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암잡록(山艤雜錄)

13. 일계 자여(一溪自如)스님의 행장

通達無我法者 2008. 3. 5. 21:19
 

 

 

13. 일계 자여(一溪自如)스님의 행장


중천축사 일계(一溪)스님의 법명은 자여(自如)이며 복건 사람이다. 원나라 병사가 강남을 침략했을 때 스님은 어린나이로 사로잡혔으나 임안(臨安)에 이르러 병사들이 스님을 내버리고 떠나가니, 임안의 부호 호씨(胡氏)가 스님을 거두어 길렀다. 그의 자제들과 함께 서당에서 독서하도록 하였는데, 스님은 서당의 모퉁이에 서서 정신을 집중하고 조용히 귀기울여 말없이 이해하고 하나도 잊지 않으니 호씨가 매우 좋아하였다. 자제가 장성하자 호씨는 그를 마을 무상사(無相寺)에 보내 승려가 되도록 주선하였다.

그후 경산사의 설봉(雪峰)스님을 찾아뵙고 종지를 깨쳤으며 계행이 엄정하였고 법복과 발우가 몸에서 떠나지 않았으며, 능엄경, 법화경, 유마경, 원각경 등을 암송하였다.

맨처음 절강(浙江) 만수사(萬壽寺)에 주지가 되었을 때 절 뒤편에 대부호 황씨(黃氏)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스님의 계행을 존경하여 항상 나물밥을 공양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집으로 스님을 초청하여 정성껏 공양을 올리고는 그의 금고를 열어 소장하고 있는 금옥 보화를 내보이며 스님의 마음을 동요시키려 하였다. 스님은 절로 돌아와 좌우의 스님들에게 말하였다.

”저 황씨가 금고 속의 보물을 내보인 것은 나의 마음을 현혹하여 죽은 후 그의 아들이 되도록 하려는 마음에서이다. 그러나 금옥 보화를 돌멩이처럼 보는 나의 마음을 조금도 모르고 있다. 이와 같은 전철을 밟은 옛사람들이 매우 많은데 그 가운데는 그의 아들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소나 말이 된 자까지도 있다. 나는 이제부터 황씨를 멀리할 것이다.”

천력(天曆) 원년(1329) 중천축사의 주지 소은(笑隱)스님이 관아에 글을 올려 칙명으로 대 용상사(龍翔寺)를 창건하였다. 그 일로 그를 대신할 중천축사의 주지 세 사람을 천거했는데 황제는 어필을 들어 스님을 인준하자 선정원(宣政院)에서 임명장을 가지고 예의를 갖추어 스님을 초청하였다. 그후 얼마되지 않아 입적하였는데 신통한 일이 많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