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기 둔한 사람 밖으로 과보 구해
밤낮 분주하게 세간의 탑 돈다
又長明燈者 正覺心也 覺知明了
우장명등자 정각심야 각지명료
喩之爲燈 是故一切求解脫者
유지위등 시고일체구해탈자
常以身爲燈臺 心爲燈盞 信爲燈炷
상이신위등대 심위등잔 신위등주
增諸戒行 以爲添油 智慧明達
증제계행 이위첨유 지혜명달
喩如燈光 常燃如是覺燈
유여등광 상연여시각등
炤破一切無明癡暗 能以此法
소파일체무명치암 능이차법
轉明開悟 卽是一燈 燃百千燈
전명개오 즉시일등 연백천등
以燈續明 終無盡故 故號長明
이등속명 종무진고 고호장명
過去有佛 名曰燃燈 義亦如是
과거유불 명왈연등 의역여시
또 장명등이란 바르게 깨친 마음을 뜻한다. 깨달은 지혜의 명료함을 등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해탈을 구하는 사람은 몸으로 등대(燈臺)를 삼고, 마음으로 등잔을 삼고, 믿음으로 심지를 삼고, 계행을 기름으로 삼으면 지혜의 밝기가 마치 등불 같을 것이다. 항상 이러한 깨달음의 등으로 모든 무명과 어리석음을 비추어야 하며, 이러한 법으로 밝은 깨달음을 열어나가야 한다. 즉 하나의 등불로 백천 개의 등불을 밝히고 이 등불의 밝음이 끝없이 이어지므로 장명등이라 한다. 과거세상에 연등불이 계셨다는 것도 역시 이러한 뜻이다.
愚癡衆生 不會如來方便之說
우치중생 불회여래방편지설
專行虛妄 執着有爲
전행허망 집착유위
遂燃世間蘇油之燈 以炤空室
수연세간소유지등 이소공실
乃稱依敎 豈不謬乎
내칭의교 기불류호
所以者何 佛放眉間一毫之光
소이자하 불방미간일호지광
尙照十萬八千世界
상조십만팔천세계
若身光盡現卽普照十方
약신광진현즉보조시방
豈假如是世俗之燈
기가여시세속지등
以爲利益 審察斯理 應不然乎
이위이익 심찰사리 응불연호
어리석은 중생이 여래의 방편의 말씀을 알지 못하여 허망한 짓을 하고, 유위법(有爲法)에 집착하여 세간의 소유(蘇油)로 등을 켜서 빈 방을 비추는 것으로써 가르침 대로 한다고 하니, 어찌 잘못됨이 아니겠는가. 그 까닭이 무엇인가.
부처님의 미간(眉間)에 있는 백호광(白毫光)으로도 십만팔천의 세계를 비추고, 신광(身光)을 다 나타내면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게 되는데, 어찌 이런 세속의 등을 빌려서 이익을 삼겠는가. 이런 이치를 깊이 살펴보면 응당 그렇지 않겠는가.
又六時行道者 所謂六根之中
우육시행도자 소위육근지중
於一切時 常行佛道 佛者覺也
어일체시 상행불도 불자각야
卽時修諸覺行 調伏六根 六情淸淨
즉시수제각행 조복육근 육정청정
長時不捨 名爲六時行道
장시불사 명위육시행도
塔者身心也 常令覺慧 巡 身心
탑자신심야 상령각혜 순요신심
念念不停 名爲 塔 過去諸聖
염념부정 명위요탑 과거제성
曾行此道 得涅槃樂 今時世人
회행차도 득열반락 금시세인
求解脫者 不會斯理 何名行道
구해탈자 불회사리 하명행도
竊見今時鈍根之輩 曾不內行
절견금시둔근지배 증불내행
唯執外求 世間塔 日夜走驟
유집외구 요세간탑 일야주취
徒自疲勞而眞性一無利益
도자피로이진성일무이익
迷愚之輩 甚誠可愍歟
미우지배 심성가민여
또 여섯 차례 행도(六時行道)한다는 것은 항상 육근(六根)의 활동이 불도를 행한다는 뜻이다. 부처란 깨침이다. 즉시 모든 각행을 닦아 육근을 조복시키고 육정(六情)의 청정함을 오랜동안 버리지 않는 것, 이를 육시행도라 한다. 탑이란 몸과 마음을 상징한다. 밝은 지혜로 몸과 마음이 돌며 생각생각이 끊이지 않는 것을 탑돌이라 한다. 과거 성현들도 이 도를 행하여 열반락을 얻었는데 지금 해탈을 구하는 사람이 이런 이치를 모르니 어찌 행도한다 하겠는가. 근기가 둔한 사람을 보면 안으로 닦지 않고 밖으로 과보만 구하면서 밤낮 분주하게 세간의 탑을 돈다. 이는 피로하기만 하고 진성(眞性)에는 아무 이익이 없으니 어리석은 무리여 참으로 가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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