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충(慧忠) 국사
6조의 법을 이었다.
성은 염씨(苒氏)요, 월주(越州)의 제기현(諸曁縣) 사람이다.
어릴 적 속가에 있을 때 전혀 말을 하지 않았고, 문 앞의 다리를 건넌 적도 없었다. 16세에 이르러 어느 날 한 선사가 오는 것을 멀리서 보자마자 문 밖으로 나아가 다리를 건너 영접하고 절을 한 뒤에 문안을 하니, 부모와 이웃 사람들이 보고 모두가 깜짝 놀라 말했다.
"이상하구나. 이 아이는 기른 지 16년이 되도록 남과 이야기하는 것이나 문 앞의 다리를 건너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이제 화상(和尙)을 보자마자 오늘 이런 순서가 있는 거동을 하니, 아마도 이 아이는 보통 아이와는 다른 것 같도다."
이 때 아이가 얼른 선사에게 물었다.
"바라건대 자비를 베푸시어 이 한 중생을 제도해 주십시오. 저는 선사께 귀의하여 출가할 것을 간절히 바랍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나의 종문에는 은륜왕(銀輪王)의 맏아들이거나 금륜왕(金輪王)의 손자 정도는 되어야 비로소 이어서 이 가풍(家風)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인데, 그
대는 서너 집이 모여 사는 시골 촌뜨기 남녀의 등에 업히거나 소 등에 업혀 키워진 아이인데, 어찌 이런 종문에 출가할 수 있으랴? 그대의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아이가 선사에게 말했다.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다 했는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셔서 저의 착한 마음을 막으십니까? 다시금 바라건대 선사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받아 주소서."
선사가 이러한 아이의 순서 있는 거동을 보자 곧 아이에게 말했다.
"네가 그렇더라도 나에게 출가할 수는 없다."
아이가 말하였다.
"그러면 누구에게 의지하여 출가해야 됩니까? 선사께서 저에게 종사(宗師)를 가르쳐 주십시오."
"그대는 조계산(曹溪山)이란 소문을 들었는가?"
"조계산이 어느 주(州)에 있는지 모릅니다."
"광남(廣南)의 조계산에 선지식 한 분이 계시는데 6조라고 불린다. 거느리고 있는 대중이 6백 명이니, 그대는 거기로 가서 출가하라. 나는 아직 천태산을 가보지 못했으니 그대는 혼자 가야만 될 것이다."
아이가 곧 풀숲 사잇길로 숨어들어 부모의 눈을 피해 길을 떠나서 사흘의 길을 이틀에 걷고, 이틀의 길을 하루에 걸어 조계산에 다다르니, 마침 6조가 설법을 하고 있었다. 앞에 나아가 절을 하니, 조사가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동자가 대답했다.
"퍽 가깝습니다."
조사가 말했다.
"태어나서 자란 곳은 어디지?"
동자가 대답했다.
"5음(陰)을 얻은 뒤론 잊었습니다."
이에 조사가 손을 들어 가까이 오라 한 뒤 물었다.
"사실을 말하라. 그대는 어느 곳 사람인가?"
동자가 대답했다.
"예, 절강성(浙江省) 사람입니다."
"그렇게 멀리서 예까지 무엇 하러 왔는가?"
동자가 대답했다.
"첫째는 밝은 스승을 만나기 어렵고 정법(正法)을 듣기 어렵기에 특별히 와서 조사를 뵙는 것이요, 둘째는 스님께 의지하여 출가코자 함이니, 자비를 내리셔서 받아 주소서."
조사가 말했다.
"내 그대에게 이르나니, 출가는 그만두라."
동자가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6조가 말했다.
"그대는 성명(聖明)하다.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도 60년 동안 천자가 될 이가 바로 그대이니, 천자가 되기만 하라. 그리하여 불법을 위하는 임금이 되라."
동자가 말했다.
"60년뿐만 아니라 1백 년의 천자라도 원치 않으니, 오직 스님께서 자비로 거두어 주시기만 하소서. 저는 출가를 원합니다."
이에 조사가 이마를 만지면서 수기(授記)하였다.
"그대는 출가하면 천하에 우뚝 홀로 선 부처가 되리라."
그리고는 곧 거두었다.
