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오(道吾) 화상
약산(藥山)의 법을 이었고, 유양현(劉陽縣)에 있었다.
휘(諱)는 원지(圓智), 성은 왕씨(王氏)로서 종릉(鍾陵)의 건창(建昌) 사람이었다.
열반(涅槃) 화상의 지시에 따라 약산에게 참문하니, 약산이 대중에게 이렇게 설법했다.
"법신(法身)이 4대(大)를 갖춘 일을 누가 설명하겠는가? 누군가 설명할 수 있다면 그에게 바지를 한 벌 주리라."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성지(性地)는 바람이 아니요, 바람은 성지(性地)가 아니니, 이것이 풍대(風大)요, 지대(地大)·수대(水大)·화대(火大)도 그러합니다."
약산이 인정하고 앞의 말과 같이 바지 한 벌을 주었다.
석상(石霜)이 물었다.
조당집 > 조당집(祖堂集) > 조당집 제 5 권 > 264 - 273쪽
K.1503(45-233),
"돌아가신 뒤에 누군가가 갑자기 극칙(極則)의 일을 물으면 그에게 무엇이라 대답하리까?"
이에 선사가 사미(沙彌)를 불렀다. 사미가 대답하니, 선사가 말했다.
"깨끗한 병에 물을 담아 두어라."
그리고는 되레 석상에게 물었다.
"아까 무엇을 물었던가?"
석상이 아까와 같이 다시 물으니, 선사가 곧 일어나 자리를 떴다.
선사가 산을 내려가 오봉(五峯)에 이르니 오봉이 물었다.
"그곳의 노숙(老宿)을 아십니까?"
"모른다."
"어째서 모르십니까?"
"모른다, 몰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家風)이십니까?"
선사가 평상에서 내려와 절하는 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그대가 멀리서 온 것은 고마우나 아무것도 대답할 것이 없소이다."
"만리에 구름이 없다 해도 이 역시 곁가지의 해[日]입니다. 어떤 것이 본래의 해입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하였다.
"오늘은 보리 말리기에 딱 좋구나."
위산이 운암에게 물었다.
"보리(菩提)는 무엇으로 자리[座]를 삼습니까?"
운암이 대답했다.
"자리 없음을 자리로 삼는다."
운암이 되레 위산에게 물으니, 위산은 이렇게 대답했다.
"모든 법이 공함으로 자리를 삼습니다."
이에 위산이 다시 선사에게 물으니, 선사가 대답했다.
"앉을 때에도 그의 말을 듣고 앉으며 누울 때에도 그의 말에 따라 눕는다. 어떤 사람은 앉지도 않고 눕지도 않나니 빨리 말해 보아라."
선사가 삿갓을 가지고 나가니, 운암이 물었다.
"이것을 가지고 무엇 하려 하십니까?"
"쓸데가 있다."
"검은 비바람이 몰아칠 때는 어찌합니까?"
"뚜껑을 덮는다."
"그가 뚜껑을 덮으려 합니까?"
"비록 그렇다 하나 오히려 새지는 않는다."
어떤 이가 선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지금 힘을 써야 할 곳입니까?"
"천 사람이 불러도 고개를 돌리지 않아야 비로소 상응(相應)할 몫이 조금 있느니라."
"갑자기 불이 났을 때엔 어찌합니까?"
"온 누리를 다 태울 수 있느니라."
비수(椑樹)가 불을 쪼이는데 선사가 물었다.
"무엇을 하는가?"
"화합을 합니다."
"그렇다면 당장에 해탈을 얻겠구나."
"막힌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이에 선사가 소매를 떨고 나가 버렸다.
선사가 운암에게 물었다.
"천수천안(千手千眼)이란 어떤 것이오?"
운암이 대답했다.
"마치 어두운 밤에 베개를 잡고 있는 것과 같소. 당신도 아십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나도 압니다. 나도 알아."
운암이 다그쳐 물었다.
"어떻게 압니까?"
"온몸이 눈입니다."
이에 신산(神山)이 말했다.
"온몸이 눈이었다."
선사가 언젠가 대중에게 말했다.
