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당집(祖堂集)

낙포(樂逋) 화상

通達無我法者 2008. 3. 10. 11:44
 

조당집 > 조당집(祖堂集) > 조당집 제 9 권 > 436 - 445쪽

K.1503(45-233), 

   

조당집 제 9 권

  

  정수선사 문등 지음

  김월운 번역

  

  낙포(樂逋) 화상

  

  협산(夾山)의 법을 이었고, 예주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諱)는 원안(元安)이니, 봉상부(鳳翔府) 인유 사람으로서 성은 담(淡)이었다. 어릴 적부터 기양의 회은사(懷恩寺)에서 형인 우 율사에게 공부를 배웠는데 경(經)과 논(論)에 이르기까지 해박하게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처음에 취미(翠微)를 뵙고, 다음에 임제(臨濟)를 참예하여, 그들 각각에게서 얻은 바가 있었다. 나중에 협산(夾山)의 소식을 듣고 곧 예양으로 가서 좌구를 펴려는데 협산이 말했다. 

  "여기에는 남는 밥이 없으니, 밥 짓는 앞치마를 펼 필요가 없느니라."

  이에 선사께서 대답했다. 

  "없을 뿐만 아니라, 있다고 하더라도 둘 곳이 없습니다."

  협산(夾山)이 다시 말했다.

  "지금이냐? 적(聻)!1)선사께서 말했다. 

  선사께서 말했다. 

  "지금은 아닙니다." 

  "어디서 이런 소식을 얻었는가?"

  "이런 것 따윈 없습니다."

  

  

1) 진언(眞言)의 일종, 모든 것을 거부하는 뜻을 지녔다.}

  "이런 것이라 해도 여전히 노승에게 짓눌리는 것이다."

  "학인(學人) 역시 화상이 계신다고도 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방안에 노승이 없겠도다."

  이에 선사께서 말했다. 

  "그림자조차 그리지 못합니다."

  이에 협산(夾山)이 선사를 찬탄했다.

  

  그대는 내 마음 알기를 손바닥 가리키듯 하고 

  종자기(鍾子期)는 백아(伯牙)의 거문고를 들을 수 있구나. 

  道者知音指其掌 鍾期能聽白牙琴

  

  선사께서 협산에게 물었다.

  "오랫동안 종풍을 흠모하였습니다. 한 말씀 내려 주십시오."

  협산이 말했다. 

  "눈앞에 법이 없느니라." 

  "어긋나지 마십시오." 

  이에 협산(夾山)이 말했다. 

  "보잘것없는 사리야, 산과 개울이 각각 달라 그대 마음대로 천하 사람의 혀끝을 자르지만, 혀 없는 사람이 말을 하는 것이야 어찌하겠는가? 그대는 다만 살인도가 있는 것만 알 뿐 활인검(活人劒)은 없구나. 노승에게는 살인도도 있고 활인검도 있다."

  "어떤 것이 화상의 활인검입니까?"

  협산이 대답했다.

  "푸른 산엔 검을 걸지 않고, 검을 걸면 아는 이가 없느니라."

  선사께서 또 물었다.

  "부처와 마가 미치지 못하는 곳이라도 학인의 본분의 경지(境地)가 아닙니다. 어떤 것이 학인의 본분의 경지입니까?"

  협산(夾山)이 대답했다. 

  "촛불이 천 리 밖의 형상을 밝히는데 어두운 방의 노승은 미혹하구나."

  

  선사께서 또 물었다.

  "아침해는 이미 떠올랐고, 저녁달이 아직 돋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협산이 대답했다. 

  "용이 여의주를 물었건만 노니는 고기는 돌아보지도 않느니라."

  선사께서 이 말을 듣고 갈 곳을 잊은 채, 협산에 머물러 몇 해를 모시면서 곤고로움을 꺼리지 않고 날마다 오묘함을 참구하였다. 협산이 세상을 떠나매 처음으로 낙포(落逋) 선원을 개당하고 나중엔 소계(蘇溪)로 옮겨 살았다.

