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추회요(冥樞會要)

161. 말은 비슷하나 뜻이 다르다

通達無我法者 2008. 3. 5. 15:43
 


말은 비슷하나 뜻이 다르다

 

46-8-161 易云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 禮云 人生而靜 天之性也 感物而動 性之欲也. 後儒皆以言詞小同 不觀前後本所建立 致欲渾和三敎. 但見言有小同 豈知義有大異. 是知 不入正宗 焉知言同意別 未明已眼 寧鑒名異體同. 所以 徇語者迷 據文者惑 恐參大旨 故錄示之. 且如外道說自然 以爲至道 不成方便 仍壞正因. 佛敎亦說自然 雖成正敎 猶是悉檀對治1) 未爲究竟. 以此一例 其餘可知.



ꡔ주역ꡕ에서는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으나 사물에 감응하면 마침내 천하의 도리에 통한다”고 하였고, ꡔ예기ꡕ에서는 “사람이 나면서 고요한 것은 하늘에서 받은 성품이며, 이것이 사물에 감응하여 움직이는 것은 성품이 하고자 함이다”라고 하였다. 뒷날의 유학자는 대개 말이 비슷하다 하여 전후의 본래 의미를 보지 않고 불교와 유교와 도교의 가르침을 하나로 섞으려 하였다. 단지 말이 조금 같음을 보았을 뿐이니, 어찌 크게 다른 뜻이 있음을 알겠는가. 이것으로 알라. 바른 종지에 들어가지 않고 말이 같으나 뜻이 다름을 어찌 알 수 있겠으며, 아직 자기의 안목도 밝히지 못했는데 어찌 명자가 달라도 바탕이 같음을 살필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말꼬리를 따르고 문장에만 의지하면 미혹하니, 이것이 큰 뜻에 뒤섞일까 걱정이 되므로 이렇게 기록하여 보여 주는 것이다.

만일 외도가 자연(自然)을 설하여서 지극한 도로 삼는다면 이는 방편도 아닐 뿐더러 도를 깨닫는 근본을 파괴하는 짓이다. 불교가 또한 자연(自然)을 설하여 바른 가르침을 이루었다 해도 아직 문자를 가지고 공부하는 과정이므로 수행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 하나의 예로서 나머지를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