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추회요(冥樞會要)

158. 돌 호랑이 산 앞에서

通達無我法者 2008. 3. 5. 15:40
 

돌 호랑이 산 앞에서

 

45-7-158 又 且無心者 不得作有無情見之解. 若將心作無 此卽成有 若一切處無心 如土木瓦礫 此成斷滅 皆屬意根 强知妄識邊事. 是以 稱不思議定者 以有無情見不及故. 又 澄湛是事 當體是理. 事有顯理之功 亦有覆理之義 理有成事之力 亦有奪事之能. 各取則兩傷 並觀則俱是. 何謂顯理. 若妙性未發 須假事行助顯莊嚴 如水澄淸 魚石自現. 何謂成事 若功行未圓 必仗理觀引發開導.



또 무심이란 ‘있다 없다’는 알음알이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마음을 가지고 ‘없다’라는 견해를 지으면 이것은 곧 ‘없다’는 견해가 있게 되고, 만약 일체 모든 곳에 ‘아무런 마음이 없어’ 마치 토목이나 기왓장 부스러기와 같다면 이것은 곧 마음이 끊어져 멸했다는 단견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의근(意根)에 속하며 허망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을 억지로 아는 것이다.

이러하므로, 부사의선정이라는 경지는 ‘있다 없다’는 알음알이로써는 미칠 수 없는 것이다. 또 맑고 담담함이 사()의 측면이라면 당체는 이()의 측면이다. 사()에는 이()를 나타내는 공능이 있으면서 또한 이()를 덮는 뜻도 있으며, 이()에는 사()를 만들어내는 힘이 있으면서 또한 사()를 박탈하는 공능도 있다. 이()와 사()를 따로 취하면 둘 다 손상되나 아울러 관찰한다면 둘 다 옳은 것이다.

무엇이 이()를 드러낸다고 하는 것인가. 만약 묘()한 성품이 드러나지 못했다면 사()를 빌려서 장엄을 드러내게 도와야 한다는 것이니, 마치 물이 맑으면 고기와 돌이 저절로 나타나 보이는 것과 같다. 무엇이 사()를 만든다고 하는 것인가. 만약 힘써 노력함에도 원만하지 못하면 반드시 이()에 의지해 관()하도록 끌고 인도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何謂覆理. 若一向執事坐禪 反迷己眼 未識玄旨 徒勞念靜. 何謂奪事. 若天眞頓朗 如日消冰 何須調心收攝伏捺. 故經偈云 若學諸三昧 是動非是禪 心隨境界流 云何名爲定. 問 旣不得作有無之解 如何是正了無心. 答 石虎山前鬪 蘆華水底沈.



무엇이 이()를 덮는다고 하는가. 만약 한결같이 사()에 집착하여 좌선한다면 도리어 자기의 안목에 미혹하여 현묘한 종지를 알지 못할 뿐 부질없이 고요한 생각에 빠지는 수고를 면치 못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사()를 박탈한다고 하는 것인가. 만약 천진하여 대번에 밝아지면 마치 햇빛이 얼음을 녹임과 같다는 것이니, 여기에 어찌 마음을 다스려 번뇌를 굴복시킬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경의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삼매를 따로 정해 배운다 하면

   대상 따라 움직이니 선이 아니네

   마음이 경계 따라 흔들리거늘

   어떻게 선정이라 이름하리오.


문 : 이미 ‘있다 없다’는 견해를 지을 수 없다면 무엇이 바로 무심을 아는 것입니까.


답 : 돌 호랑이 산 앞에서 으르렁하며, 갈대 꽃이 물 밑으로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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