선사가 일찍이 남양(南陽) 백애산(白崖山)에서 40여 년 동안 수행하였는데, 상원(上元) 2년 정월 16일에 숙종(肅宗) 황제의 부름을 받아 서울의 천복사(千福寺) 서선원(西禪院)으로 가서 머물렀다가 나중에 광택사(光宅寺)로 돌아갔다.
숙종(肅宗)과 대종(代宗) 앞뒤 두 조(朝)가 친히 보살계를 받고 국사의 예를 바쳤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국사가 대답했다.
"문수당(文殊堂) 안의 1만 보살이니라."
학인(學人)이 말했다.
"학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선사가 말했다.
"대비(大悲)보살은 눈이 천이요, 손이 천이니라."
국사가 앉아 있는데 숙종(肅宗)이 물었다.
"국사가 어떤 법을 얻으셨습니까?"
국사가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허공의 한 조각 구름이 보이십니까?"
"보입니다."
국사가 말했다.
"못으로 박아 놓았습니까, 줄로 걸어 놓았습니까?"
황제가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10신(身)을 조절하는 것입니까?"
국사가 일어서면서 물었다.
"아시겠습니까?"
황제가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노승에게 깨끗한 물 한 병을 주소서."
탐원(耽源)이 국사에게 물었다.
"돌아가신 뒤에 누군가가 극칙(極則)의 일을 묻는다면 그에게 무어라 이르리까?"
국사가 말했다.
"참으로 딱한 일이로다. 몸을 보호하는 부적 따위는 얻어서 무엇 하려는가?"
숙종이 시종과 함께 국사를 어깨에 메어서 법상에 오르게 하니, 국사가 얼굴을 쳐들고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시겠습니까?"
황제가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노승이 오늘 피곤하군요."
황제가 물었다.
"어떤 것이 무쟁삼매(無諍三昧)9)입니까?"
"단월(檀越)이 비로자나부처님의 머리를 밟고 다니는 것이오."
"어떤 것이 비로자나부처님의 머리를 밟고 다니는 것입니까?"
"자기의 청정법신을 잘못 아시는군요."
국사가 어느 날, 탐원(耽源)이 법당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자 곧 한 발을 올리니, 탐원이 나가 버렸다. 한참 있다가 다시 돌아오니, 국사가 물었다.
"아까의 뜻이 무엇이던가?"
탐원이 대답했다.
"누구에게 말해야 합니까?"
"내가 그대에게 묻노라."
"어디서 저를 보셨습니까?"
숙종 황제가 문안을 하는데 국사가 황제를 보지 않으니, 황제가 말했다.
"짐은 한 나라의 천자이거늘 국사께서는 어째서 짐을 전혀 보시지를 않습니까?"
국사가 말했다.
"황제께서는 눈앞에 있는 허공을 보셨소이까?"
"보았습니다."
이에 국사가 말했다.
"그가 폐하께 눈을 깜박거린 적이 있었습니까?"
어군용(魚軍容)이 물었다.
9) 공(空)에 머물러 남과 다투지 않는 삼매를 말한다.
"스님께서 백애산(白崖山)에 계실 때 어떻게 수행하셨습니까?"
국사가 동자를 불러서 동자가 오니, 국사가 손으로 동자의 머리를 만지면서 말했다.
"성성(惺惺)하면 바로 성성하다 말하고, 역력(曆曆)하면 바로 역력하다고 말하라. 이후에는 남의 속임을 당하지 마라."
남양(南陽)의 장분(張濆)이 물었다.
"내가 듣기에는 무정(無情)10)설법이 있다는데 그 이치를 알지 못하오니, 스님께서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국사가 대답했다.
"무정설법이란 그대가 들을 때 바야흐로 무정설법을 듣게 되는 것이고, 그로 인하여 무정들도 비로소 나의 설법을 듣게 된다. 그대는 오직 무정설법만 물어라."
"다만 현재 유정들의 방편에 준하여 어떤 것이 무정(無情)의 인연입니까?"
국사가 말했다.
"다만 지금의 온갖 활동 가운데서 범부와 성인의 두 흐름이 조금도 일었다 꺼졌다 하지 않으면 이것이 알음알이에서 벗어나서 유정들의 치성한 견각(見覺)에 속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얽매임이 전혀 없는 상태이므로 6근(根)이 색(色)에 대해 분별하는 것은 식(識)이 아니니라."
