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산(司空山) 본정(本淨) 화상
6조의 법을 이었다. 성은 장씨(張氏)이며 강주(絳州) 사람이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기특한 일은 어떠합니까?"
선사가 말했다.
"한 생각조차 마음에 기쁨이 없느니라."
스님이 말했다.
"어찌 기쁨이 없을 수 있습니까?"
선사가 말했다.
"기쁨은 누구의 몫인가?"
천보(天寶) 3년에 왕이 명하여 중사(中使)16) 양광정(楊光庭)으로 하여금 사공산(司空山)에 가서 항춘등(恒春藤)을 캐어 오게 하였는데, 그가 절에 이르러 선사원(禪師院)에 가서 말을 나누던 차에 선사에게 물었다.
"제자는 생사의 일이 크옵기에 일심으로 도를 사모하오니, 원컨대 화상께
16) 궁중에서 보내는 사신, 내밀(內密)히 보내는 사신이므로 내사(內使)라고도 한다.
서는 자비로써 구제하시어 제도하여 주소서."
선사가 말했다.
"대부(大夫)는 경성에서 왔으니 제왕의 땅이라, 선을 하는 이[禪伯]17)가 심히 많으리니, 그곳에 가서 물어보라. 나는 늙고 병들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노라."
중사가 예를 올리고 거듭 청하니 선사가 말했다.
"부처 구하기를 위함인가, 아니면 도를 묻고자 하는가? 만약 부처 되기를 구한다면 마음이 부처이며, 만약 도를 묻고자 한다면 무심(無心)이 바로 도이니라."
중사가 말뜻을 알지 못하여 말씀해 주실 것을 거듭 청하니, 선사가 또 말했다.
"만약 부처를 구하고자 한다면 마음이 바로 부처라. 부처는 마음을 인하여 있음이니 만약 무심(無心)임을 깨달을 것 같으면 부처 또한 있을 리가 없으며, 만약 도를 알려고 한다면 무심이 바로 도이니라."
중사가 말했다.
"서울의 대덕들은 모두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고행(苦行) 등으로 부처를 구하게 하는데, 이제 화상께서는 무루(無漏)의 지혜 성품이 본래부터 갖추어져 본디 청정하여 수행을 빌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니, 그런고로 전에는 헛되이 공만 허비했음을 알겠습니다."
중사가 서울에 돌아가 왕에게 항춘등을 바쳐 올리고 나서 선사와 있었던 위와 같은 일들을 낱낱이 아뢰니, 왕이 듣고 나서 명을 내려 중사로 하여금 다시 가서 조칙을 전하고 선사를 모셔 오게 하였다.
천보(天寶) 3년 12월 17일에 선사가 서울에 이르러 수인사를 마치니, 왕이 백련화정자(白蓮花亭子)에 있게 하였다.
정월 15일에 조칙이 있어 서울 안 대사와 대덕들로 하여금 선사와 더불어 도를 논(論)하도록 하였다.
선사가 말했다.
17) 선수행의 대가를 지칭한다.
"산승은 오랫동안 병들어 있어 담론할 여가가 없으므로 번거로운 말을 빌릴 것 없이 요점만 말하여 질문에 대답만 하겠습니다."
태평사(泰平寺)의 원(遠) 선사가 물었다.
"성인 앞에서 번거로운 말을 감히 못하겠습니다. 무엇을 도라 하겠습니까?"
선사가 말했다.
"도란 본래 이름이 없는 것이나 마음을 인하여 도라고 이름하는데, 만약 마음이 있다 한다면 도를 끝까지 궁구한 것이 못 되고, 또 마음이 만약 없다고 할 것 같으면 도가 무엇을 의지하여 있겠습니까? 둘 다 허망한 것이어서 모두 거짓 이름일 뿐입니다."
"현재 있는 몸과 마음이 도가 아니겠습니까?"
"소승의 몸과 마음은 본래 도입니다."
"아까는 무심(無心)이 바로 도라 하고 지금은 몸과 마음이 본래 도라고 하니, 어긋나는 것이 아닙니까?"
"무심이 바로 도라고 한 것은 마음을 멸함으로 도가 없어짐이니, 마음과 도가 한결같은 까닭으로 무심이 바로 도라 했고, 몸과 마음이 본래 도라 한 것은 도(道) 또한 본래 이 몸과 마음이라, 몸과 마음이 본래 이미 공하여서 도 또한 그 근원을 궁구하여도 있지 않습니다."