"세상에 나왔든 나오지 않았든 모두가 세상에 나온 쪽에서 하는 말이다."
이에 어떤 스님이 말했다.
"어떤 사람은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선사가 말했다.
"설사 인정하지 않더라도 역시 곁가닥이니라."
선사가 위산을 하직하니, 위산이 "지(智) 두타(頭陀)여" 하고 불렀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그 안의 일이 어떻습니까?"
위산이 또 "지 두타여, 지 두타여" 하니, 선사가 말했다.
"참으로 졸렬하군."
선사가 새로 참문 온 스님을 보자, 북을 치고 방장으로 돌아가니, 그 스님도 북을 치고 승당(僧堂)으로 들어갔다. 이에 주사(主事 : 책임자)가 선사에게 와서 책망을 했다.
"화상께서 북을 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새로 온 이는 어째서 까닭 없이 북을 칩니까?"
선사가 말했다.
"법답게 차와 떡을 준비하라. 내일 내가 그를 감정해 보리라."
이튿날 차와 떡을 준비해서 그를 불러 먹이다가 선사가 동자에게 지시하
여 그 스님의 곁으로 가라 하니, 동자가 얼른 와서 그 스님의 곁에 섰다. 그 스님이 동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화상께서 부르십니다."
이에 선사가 방장으로 돌아가 버렸다. 주사(主事)는 다시 화상에게 와서 말했다.
"그가 어제 까닭 없이 북을 친 것만으로도 꾸중을 들어야 하거늘 어째서 아까 되레 동자의 머리를 때립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나는 그대를 위해 꾸짖었고, 또 감정도 끝냈느니라."
어느 고승이 비를 무릅쓰고 상당하니, 약산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대 왔는가?"
고승이 대답했다.
"오줌6) 속입니다."
"흠뻑 젖었겠군."
"그러한 북 피리 장단은 치지 않습니다."
이에 운암이 말했다.
"가죽도 없는데 무슨 북을 친다는 말인가?"
이에 선사가 말했다.
"뼈도 없는데 무슨 가죽을 친다는 것이오?"
약산이 말했다.
"매우 좋은 곡조로다."
태화(太和) 9년 을해(乙亥)의 9월 11일에 어떤 사람이 물었다.
"화상이시여, 4대(大)가 고르지 못하면 몹시 아프실 터인데, 그 아픔을 줄일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아프지 않은들 무엇하겠는가? 그러므로 옛사람이 말하기를
6) '뇨( :尿와 같다)'의 오자(誤字)가 아닌가 한다.
'이 몸으로 다 갚을지언정 악도(惡道)에 드는 보를 받지 않기를 바란다' 했느니라."
선사가 또 말했다.
"갚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이가 있는 줄 아는가?"
"그렇다면 물이 파도를 여의지 않고 파도가 물을 여의지 않았겠습니다."
그러자 선사가 갑자기 얼굴에다 침을 뱉고 양구(良久)했다가 다시 대중에게 물었다.
"몇 시경이나 되었느냐?"
"미시(未時)입니다."
"그러면 종을 쳐라."
종을 세 번 치자 홀연히 입적하니, 춘추(春秋)는 67세였다.
선사가 떠나면서 대중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비록 서쪽으로 가나 진리는 동쪽으로 옮겨가지 않으리라."
다비(茶毘)한 뒤에 사리(舍利) 하나를 얻으니, 뛰어나게 맑고 밝았으며, 그 빛은 금과 같고 그 소리는 구리와 같았다. 석상산(石霜山)에 탑을 모시니, 시호는 수일(修一) 대사요, 탑호(塔號)는 보상(寶相)이었다.
정수(淨修) 선사가 찬(讚)했다.
장사의 도오(道吾) 선사는
대중을 거느리지 않았다.
세상에 나오셨건 나오시지 않았건
나무 쓰러지면 등칡도 마른다.
長沙道吾 多不聚徒
出世不出 樹倒藤枯
싸늘한 바위, 옛 소나무
푸른 은하수에 금까마귀
가르침을 내리심이 높고도 험준하나
석상(石霜)이 그것을 감당했다네.
寒嵒古檜 碧漢金烏
垂機嶮峭 石霜是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