국사가 당자곡(黨子谷)에 있을 때, 마곡(麻谷)이 와서 국사를 세 바퀴 돌고 석장을 한 번 흔드니, 국사가 말했다.
"정히 그렇다면 무엇하러 다시 나를 보러 왔는가?"
다시 석장을 한 번 흔들자, 국사가 꾸짖었다."
"이 들여우의 정령아!"
이에 장경(長慶)이 대신 말했다.
"어른께서 어찌 마음씀이 그러하십니까?"
10) 산천초목과 솔바람까지도 수행인에게 설법을 하는 존재라고 본 것이다.
또 대신 말했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화상을 알아뵙겠습니까?"
국사가 자린(紫璘) 법사와 토론을 하기 위해 각각 자리를 정하고 앉았다. 이에 법사가 말했다.
"스님께서 논제를 세우십시오. 제가 깨뜨리겠습니다."
국사가 대답했다.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법사가 말했다.
"그래도 주장을 세우십시오."
국사가 말했다.
"논제를 다 세웠소."
"어떤 논제를 세우셨습니까?"
"과연 보지 못하는군. 공의 경계가 아니오."
장경이 대신 말했다.
"스님의 논제는 진 것입니다."
어떤 좌주(座主)11)가 와서 뵈려 하자 국사가 물었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금강경(金剛經)』을 강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두 글자가 무슨 자이던가?"
"여시(如是)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국사가 인공봉(璘供奉)에게 물었다.
"부처란 무슨 뜻인가?"
인공봉이 대답했다.
11) 선가에서 경을 강의하는 스님을 지칭하는 말이다.
"부처란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선사가 말했다.
"부처가 언제 미(迷)한 적이 있었던가?"
"미한 적이 없었습니다."
"미한 적이 없었다면 깨달아서 무엇에 쓰려는가?"
인공봉이 대답이 없었다.
인공봉이 또 물었다.
"어떤 것이 실상(實相)의 뜻입니까?"
국사가 대답했다.
"허상을 가져오너라."
인공봉이 대답했다.
"허상(虛相)은 없습니다."
"허상이 없는데 실상은 물어 무엇에 쓰려는가?"
국사가 한번은 또 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 손으로 원상(圓相)을 그린 다음, 그 속에다 일(日)자를 써 보이니,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어느 때, 왕영(王詠)이 물었다.
"어찌하여야 해탈합니까?"
국사가 대답했다.
"모든 법이 이르지 못하는 그 자리에서 얻느니라."
"그렇다면 그것은 단멸(斷滅)이지, 어찌 해탈이 되겠습니까?"
이에 국사가 할(喝)을 하고 말했다.
"이놈아, 내가 너에게 '모든 법이 이르지 못하는 자리라' 했지, 누가 너에게 단멸이라 했더냐?"
왕영이 더 이상 말이 없었고, 국사도 그가 3교(敎)12)의 공봉임을 알고 있었다.
12) 불교·유교·도교를 말한다.
왕영의 문도인 지심(志心)이 물었다.
"어찌하여야 부처가 되겠습니까?"
국사가 대답했다.
"부처와 중생을 몽땅 버려야 그 자리에서 해탈을 얻느니라."
"어찌하여야 서로 걸맞을 수 있겠습니까?"
"선과 악 모두를 생각하지 말아야 자연히 불성을 볼 수 있느니라."
또 물었다.
"어찌하여야 법신(法身)을 증득하겠습니까?"
"비로자나의 경계를 초월해야 되느니라."
"어떻게 해야 청정법신을 초월합니까?"
"부처에 매달려 구하려 하지 마라."
또 물었다.
"어느 것이 부처입니까?"
"마음이 곧 부처이니라."
"마음에 번뇌가 있는데 어떻게 부처가 됩니까?"
국사가 말했다.
"번뇌의 성품은 절로 여의느니라."
다시 여쭈었다.
"어째서 번뇌를 끊지 않습니까?"
"번뇌를 끊는 것은 성문·연각이요, 번뇌가 생기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것은 큰 열반이라 하느니라."
대종(代宗)이 대백산인(大白山人)이란 사람을 데리고 화상을 만나러 와서 말했다.
