계니라. 육도에 윤회하면서도 항상 알음알이를 일으키고, 꽃으로 장엄한 세계가 중중무진으로 펼쳐지나 마음의 그물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당 비구는 고요한 선정의 삼매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널리 시방세계의 불사를 완성하였고, 선재 동자는 도량을 벗어나지 않고도 백열 군데나 되는 성의 모든 법문을 두루 섭렵하였다. 이 때문에 문수는 곧 자기 마음에서 증득한 현묘한 지혜였다. 선재가 미륵에게 도달하여 한마음으로 부처님의 과보가 원만해진 뒤에 도리어 문수를 보도록 한 것은 인위(因位)에서 극적으로 마음의 근원을 회광반조토록 한 것이었다. 여기에 다시 또 다른 법이 없었으니, 애초에 한 생각도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재가 재차 문수를 방문하였을 때에 문수의 몸을 보지 않았던 것은 단지 자기 마음을 깨달은 공(空)한 반야였기 때문이니, 이것이 참으로 문수를 본 것이다.
보현은 자기 마음이 증득한 법계의 끝이 없는 현묘한 행이다. 선재가 법계에 두루 선지식을 찾아 보현을 보려 해도 별다른 가르침을 얻는 것이 아니다. 문득 처음 발심하는 자리가 바로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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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來座前 而起念求 隨念卽見普賢在如來前 初無動移. 此正顯觀心卽見希奇之相 見聞證入 由睹前相 卽是見心故. 以普賢身相如虛空 遍一切處故 以普眼菩薩等 入百千三昧 求覓普賢 不見 只謂離念入定 厭境求眞. 不知塵塵是文殊 念念卽普賢故. 是以 善財一人 運悲智而橫廣十方 修願行而豎窮三際. 從初至後 因滿果圓 明顯一心 以爲牓樣.
여래의 앞에서 생각을 일으켜 구하고자 하면 생각을 일으키는대로 곧 여래 앞에 있는 보현을 보나, 여래 앞에 앉아 있었던 자리를 처음부터 조금도 움직여 이동한 것이 없었다. 이것은 바로 마음을 보는 것이 곧 드물고 기특한 모습을 본다는 사실을 드러내거니와, 보거나 듣고 증득해 들어가며 앞의 모습을 봄이 곧 마음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현의 모습은 마치 허공과 같아서 일체 모든 곳에 두루하였기 때문에, 보안 보살 등이 백천삼매(百千三昧)에 들어감으로써 보현을 찾고자 하였으나 보현을 보지 못함은, 다만 망념을 떠나 선정에 들어가며 경계를 싫어하고 참다운 것을 구하려 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티끌 하나하나가 문수이며, 생각 하나하나가 보현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선재 동자 한 사람이 대자대비를 운용하여 시방세계를 편력하였고, 원력과 보살행을 닦아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과가 원만하였으니, 하나의 마음이란 도리를 분명하게 드러낸 수행의 본보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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