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할지어다
42-4-142 如此華嚴經中1) 無有假法 諸法總眞 純眞無假 更無相似存眞存假. 經云 衆生界卽佛界也. 如文殊以理會行 普賢以行會理 二人體用相徹 以成一眞法界 前後相收 品品之中 互相該括. 前後相徹 文義更收 一法門中具多法也. 是故 經偈云 於多法中爲一法 於一法中爲衆多. 然此心是法界之都 無法不攝. 非但凡聖因果 乃至 逆順善惡同歸. 若一一悟是自心 則事事無非正理.
이 ꡔ화엄경ꡕ에 거짓된 법이 없음과 같이, 모든 법 전체가 참되고 순수한 진여로서 거짓이 없으니, 또한 진여인 듯하거나 거짓인 듯하는 것도 없다. 이것을 경에서 “중생의 세계가 곧 부처님의 세계”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문수는 이치로 행을 회통하고 보현은 행으로 이치를 회통하여, 두 보살의 체(體)와 용(用)이 서로 확철한 것과 같다. 하나의 참된 법계를 이루기 때문에 앞과 뒤가 서로 거두어 하나하나의 품계마다 거듭 서로가 싸안는 것이다. 앞과 뒤가 서로 사무치고 글과 뜻을 다시 거두어 하나의 법문 가운데에 많은 법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경의 게송에서는 “많은 법 가운데에 하나의 법이요, 하나의 법 가운데에 많은 법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 마음은 법계의 중심으로 어떠한 법도 섭수하지 않음이 없다. 단지 범부와 성인의 인과(因果)뿐만 아니라, 나아가 역순(逆順)과 선악(善惡)의 모든 경계까지도 다 함께 돌아가는 곳이다. 만약 하나하나가 자기의 마음임을 깨달으면 곧 하는 일마다 바른 이치 아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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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經云 提婆達多 不可思議 所修行業 皆同如來 六群比丘 實非弊惡 所行之法 皆同佛行 有修善者 地獄受果 惡行之人 天上受報. 如不達斯文 則逆順分岐 焉能美惡同化. 然初章之內 已述正宗. 若上上機人 則一聞千悟 斯皆宿習見解生知. 若是中下之根 須憑開導 因他助發. 方悟圓成 爲此因緣 微細纂集.
이것은 경에서 “제바달다가2) 불가사의하게 닦은 행업은 모두 여래와 같고, 육군 비구의3) 행이 실지는 폐단이 아니어서 그들이 행한 법 모두가 부처님의 행과 같다. 선업을 닦은 자가 지옥의 고통을 받고 악업을 지은 사람이 천상의 즐거움을 받는다”고 한 것과 같다. 만일 이 글의 의미를 통달하지 못했다면 역순의 경계가 갈라지리니, 어찌 아름답고 추함을 똑같이 교화시킬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첫 장에서 이미 바른 종지를 서술한 것이다.
만일 상근기 중의 상근기라면 하나를 듣고도 천을 깨치리니, 이는 모두 전생에 익혀 놓았던 견해로 태어나면서 배우지 않고도 아는 것이다. 만약 중근기나 하근기라면 모름지기 선지식의 가르침에 의지해야 하니, 선지식의 도움으로 인해 발심해야 비로소 원만한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연을 위하여 자세하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글을 편찬해 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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所以 云 若有一微塵處未了 此猶有無明在 以不了處爲障翳故. 何況自身根門之內 日用之中 有無量應急法門 全未明一. 如生盲人 每日 喫一百味飯 雖然得喫 品饌何分. 若言無分 又每日得喫. 若言有分 設問總不知. 若欲爲未了之人 憑何剖析. 只成自誑 反墮無知. 自眼未開 焉治他目.
그러므로 이르기를 “만약 한 티끌만치라도 아직 알지 못하는 곳이 있다면 이는 오히려 무명이 남아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으니, 이는 알지 못하는 곳이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하물며 자신의 육근과 일상 생활 속에 살아 있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법문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온전하게 하나도 그 이치를 밝히지 못한 사람이야 어찌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것은 마치 눈 먼 사람이 매일 일백 가지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 같으니, 그가 음식을 먹더라도 그 종류를 어찌 구분할 수 있겠는가. 만일 그가 음식의 종류를 구분하지 않아도 또한 그는 매일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음식의 종류를 구분한다 하더라도, 음식의 종류에 대해 묻는 말은 조금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이 사람이 음식 맛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위하여 음식의 종류를 알려 주고 싶더라도, 무엇에 의거하여 가려내고 분별하여 주겠는가. 다만 스스로 속임은 물론 도리어 무지(無知)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자기의 눈도 아직 뜨지 못했는데, 어찌 다른 사람의 눈을 치료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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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以 善財首見文殊 已明根本智 入聖智流中 然後 遍參道友 爲求差別智道 習菩薩行門 遇無厭足國王如幻法門 見勝熱婆羅門無盡輪解脫 尙乃迷宗失旨 對境茫然. 故知 佛法玄微 非淺智所及. 何乃將蚊子足 擬窮滄溟之底 用蜘蛛絲 欲懸妙高之山. 益抱慚顔 須申懺悔.4)
이 때문에 선재는 먼저 문수를 만나 근본지를 밝히고서 성인의 지혜로 들어간 연후에야 선지식을 두루 참학한 것이다. 차별된 지혜의 도를 구하기 위하여 보살행을 익히며 무염족 국왕의 환 같은 법문을 만나고, 승열 바라문의 무진륜 해탈을 보았으나, 오히려 아직 종지에 미혹하고 경계를 대하고 망연자실한 것이다.
그러므로 알라. 부처님의 법은 깊고 오묘하여 천박한 지혜로 미칠 바가 아니니, 어찌 모기의 발을 가지고 깊고 큰 바다의 밑바닥에 닿으려 하며, 가느다란 거미줄을 사용하여 아득히 높은 산을 매달고자 하는가. 부끄러운 얼굴을 싸안고 참회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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