"이 사람은 아는 것이 퍽 많소이다."
"무슨 재주를 가지고 있습니까?"
"산도 알고 땅도 알고 글자도 알고 산수(算數)도 안답니다."
이에 국사가 산인(山人)에게 물었다.
"산인이 살고 계신 산은 암컷인가, 수컷인가?"
산인이 오랫동안 침묵하여 대답하지 못하니, 국사가 다시 물었다.
"땅은 아시오?"
산인이 대답했다.
"압니다."
국사가 대궐 앞의 땅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여기는 무슨 땅인가?"
"제자에게 산수할 시간을 주셔야 알겠습니다."
또 물었다.
"글자는 아는가?"
"예, 압니다."
이에 국사가 흙 위에 일(一)자를 긋고 물었다.
"이것은 무슨 자인가?"
"예, 일(一)자입니다."
"흙 토(土)에 일(一)을 더하면 왕(王)자가 되지 어찌 일 자라 하는가?"
또 물었다.
"산수를 아는가?"
"예, 압니다."
"3·7은 얼마인가?"
"21이 됩니다. 화상께서는 제자를 놀리시는군요."
"산인(山人)이 도리어 나를 놀리는군. 3·7이면 10인데 21이라니, 이 어찌 나를 놀리는 것이 아닌가?"
또 물었다.
"이 밖에 더 무엇을 알고 있는가?"
"더 있지만 감히 대답하지 못하겠습니다."
"설사 그대가 모든 것을 다 안다 하여도 귀할 것이 없느니라."
이어 대종에게 말했다.
"산을 물어도 산을 모르고 땅을 물어도 땅을 모르고 글자를 물어도 글자를 모르고 산수를 물어도 산수를 모르니, 어디서 저런 멍텅구리를 데리고 오셨습니까?"
조당집 > 조당집(祖堂集) > 조당집 제 3 권 > 151 - 160쪽
K.1503(45-233),
이에 대종(代宗)이 산인에게 말했다.
"짐이 비록 국왕의 지위를 가지고 있으나 그것은 보배라 할 것이 없고, 화상만이 참 보배이노라."
산인이 말했다.
"폐하께서는 참으로 보배로운 사람을 바로 아시나이다."
어느 해 10월 중순에 여러 좌주(座主)들이 국사에게 예배하러 왔는데 국사가 물었다.
"성 밖의 풀이 어떤 빛깔이던가?"
좌주들이 대답했다.
"누른빛이었습니다."
국사가 곧 어린 동자를 불러 물었다.
"성 밖의 풀이 어떤 빛깔이더냐?"
"누른빛이었습니다."
국사가 말했다.
"좌주들은 경을 알고 논(論)을 안다면서 이 어린애의 견해와 무엇이 다른가?"
이에 좌주가 물었다.
"화상께서는 성 밖의 풀이 어떤 빛깔이라고 여기십니까?"
국사가 대답했다.
"하늘 위의 새를 보았는가?"
좌주들이 말했다.
"화상께선 점점 더 선법과 상관없는 말을 하시니 바라건대 화상께서는 저희들이 어찌해야 할지 가르쳐 주십시오."
국사가 갑자기 좌주(座主)들을 불러 앞으로 다가오라 하여, 좌주들이 함께 앞으로 다가가니, 국사는 좌주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꼴을 보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좌주들아, 우선 절로 돌아갔다가 다음날 다시 오라."
좌주들이 잠자코 물러갔다가 다음날 또 와서 말했다.
"바라건대 화상께선 저희들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국사가 대답했다.
"보려면 곧 보아야지, 보지 못하는 이에겐 말을 하여도 보지는 못할 것이니라."
여러 공봉(供奉)들이 말했다.
"전의 국사들께서는 화상과 같은 기지와 변재가 없으셨습니다."
국사가 말했다.
"그들은 나라를 스승으로 섬겼고, 나는 나라의 스승이니라."
여러 공봉들이 말했다.
"우리들은 거짓되게 공봉으로 있으면서 경을 안다, 논(論)을 안다 했는데, 저 선종에 의하면 전혀 맞지가 않구나."
남방에서 온 선객 하나가 물었다.
"어떤 것이 옛 부처의 마음입니까?"