원공(遠公)이 말했다.
"아둔하고 모자란 산승도 이러한 도리를 알 수 있습니다."
선사가 말했다.
"대덕께서는 다만 산승의 상(相)만 보고 무상(無相)은 보지 못하니, 상으로 보는 것은 대덕의 소견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이르되 '무릇 있는 바 상은 다 허망한 것이다. 만약 모든 상이 상 아닌 줄로 보면 곧 그 도를 깨달으리라' 했으니, 만약 상을 실(實)로 삼는다면 겁이 다하여도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다시 물었다.
"지금 산승의 상(相)만 보고 산승의 무상(無相)은 보지 못한다 하오니, 청
하옵건대 상(相) 중에서 무상(無相)의 이치를 말씀하여 주옵소서."
"정명(淨名)이 말하되 '4대(大)는 주인이 없고 몸 또한 나라 할 것이 없다'고 했으니, 이는 무아소견(無我所見)이 도(道)와 더불어 상응(相應)함이라. 대덕이시여, 만약 4대(大)에게 주인이 있다면 그 주인이 곧 나일 것이고, 만약 나란 견해가 있다면 항사겁 중에도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 날 성상은 크게 기뻐하였고, 조정의 선비들도 모두 기뻐하였다.
선사가 이에 4대무주게(四大無主偈)를 읊었다.
4대(大) 무심하기가 저 물과 같아서
굽어진 곳에 이르든 곧은 곳에 이르든 이것이다 저것이다 함이 없다.
깨끗하고 더러운 두 곳에 마음 내지 않으니
막히고 뚫림에 언제 두 뜻이 있은 적이 있으리오.
경계에 닿으매 다만 물같이 무심하면
세상에서 종횡(縱橫)한들 무슨 일이 있으리오.
四大無心復如水 遇曲逢直無彼此
淨穢兩處不生心 壅決何曾有二意
境觸但似水無心 在世縱橫有何事
또 향산의 스님 혜명(慧明)이 물었다.
"무심이 바로 도라고 한다면 자갈돌도 무심하니 이 또한 도라고 해야 마땅하며, 몸과 마음이 바로 도라고 할 것 같으면 사생육류(四生六類)가 다 몸과 마음이 있으니 모두 도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이에 관해 견해가 있으시거든 성상 앞에서 말씀해 주십시오."
선사가 말했다.
"대덕이시여, 만약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 따위를 짓는 사람이라면 도를 구하는 사람이 아니니, 도와는 전혀 상응(相應)하지 못할 것입니다. 경에 '눈·귀·코·혀·몸·뜻이 없다' 했으니, 눈과 귀조차 없거늘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 무엇을 의지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근본을 추궁하여도 있지 않거늘 어느 곳에 마음이 있으리오. 만약 무심을 안다 할 것 같으면
초목(草木)과 다를 것입니다."
혜명(慧明)이 대답이 없었다.
선사가 이어서 견문각지게(見聞覺知偈)를 읊었다.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 걸릴 데 없고
소리, 냄새, 맛, 닿음 늘 삼매라네.
새가 공중에서 다만 힘써 나는 것과도 같이
가질 것도 버릴 것도 없고, 미워하고 사랑할 것도 없어라.
만약 처소에 따라 본래 무심함을 알면,
바야흐로 관자재(觀自在)라 이름할 수 있으리라.
見聞覺知無障昇 聲香味觸常三昧
如鳥空中只沒氣 無取無捨無憎愛
若會應處本無心 方得名爲觀自在
또 백마사(白馬寺)18)의 혜진(惠眞)이 물었다.
"선사께서 무심이 바로 도라고 말씀하셨지요?"
선사가 대답했다.
"그러합니다."
"도가 무심이라면 부처는 유심입니까? 부처는 도와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중생을 제도하심은 유심인 까닭이요, 도가 사람을 제도하지 못함은 무심인 까닭입니다. 하나는 제도하고 하나는 제도하지 못하니, 둘입니까, 둘이 아닙니까?"
"이는 대덕께서 망령되이 둘이란 견해를 내는 것입니다. 산승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째서인가? 부처란 헛된 이름뿐이요, 도라는 것 또한 망령되이 세움이라, 둘 다 진실하지 않은, 도무지 거짓 이름뿐이거늘 한결같은 거짓 가
18) 하남(河南) 낙양현(治陽縣) 동쪽에 있는 절이다.
운데에 어찌 둘을 세우십니까?"
