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추회요(冥樞會要)

116. 중생의 근기에

通達無我法者 2008. 3. 5. 14:18
 


중생의 근기에

 

37-7-116 原夫立敎1) 皆爲對機 機宜不同 敎分多種. 且如觀色一法 五敎證入不同. 初小乘 見是實色 不說性空. 初敎 見此色法 從緣所成 必無自性 卽空無所有. 如波歸水. 終敎 見色空無礙. 以眞空不守自性 隨緣成色 卽是幻色. 遂賴空成 卽此賴空之色 虛相無體 恆自性盡而空現. 是故 色卽空而常泯 空卽色而常存.



원래 가르침은 모두 중생의 근기를 상대하여 세웠는데 중생의 근기가 똑같지 않기에 가르침도 여러 종류로 나누어졌다. 이것은 색()이라는 하나의 법을 보는 입장에서도 화엄종에서 나눈 다섯 가지 가르침이 증득해 들어가는 내용이 다른 것과 같다.


처음 소승교(小乘敎)에서는 색을 실제로 존재한다고 보아 그 성품이 공함을 설하지 않는다.

둘째 대승초교(大乘初敎)에서는 이 색법(色法)은 인연으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반드시 스스로의 결정된 성품이 없다고 보니, 곧 공하여 존재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파도의 모습이 사라져 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셋째 대승종교(大乘終敎)에서는 색과 공이 서로 걸림이 없다고 본다. 참다운 공은 자성을 지키지 않고 인연을 따라 색을 만들기 때문이니 곧 이 색은 실재하지 않는 허깨비와 같은 환색(幻色)이다. 마침내 공을 의지하여 만들어지긴 하나 곧 공을 의지하여 만들어진 색은 허상으로 어떤 실체가 없으니, 항상 색()이라는 것은 자기의 성품을 만든 인연이 다하면 공()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색은 공으로 항상 사라지며, 공은 색으로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要由自盡之色 方是空色 成色之空 乃是眞空 擧體互融 無有障礙 如水入波. 頓敎 一色法無非眞理所收 是故 此色卽眞理一味等 更無別法而可顯說2) 如水波雙絶. 圓敎 起卽全收 一多互攝 同時成立 一塊圓明. 隨擧卽色 隨擧卽空 義味自在 隨智取用. 何以故 隨擧一門 無不顯現. 古德云 皆本一心而貫諸法. 夫一心者 萬法之總也. 分而爲戒定慧 開而爲六度 散而爲萬行.



요컨대 저절로 인연이 다함으로 말미암은 색이 바야흐로 공한 색이요, 색을 이루는 공이 참다운 공이 되니, 바탕 전체가 드러나서 서로 원융하여 장애가 없음이 마치 물이 파도의 모습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넷째 대승돈교(大乘頓敎)에서는 하나의 색법(色法)이 진리에 거두어지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이 색 자체가 진리와 한 맛으로 평등하여 다시 다른 법으로 드러내 설할 것이 없다. 이것은 마치 물 자체의 축축한 성품을 알기 때문에 물과 파도로 구분하는 상대적인 견해가 모두 끊어짐과 같다.

다섯째 원교(圓敎)에서는 한 생각이 일어나면 곧 전체가 진리에 거두어져, 일()과 다()가 서로 섭수하고 동시에 성립하니, 한덩어리로 뚜렷하게 밝은 것이다. 일어나는 현상계 전체가 색이요 공으로서, 의미가 자재하여 지혜를 따라 얼마든지 쓰는 용도가 취해진다. 왜냐하면 하나를 들어도 일체가 모두 드러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옛 스님은 “모든 것이 본래 하나의 마음으로 일체 모든 법을 관통한다”고 말하였다. 대저 일심(一心)이란 만법을 총괄한다. 이것이 나뉘어 계정혜가 되고 열리면 육바라밀이 되며 흩어져 일체만행이 된다.

萬行未嘗非一心 一心未嘗違萬行. 然則一心者 萬法之所生 而不屬於萬法. 得之者則於法自在矣 見之者則於敎無礙矣. 本非法 不可以法說 本非敎 不可以敎傳. 豈可以軌跡而尋哉. 故知 但硏精一法 內照分明. 自然柔軟入神 順法界之性 無心合道 履一際之門. 華嚴私記云3) 無縛無著迴向者 只了一切皆如故 所以 無縛著耳. 知一切皆無縛脫 一法旣爾 一切法皆然. 所以 一切法卽一法 一法卽一切法.



일체만행이 일찍이 하나의 마음 아님이 없었고, 하나의 마음이 일찍이 만행을 어긴 적이 없었다. 그러니 일심(一心)이란, 만법이 생겨나는 곳이면서 만법에 속하지를 않는다.

이러한 이치를 얻은 자는 법에 자재하며, 이러한 이치를 보는 자는 가르침에 걸림이 없다. 본래 법이 아니니 법으로 설할 수 없고, 본래 가르침이 아니니 가르침으로 전할 수도 없다. 그런데 어찌 짜여진 틀과 자취로써 이 법을 찾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알라. 하나의 법만을 정미롭게 연마하면 안으로 비침이 분명하여 자연히 신령한 곳에 부드럽게 들어가 법계의 성품에 수순할 것이며, 무심으로 도에 계합하여 일체가 모아진 하나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ꡔ화엄사기ꡕ에서는 “속박할 것도 없고 집착할 것도 없는 회향이란, 다만 일체가 모두 여여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속박하거나 집착할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일체 모든 법이 속박하거나 해탈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 하나의 법이 이미 그러하듯 일체 모든 법도 또한 다 그러하다. 그러므로 일체 모든 법이 곧 하나의 법이며, 하나의 법이 곧 일체 모든 법이다.

若一切法皆無性 卽是分身佛集 寶塔出現 須彌入芥耳. 如是洞達 一解千從 則知佛向無所有中出生 法於畢竟空中建立. 以無生無性 故迴轉由心. 遂得集散同時 大小卽入. 所以 森羅義趣 報化影像 乃至無量德業4) 廣大神通 於宗鏡中 一時顯現. 且如龍蜃等類 全是業果生死之身 尙現不思議之力用 何況悟根本心 具如實智 而不能現廣大之神用乎.



만약 일체 모든 법에 결정된 성품이 없다면 곧 몸을 여럿으로 나투신 부처님이 모여 보탑에 출현하실 것이며, 커다란 수미산이 한 알의 겨자씨에 들어갈 것이다.

이와 같이 통달하여 하나를 알아 천 가지를 이해하니 곧 부처님이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 출생하고, 법이 필경에 공()한 가운데 건립됨을 아는 것이다.

생겨날 것도 없고 결정된 성품도 없기에 돌고 도는 육도의 윤회가 모두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침내 모이고 흩어짐이 동시이며, 크고 작음이 서로가 서로에게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삼라만상의 갖가지 모양과 보신과 화신의 그림자와 무량한 공덕과 광대한 신통이 모두 종경 가운데에서 일시에 현현하는 것이다.

또 용과 이무기 등의 무리가 전부 업의 결과로 나타난 생사의 몸이로되 오히려 부사의한 힘을 내는데, 어찌 하물며 근본 마음을 깨달아 여실한 지혜를 갖추고도 광범위한 신통의 작용을 나타낼 수 없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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