국사가 대답했다.
"담·벽·기와 조각 같은 무정물(無情物) 모두가 옛 부처의 마음이니라."
"경전의 말씀과는 매우 어긋나는군요. 그래서 『열반경(涅槃經)』에 말씀하시기를 '담·벽·기와 조각 등 무정물을 여의었으므로 불성(佛性)이라 했는데, 지금 말씀하시는 것은 '온갖 무정물이 모두가 부처님 마음'이라 하시니, 마음과 성품이 같은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미혹한 사람에게는 다르지만 깨달은 사람에게는 다르지 않느니라."
선객이 또 말했다.
"이것도 경과 어긋납니다. 경에 말씀하시기를 '선남자야, 마음은 불성(佛性)이 아니니 불성은 항상함이요, 마음은 항상하지 않다' 했는데, 오늘 다르다 말씀하시니, 그 이치를 모르겠습니다."
국사가 말했다.
"그대는 말에만 의지하고, 뜻에는 의지하지 않는구나. 마치 겨울에 물이 얼어서 얼음이 되었다가 봄이 되면 얼음이 풀리어 물이 되는 것같이, 중생이 미혹할 때엔 성품을 묶어 마음을 이루고, 중생이 깨달을 때엔 마음이 풀려
성품이 된다. 그대가 만일 무정물에는 불성(佛性)이 없다고 꼭 집착한다면, 경전에서도 '삼계가 마음일뿐이요 만법이 식(識)일 뿐이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화엄경(華嚴經)』에 말씀하시기를 '삼계의 모든 법이 모두가 오직 마음으로 지어진 것일 뿐이라'고 하였느니라.
이제 그대에게 묻노니, 무정물은 삼계의 안에 있는가, 삼계의 밖에 있는가? 그것은 마음인가, 마음이 아닌가? 만일 마음이 아니라면 경전에서 '삼계가 마음일 뿐이라'고 하지 않았어야 할 것이요, 만일 마음이라면 '무정물은 불성이 없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그대 자신이 경을 어겼을지언정 내가 어긴 것은 아니니라."
선사가 말했다.
"무정물에도 마음이 있다면 설법도 할 줄 알겠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설하고 항상 설하며 계속 설하되 잠시도 쉬는 바가 없느니라."
"저는 어째서 듣지 못합니까?"
"그대가 듣지 못할 뿐이요, 다른 이가 듣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누가 듣습니까?"
"성인들이 듣느니라."
"그렇다면 중생은 들을 자격이 없겠습니다?"
"나는 중생을 위해 말했을지언정 성인들을 위해서 말한 것이 아니니라."
"저는 어리석고 둔해서 무정물의 설법을 듣지 못하지만 화상께서는 인간과 하늘의 스승으로서 반야바라밀다를 설법하시니, 무정의 설법을 들으셨습니까?"
"나도 듣지 못했느니라."
"화상께서는 어째서 듣지 못하셨습니까?"
"내가 무정의 설법을 듣지 못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지, 내가 만일 무정(無情)의 설법을 듣는다면 성인들과 같아질 것이니, 그대가 어떻게 나를 보거나 나의 설법을 들을 수 있으리."
선객이 물었다.
"모든 중생은 끝내는 무정설법을 들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선사가 말씀하셨다.
"중생이 듣는다면 중생이 아니니라."
"무정의 설법이란 말이 근거가 있습니까?"
"말이 전고에 맞지 않으면 군자의 이야기가 아니니라.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아미타경(阿彌陀經)』에 말씀하시기를 '물·새·나무·숲이 모두가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고 스님들을 생각한다' 하였으니, 새는 유정이지만 물과 나무는 어찌 유정이라 하겠는가?
또 『화엄경』에 말씀하시기를 '국토의 말씀과 중생의 말씀이 3세 일체의 말씀이라' 했으니, 중생은 유정이지만 국토야 어찌 유정이겠는가?"
선객이 말했다.
"정녕 무정이라면 그에게도 불성이 있을진대 유정은 어떻습니까?"
선사가 말했다.
"무정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유정이랴."
선객이 다시 물었다.