다시 물었다.
"부처와 도가 비록 거짓 이름이라고 하나 이름을 세웠을 때에는 누가 세웠으며, 만약 세운 자가 있다 하면 어찌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와 도는 마음으로 인하여 세워졌으나 마음의 근원을 추궁해 보면 마음 또한 없습니다. 둘이 다 허망한 것이 마치 허공꽃과 같아서 본래 비어 있는 곳에 억지로 부처와 도를 세웠음을 알게 됩니다."
이에 혜진이 찬탄하여 말했다.
"사법(事法)에 있어서는 다하지 못함이 없고, 이법(理法)에 있어서는 갖추지 않은 것이 없으니, 이는 진문(眞門)을 문득 보아서 마음이 바로 부처라 함이니, 가히 후세 중생에게 모범이 되어 줌이라."
그러자 선사가 무수게(無修偈)를 읊었다.
도를 보아야 도를 닦을 수 있는 것
도를 보지 못하고 어찌 닦으리.
도의 성품은 저 허공과 같거늘
허공 어느 곳을 닦는다 하겠는가?
見道方修道 不見復何修
道性如虛空 虛空何處修
도 닦는 사람들을 두루 보니
불을 쑤셔서 뜬 거품을 찾는도다.
다만 꼭두각시 놀리는 것을 보라.
줄이 끊어지면 한꺼번에 쉬는도다.
遍觀修道者 撥火覓浮漚
但看弄傀儡 線斷一時休
법공(法空) 선사가 물었다.
"부처와 도가 다 거짓 이름을 허망하게 세운 것이라면 12부(部)의 경도
또한 실답지 않아야 마땅하며, 예부터 존숙(尊宿)들께서 대대로 이어오면서 다 말하기를 도를 닦는다 하는데, 그런 것들이 다 망령된 것이지 않겠습니까?"
선사가 말했다.
"그러나 12부의 교(敎)19)가 다 도에 부합(符合)합니다. 선사께서 잘못 알아 도를 등지고 교를 따라갑니다. 도란 본래 닦을 것 없는데 선사께서 억지로 닦으며, 도란 본래 지음이 없는데 선사께서 억지로 지으며, 도란 일이 없는데 억지로 많은 일을 내며, 도란 본래 함이 없거늘 그 가운데서 억지로 하며, 도란 본래 앎이 아니거늘 그 가운데서 억지로 알려 하나니, 이와 같은 견해는 본래 알지 못해 그런 것이니, 모름지기 스스로 잘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선사가 배도축교게(背道逐敎偈)를 읊었다.
도의 체는 본래 닦음 없으니
닦지 않아도 절로 도에 부합하도다.
만약 도 닦을 마음을 일으키면
이 사람은 도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道軆本無修 不修自合道
若起修道心 此人未會道
하나의 참 성품을 버려 버리고
도리어 끝없이 시끄러움 속에 들어서
홀연히 도 닦는 사람 만나면
절대 도를 향하지 말라.
弃却一眞性 却入鬧浩浩
忽逢修道人 第一莫向道
19) 12부경(部經), 즉 12분교(分敎)라 한다. 또한 12분경(分經)이라고도 한다.
또 복선사(福先寺)의 안(安) 선사가 물었다.
"도가 거짓 이름이라 한다면 부처님 또한 망령되이 12부의 교로 중생을 제접하는 방편을 세우신 것입니다. 일체가 모두 망(忘)이라 한다면 무엇을 참이라 하겠습니까?"
선사가 말했다.
"망이 있는 까닭으로 참으로 망에 상대하게 되는데, 망의 성품을 추궁하여 보면 본래 공적한 것입니다. 참 또한 그러할진대 어찌 실체가 더 있다 하겠습니까? 따라서 진과 망이 모두 거짓 이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모두 다 문득 깨달았다.
또 물었다.
"일체가 다 망이라 한다면 망 또한 진과 같을 것이니, 진과 망이 다름이 없다면 다시 무엇이겠습니까?"
선사가 말했다.
"만약에 무엇인고를 말한다면 이 또한 망입니다. 도는 비슷한 것 없고, 도는 견줄 것 없으며, 도와 비유할 것도 없고, 도는 대치(對治)할 것도 없으니, 도라고 함은 말로써 이치를 설명한 것이니, 이치를 얻어서 말을 잊으면 말의 성품이 비어 있는 줄 알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도를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경에 말씀하시기를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 쓸 곳도 멸한 것'이라 했습니다."
