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長髭) 화상
석두(石頭)의 법을 이었고, 담주(潭州) 수현(攸縣)에 살았다. 행장을 보지 못해 그 생애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으나 선사(장자)가 처음 석두를 참배하고 현묘한 뜻을 비밀히 전해 받고, 이어 조계로 가서 탑에 예배한 뒤에 다시 석두에게로 돌아오니, 석두가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영남(嶺南)에서 왔습니다."
이에 석두가 물었다.
"대유령(大庾嶺) 마루의 한 폭 찬란한 공덕은 이루었는가?"
"모든 일은 이미 준비되었고 점안(點眼)만이 빠졌을 뿐입니다."
"점안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점안해 주십시오."
석두가 한 다리를 번쩍 들어 보이자, 선사가 수십 차례 절을 거듭하기를
그치지 않으니, 석두가 말했다.
"저놈이 어떤 도리를 보았기에 절만 하는고?"
그래도 선사가 절하기를 그치지 않으니, 석두가 앞으로 걸어나와 꽉 붙들고 말했다.
"그대는 무슨 도리를 보았기에 절만 하는가?"
"마치 뜨거운 화로 위의 한 점의 눈송이와 같습니다."
"그렇다, 그렇다."
선사가 10세 가량 되는 아이를 얻어서 8년이나 길렀는데, 어느 날 그 아이가 화상에게 말했다.
"저는 계를 받으러 가고자 하는데 가도 좋겠습니까?"
"계는 받아서 무엇 하려는가?"
"저의 할아버지[祖公]1)께서 남악(南嶽)에 계시는데, 거기에 가서 뵙고자 하나 계를 받지 않은 탓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계를 받으려면 20세가 되어야 하니, 우선 가만히 있거라."
선사는 이렇게 말한 뒤에 갑자기 느낀 바 있어 그를 불러 계 받으러 갈 것을 허락하였다. 이튿날 아침에 어린 스님[少師]이 선사에게 하직하니, 선사가 말했다.
"너, 돌아올 때엔 꼭 석두 화상이 계신 곳에 들렀다가 오너라."
어린 스님이 대답하고 곧 남악 반야사(般若寺)로 가서 계를 받았다.
나중에 석두에게 가서 뵈니 석두가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장자(長髭)의 회상에서 왔습니다."
"오늘 저녁에 여기서 묵어라. 그래도 괜찮겠는가?"
"모든 것을 화상의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어린 스님이 이튿날 아침에 올라와서 문안을 드리니, 화상(석두)이 곧 새로 계를 받은 이[新戒]를 데리고 산 구경을 갔다. 가는 도중 길가에 한 그루
1) 여기서는 석두 희천(石頭 希遷) 화상을 일컫는다.
의 나무가 있는데, 이를 보자 화상이 말했다.
"나의 앞길을 막고 있는 이 나무를 네가 베어 버려라."
"저는 도끼를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내게 칼이 있느니라."
"그러시면 제게 주십시오."
이에 화상이 칼을 꺼내어 칼자루를 쥐고 건네주니 새로 계를 받은 어린
스님이 말했다.
"어찌 칼자루 쪽을 주시지 않으십니까?"
"그쪽 끝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그러는가?"
이에 새로 계를 받은 어린 스님이 크게 깨달으니, 화상이 어린 스님에게 본래의 곳으로 돌아가라 하였다. 어린 스님이 석두 화상의 곁을 물러나서 선사(장자)에게로 돌아오니, 선사가 물었다.
"그대가 떠날 때에 석두에게 들르라고 했었는데 들렀던가?"
"들르기는 했으나 제자로서의 폐백(幣帛)은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누구에 의해 계를 받았는가?"
"남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대가 거기서는 그랬거니와 여기서는 어떻게 하겠는가?"
"중요한 건 어기지 않으려는 것뿐입니다."
"너무 아는 것이 많구나."
"혀끝을 더럽힌 적이 없습니다."
그러자 선사가 곧 꾸짖었다.
"에끼, 새로 계를 받은 이 말 많은 어린 중아, 나가거라."
이가 후일의 석실(石室) 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