"만약 유정과 무정이 모두가 불성(佛性)이 있다 하면 유정을 죽여서 그 몸뚱이[身分]를 먹어 죄와 원한을 맺어 과보를 받을 것인데, 무정(無情)을 해쳐서 오곡이나 채소나 과일 따위 물건을 먹으면 죄의 과보를 부른다고 듣지 못했습니다."
국사가 대답했다.
"유정은 정보(正報)이니, 끝없는 예로부터 허망하고 뒤바뀌어 나[我]와 내 것[我所]을 계교(計較)하여 원한을 맺었으므로 원한의 과보가 있지만, 무정(無情)은 의보(依報)인지라 전도되고 원한을 맺은 마음이 없으므로 과보가 있다고 말하지 않느니라."
"경전에서 유정들만이 보리의 수기(授記)를 받아 오는 세상에 부처가 되고, 명호는 무엇무엇이라 하리라 한 것은 보았을지언정 무정(無情)들이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예컨대 현겁(賢劫)의 천 부처님 중에 어느 분이 무정물로 성불하신 분입니까?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내가 그대에게 묻노니, 마치 황태자가 왕위를 물려받을 때에 태자 한 몸
만 왕위를 받는가, 국토 안의 전체가 왕위를 받는가?"
"황태자 하나만 왕위를 받으면 국토 안의 모든 것은 저절로 왕에게 속합니다. 어찌 따로따로 받겠습니까?"
"지금의 이 경우에도 그러하니, 다만 유정들이 수기를 받아 부처가 되기만 하면 삼천대천세계의 온갖 국토 모두가 비로자나부처님의 몸에 속한다. 부처님의 몸 이외에 어찌 또 다른 무정물이 있어 수기를 받겠는가?"
선객이 다시 물었다.
"일체 대지가 부처님 몸이라면 온갖 중생들이 부처님의 몸 위에 살면서 부처님 몸에다 똥오줌을 싸서 더럽히고, 부처님의 몸을 파고 뚫고 밟으니, 어찌 죄가 없겠습니까?"
국사가 말했다.
"온갖 중생 몸 그대로가 부처의 몸이거늘 누가 죄를 받으랴?"
"부처님의 몸은 함이 없고 걸림이 없는데 이제 함이 있고 걸림 있는 물질로써 부처의 몸이라 하니, 그 어찌 성인의 취지에 어긋난다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대품경(大品經)』에 말씀하시기를 '유위(有爲)를 떠나서 무위(無爲)를 말하지 말라. 또 무위를 떠나서 유위를 말하지도 말라' 하셨느니라. 그대는 색이 공함을 믿는가?"
"부처님의 진실한 말씀을 어찌 감히 믿지 않겠습니까?"
국사가 말했다.
"색이 본래 공하다면 어찌 걸림이 있겠는가?"
선객이 또 물었다.
"부처와 중생이 같은 것이라면 한 부처님만 수행하여도 온갖 중생이 모두 함께 해탈을 얻어야 할 것인데, 지금 보니 그렇지 않습니다. 같다는 뜻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국사가 말했다.
"『화엄경(華嚴經)』 가운데 6상의(相義)에 '같음[同] 가운데 다름[異]이 있고 다름 가운데 같음이 있으며, 이룸[成] 가운데 무너짐이 있고, 무너짐 가운데 이룸이 있으며, 전체 가운데 부분이 있고, 부분 가운데 전체가 있다'
하심을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확실히 제각기 스스로가 수행해서 스스로가 얻는 것이어야 한다. 남이 밥 먹는 것을 구경한다 해서 끝내 내 배가 부르지는 않느니라."
선객이 또 물었다.
"고덕(古德)이 말씀하시기를 '푸르디 푸른 대나무 모두가 진여(眞如)요 성대하게 핀 국화꽃은 반야(般若) 아닌 것이 없다' 했는데,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인정하지 않고 삿된 말이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믿어 부사의(不思議) 하다고 하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국사가 대답했다.
"이는 보현(普賢)·문수(文殊) 등 대인(大人)의 경지이다. 범부와 소인들이 믿어 받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대승요의경(大乘了義經)』의 뜻과 부합되나니, 그러므로 『화엄경』에 말씀하시기를 '부처님 몸이 법계에 충만하여 온갖 중생들 앞에 두루 나타나신다. 인연 따라 응하시지 않는 곳 없지만 항상 여기 보리좌를 여의지 않았다' 하셨다. 푸른 대나무가 이미 법계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니, 어찌 법신(法身)이 아니겠는가?