선사가 진망게(眞妄偈)를 읊었다.
진을 궁구해 보니 진은 모양 없고
망을 궁구해 보아도 망 또한 모양이 없네.
돌이켜 미루어서 마음을 궁구해 보니
그 마음 또한 거짓 이름인 줄을 알겠네.
도 알기를 이와 같이 알기만 하면
마침내 그저 조용하리라.
窮眞眞無相 窮妄妄無形
返觀推窮心 知心亦假名
조당집 > 조당집(祖堂集) > 조당집 제 3 권 > 171 - 179쪽
K.1503(45-233),
會道旣如此 到頭也只寧
조성사(照成寺)의 달성(達性) 선사가 찬탄하고 물었다.
"그 이치가 심히 미묘하여 진과 망을 쌍으로 민멸(泯滅)시켜 부처와 도 둘 다를 없앱니다. 수행하는 성품이 비어 있고 이름과 모양이 실답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이해하는 때에는 저 중생들의 선악 두 뿌리[二根]를 끊을 수 없는 것을 보리라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선사가 말했다.
"선악의 두 뿌리는 마음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라, 마음을 궁구하여 만약 있다 할 것 같으면 근(根) 또한 없지 않으리니, 미루어 생각해 보건대 마음이 비어 있다면 근은 무엇을 인하여 서겠습니까? 경에 말씀하시기를 '선과 불선(不善)은 마음을 따라 변하여 난다' 했으니, 선업과 악업의 연(緣)이란 본래 실다움이 없는 것입니다. 비록 실답지 않으나 불공심(不共心)과는 함께합니다."
선사가 선악이근부실게(善惡二根不實偈)를 읊었다.
선이 마음을 따라서 생긴 것이라면
악인들 어찌 마음을 떠나서 있다 하리오.
선·악이라는 것은 밖의 연(緣)이라
마음엔 실로 있지 않네.
善旣從心生 惡豈離心有
善惡是外緣 於心實不有
악을 버리어 어디로 보내며
선을 가진다면 누구로 하여금 지키게 하리오.
슬프다, 선과 악을 보는 이여!
연(緣)에 끌려 양쪽으로 달음질 치누나.
홀연히 무생의 근본을 깨달으면
비로소 전부터의 허물을 알게 되리라.
捨惡送何處 取善令誰守
傷嗟二見人 攀緣兩頭走
忽悟無生本 始會從前咎
또 선비인 손체허(孫體虛)가 물었다.
"이 몸은 어디서 나왔으며 죽은 뒤에는 다시 어느 곳으로 돌아갑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마치 어떤 사람이 잠이 들어 홀연히 꿈을 꾸는데 꿈은 어디서 나왔으며 잠을 깬 뒤에 어디로 갑니까?"
"꿈꿀 땐 없다고 말할 수 없으나 홀연히 깨어난 뒤에는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비록 왕래함이 있으나 왕래한 곳이 없습니다."
선사가 말했다.
"빈도(貧道)의 몸 또한 그 꿈의 체가 허한 것과 같아서, 이 몸이 실로 꿈과 같은 줄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선사가 내왕여몽게(來往如夢偈)를 읊었다.
마치 꿈속에 있는 것과 같음을 역시 아나니
잠 속은 실로 시끄러운데
홀연히 깨달아 만사를 쉼이
잠자다가 깨어난 것과 같음이라.
亦知如在夢 睡裡實是鬧
忽覺万事休 還同睡時覺
지혜 있는 자는 꿈임을 깨달아 알지마는
미혹한 사람은 꿈속의 시끄러움을 믿네.
꿈인 줄 알면 둘로 나뉨이 없고
한번 깨달으면 따로 깨달을 일 없도다.
智者會悟夢 迷人信夢鬧
會夢無兩般 一悟無別悟
부귀와 빈천,
다시 또 다른 이치가 아니로다.
富貴與貧賤 更亦無別道
선사가 상원(上元) 3년 5월 5일에 입적하였으니, 춘추(春秋)가 95세였다. 왕이 시호를 내려 대효(大曉) 선사라 하였다.
'조당집(祖堂集)'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회양(懷讓) 화상 (0) | 2008.03.10 |
---|---|
일숙각(一宿覺) 화상 (0) | 2008.03.10 |
지책(智策) 화상 (0) | 2008.03.10 |
굴다(崛多) 삼장 법사 (0) | 2008.03.10 |
혜충(慧忠) 국사 (0) | 2008.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