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지식에 막혀 깨닫지 못하다가 / 각 종성(覺宗聖)스님
전당(錢塘) 광화사(廣化寺)의 주지 각 종성(覺宗聖)스님은 경산사 본원(本源)스님께서 손수 도첩을 내려주신 제자이다. 여러 제자 가운데 가장 어린 까닭에 항상 다른 제자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받았으므로 더욱 마음을 가다듬고 열심히 공부하였으며, 마침내 사명사(四明寺) 몽당(夢堂)스님에게 배웠다. 당시 괴석(怪石)스님은 대자사(大慈寺)의 주지로 있으면서 굳이 그를 자기 시자로 불러들였다. 얼마 후 다시 석실(石室)스님에게 시를 배웠는데 시의 경지가 나날이 심오해져 조자앙(趙子昻), 우백생(虞伯生), 장중거(張仲擧)와 같은 이도 모두 그의 시를 칭찬하였다. 더욱이 청렴하고 신의가 두터워 한 끼라도 남에게 얻어 먹는 일이 없었으며 사람과 약속을 하면 아무리 비바람이 부는 날에도 어기지 않았다.
중년이 되어 배움이 끊긴 종지를 탐구하기 위하여 처음으로 중모(仲謀)스님을 찾아갔으나 깨닫지 못하고 마침내 본각사(本覺寺) 남당(南堂)스님을 찾아가 법을 물으니 남당스님이 말하였다.
”너는 원래 대사(大事)를 깨친 사람이지만 듣고 본 것이 너무 많아 가슴이 막혀 본지풍광이 나타나지 못하는 것이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새벽에는 죽 먹고 점심 때는 밥 먹는다.”
”스님께서는 큰 풀무를 열어 놓으시고 성인이나 범인이나 모두 녹여 단련하십니다. 저같은 사람이야 쓸모없는 한덩이 구리나 무쇠 같다지만 이 속에 들어왔으니 단련하여 아름다운 그릇으로 만들어 주기를 바랍니다. 만일 할 수 없다면 이는 스님 풀무에 열기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남당스님은 그의 정성스럽고 간곡한 마음에 감동되어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나의 이 법문(法門)은 그대로 깨닫는 것을 귀중히 여기지 세속적인 지혜와 총명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매서운 의지를 내서 일도양단한다면 무슨 구리를 단련하고 무슨 그릇을 만들고 할 것이 있겠는가? 이 두 가지 길을 버리고 “부모가 낳아주기 전 [父母未生以前] '의 소식에 대하여 한마디 해보아라!”
이에 종성스님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후 옛사람을 본받아 미륵불상을 머리에 이고 아침 저녁으로 도를 행하며 불호(佛號)를 외우고 도솔천 내원궁에 왕생하게 하여 달라 기원하고 시를 지어 그의 뜻을 피력하였다. 62세에 병이 들자 주변에 명하여 평소 지은 시와 문장을 가져오라 하여 모두 불태워 버린 후 열반하였다.
스님은 황암(黃岩) 사람인데 속성은 채씨(蔡氏)이며 괴석스님의 법을 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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