또 『마하반야경(摩訶般若經)』에 말씀하시기를 '색(色)이 끝이 없으므로 반야가 끝이 없다' 하셨나니, 국화꽃이 색(色)에서 벗어나지 않았을진대 어찌 반야가 아니겠는가. 이 깊고 넓은 이치를 알지 못하는 이는 이 말에 유의하지 않느니라."
또 물었다.
"어떤 선지식이 말하기를 '도를 배우는 사람은 다만 본마음을 알기만 하면 죽음이 닥쳐 왔을 때에 한쪽으로 껍질을 훌쩍 벗어 던지고, 영대(靈臺)인 각성(覺性)만이 거뜬히 떠나는 것이 해탈이라' 한다 하는데, 이것은 어떠합니까?"
"이는 아직도 2승(乘)과 외도의 소견을 면치 못했다. 2승은 모두가 유위(有爲)의 생사를 싫어하여 여의려 하고 무여열반(無餘涅槃)을 즐겨 구한다. 노자가 말하기를 '나에게 큰 걱정이 있으니, 내 몸이 있기 때문이다' 하였고, 명제(冥諦)13)를 좋아하여 지극한 도라 여기고 마침내는 명제에 나아갔다.
수다원(須陀洹)은 8만 겁, 사다함(斯陀含)은 6만 겁, 아나함(阿那含)은
13) 고대 인도의 6파 철학 가운데 수론(數論) 철학파들이 세운 25제(諦) 가운데 제1제이다. 물질적 본체, 만물의 근원으로서 명성(冥性) 또는 명초(冥初)라고도 한다.
4만 겁, 아라한(阿羅漢)은 2만 겁, 벽지불(辟支佛)은 만 겁 동안 선정에 머무르고, 외도도 역시 8만 겁 동안 비상비비상천(非想非非想天)에 머문다.
2승(乘)은 그 겁(劫)이 차면 대승(大乘)으로 회향하나 외도는 그 겁이 차도 생사윤회를 면치 못하느니라."
선객이 또 물었다.
"모든 사람들의 불성(佛性)은 한 종류인가요, 아니면 차별된 종류인가요?"
국사가 대답했다.
"똑같을 수가 없느니라."
"어째서 차별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의 불성은 전혀 생멸하지 않고, 어떤 사람의 불성은 반은 생멸하되 반만 생멸하지 않느니라."
"누구의 불성은 전부 생멸하지 않고, 누구의 불성은 반은 생멸하고 반은 생멸하지 않습니까?"
국사가 말씀했다.
"나의 불성은 전혀 생멸하지 않지만, 남방의 불성은 반은 생멸하고 반은 생멸하지 않느니라."
선객이 다시 물었다.
"화상의 불성은 어찌하여 전혀 생멸하지 않고, 남방의 불성은 어찌하여 반은 생멸하고 반은 생멸하지 않습니까?"
"나의 불성은 몸과 마음이 한결같아서 몸 밖에 다른 것이 없나니, 그러므로 전혀 생멸하지 않거니와, 남방의 불성(佛性)은 몸은 무상하다 하고 마음은 항상하다 하니, 그러기에 반은 생멸하고 반은 생멸이 없느니라."
"화상의 몸은 색신(色身)인데 어찌 법신(法身)과 같이 생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대는 어째서 사도(邪道)에 빠졌느냐?"
"제가 언제 사도에 빠졌다고 그러십니까?"
"『금강경(金剛經)』에 말씀하시기를 '만일 색(色)으로 나를 보거나 소리로
나를 구하는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나니, 여래를 보지 못한다' 하셨는데, 그대가 색(色)으로 나를 보니, 어찌 사도에 빠진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선객이 절을 하고 찬탄했다.
"화상의 이 말씀은 사법(事法)으로도 다하지 않음이 없고 이법(理法)으로도 치밀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제가 만일 화상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일생을 헛되이 보낼 뻔하였습니다."
숙종 황제가 물었다.
"온갖 중생의 조급한 업의 성품이 본래 의거할 근거가 없거늘 날마다 쓰면서도 알지 못한단 말이 무슨 뜻입니까?"
국사가 금화(金花) 방석을 들어 올려 황제에게 보이면서 물었다.
"이것을 무엇이라 부릅니까?"
황제가 대답했다.
"금화 방석이라 합니다."
국사가 말했다.
"확실히 일체 중생이 날마다 쓰면서 모르는구나."
복우(伏牛) 화상이 마(馬) 대사의 심부름으로 편지를 들고 국사께 왔는데 국사께서 물었다.
"마 대사가 어떤 법으로 사람들을 지도하시는가?"
복우가 대답했다.
"마음이 곧 부처라 하십니다."
이에 국사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그리고는 이어서 또 물었다.
"다른 말씀은 없던가?"
"부처도 아니요 마음도 아니라 하시고, 또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라 하십니다."
이에 국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직 멀었구나."
복우가 물었다.
"여기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국사가 말했다.
"삼점(三點)14)이 흐르는 물 같은데 굽기는 낫 같으니라."
나중에 어떤 사람이 이 이야기를 앙산(仰山)에게 전했더니, 앙산이 말했다.
"물 속에 반달이 드러나는구나."
앙산이 또 말했다.
"삼점(三點)은 영원히 흐르는 물이요, 몸은 고기와 용의 옷과 같도다."
숙종(肅宗) 황제가 또 물었다.
"모든 중생의 조급한 업의 성품이 의거할 수 있는 근거가 없거늘 날마다 쓰면서도 알지 못하여 삼계를 벗어나 여읠 길이 없다 하니, 스승께서 방편을 베푸시어 제자와 중생들이 생사에서 벗어나게 해주소서."
이에 국사가 세 개의 대야[▩羅]15)를 가져오라 하고는 물을 가득히 붓게 하고 개미를 찾아서 물 위에 던지니, 개미가 물 위에서 뱅뱅 두세 바퀴 돌다가 지쳐서 물 위에 떠 있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에 황제가 절을 하면서 말하였다.
"스승이시여,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국사가 풀 한 올을 주어 물 위에 던지니, 개미가 깜짝 놀라 풀에 의지해 대야 밖으로 기어 나왔다.
이를 본 황제는 활짝 깨달았다.
대종(代宗) 황제가 물었다.
"스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무엇을 해 드리오리까?"
국사가 대답했다.
"노승을 위해 무봉탑(無縫塔)을 만들어 주시오."
14) 마음 심(心)의 세 점을 말한다. 때로는 마음을 뜻한다.
15) 징의 일종이며 때로는 술동이를 말한다. 여기서는 대야로 번역한다.
황제가 곧 꿇어앉아 말했다.
"스님께서 탑의 본을 보여 주소서."
국사가 양구(良久)하니, 황제가 어찌할지 몰라 하였다. 국사가 말했다.
"제가 법을 전한 제자가 있는데 탐원(耽源)이라 합니다. 그가 이 일을 알고 있으니, 그에게 물으소서."
국사가 세상을 뜬 뒤에 황제가 탐원을 조서[詔]로 불러 이 인연을 말하고, 그 뜻이 무엇인가를 물었더니, 탐원이 다음과 같은 게송을 보였다.
상(湘)의 남쪽, 담(潭)의 북쪽 중간에
황금이 있어 온 나라를 가득 채운다.
그림자 없는 나무 밑에서 같은 배를 탔는데
유리 대궐 위에는 아는 이 없도다.
湘之南潭之北 中有黃金充一國
無影樹下合同舡 瑠璃殿上無知識
대력(大歷) 10년 12월 9일에 입적하니, 대종(代宗)이 대증(大衆) 선사라 시호를 내렸다.
정수(淨修) 선사가 찬(讚)했다.
당조(唐朝)의 국사로서
큰 도를 널리 펴고.
조계에서 해를 찾고
위수(渭水)에서 배를 탔다.
두 황제가 게송을 청하고
사부대중은 구제를 받았다.
법 재주가 매우 드높아
대이 삼장(三藏)이 창피를 당했다.
唐朝國師 大播洪猷
曹溪探日 渭水乘舟
조당집 > 조당집(祖堂集) > 조당집 제 3 권 > 161 - 170쪽
K.1503(45-233),
二天請偈 四衆抛籌
法才極贍 大耳慙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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