  

  선사께서 언젠가 상당하여 말했다.

  "대체로 도를 배우는 데엔 자기의 종지(宗旨)를 먼저 가려내어야 비로소 기연에 임하여 실수를 면할 수 있다. 봉망(鎽·)2)이 드러나기 전에는 옳다 그르다가 도무지 없는데, 한순간 보고 듣는 작용을 일으키면 문득 장삼이사(長三李四)가 생기고, 오랑캐가 오고 한족이 가며, 4성(姓)이 뒤섞여 살면서 제각기 친한 이를 가까이하고 시비가 뒤섞여 일어나 마침내 현묘한 관문을 굳게 닫히게 하고 의식의 자물쇠가 열리지 않게 하며, 의혹의 그물에 얽혀 지혜의 칼만이 겨우 자를 수 있듯이, 만일 그 자리에서 뚜렷이 보여 주지 않으면 미혹한 무리들이 어찌 돌아갈 곳을 알겠는가. 만일 큰 작용이 활짝 나타나기를 바란다면 당장에 모든 소견을 없애라. 소견의 작용이 모두 사라지면 어두운 안개가 끼지 않고 지혜가 환하게 비치어 다시는 현상도 현상 아님도 없게 되리라.

  요즘의 학인들이 부딪치는 것마다 걸리는 까닭은 대체로 남의 헤아림에 의해서 견해를 일으키기 때문이니, 남의 헤아림에 포섭되어 판단하므로 한 치도 발을 옮기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보는 것은 물질을 벗어나지 못하고 듣는 것은 소리를 벗어나지 못하여 코의 냄새와 혀의 맛과 몸의 촉감과 뜻의 법진(法塵)도 그와 같으니라. 설사 6근(根)의 문턱이 모두 정결하게 되었더라도 자기의 일을 훤히 밝히지 못하면 깨닫지 못한 것과 같을 것이요, 다만 자기를 밝히기만 하고, 눈앞의 일을 밝히지 못하면 이 사람은 한쪽 눈만

  

  

2) 예리한 칼 끝, 곧 기지(機智)를 말한다.

  을 갖춘 것이다. 그러므로 옳고 그름과 좋고 싫음과 꿰뚫고 얽매임을 벗어나 자유롭게 되지 못하면 매우 가엾다 말하는 것이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떻게 해야 생사를 떠날 수 있습니까?"

  선사께서 대답했다. 

  "물에 집착하여 생명을 구하면 하늘 풍악의 묘함을 듣지 못하느니라."

  "4대가 어디서 생깁니까?"

  "맑은 물은 본디 파도가 없지만 바람이 불면 파도가 인다."

  "파도는 묻지 않겠습니다. 어떤 것이 물입니까?"

  "흐리지도 않고 맑지도 않으며 고기나 용이 마음껏 뛰느니라."

  "어떤 것이 한 창고에 다 거두지 못하는 것입니까?"

  "비가 와야 3초(草)가 수려해지지만 한 조각 옥은 본래부터 빛나느니라."

  "한 터럭이 큰 바다를 다 삼키는데 거기서 더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집 안에 백택도(白澤圖)가 있으니, 반드시 그러한 요괴는 없을 것이니라."

  나중에 보복(保福)이 이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집 안에 백택도가 없어도 그러한 요괴는 없으리라."

  "응연(凝然)할 때는 어떠합니까?"

  "장마철 우레가 계절에 맞춰 울리어, 멧부리를 흔들고, 동면하던 벌레를 놀라게 하느니라."

  "천만 가지 운동이 그 응연(凝然)과 다르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신령한 학은 푸른 허공 밖으로 날아갔는데 둔한 새는 둥우리를 떠나지 못하느니라."

  "어떠합니까?"

  "백발 노인이 소년에게 절을 하니, 온 세상 사람들이 믿으려하지 않느니라."

  선사께 신검가(神劒歌)가 있으니, 다음과 같다.

  

  기이하여라 신기한 검이여, 진실로 기이하니 

  옛부터 구하고자 하는 이는 얻기 힘들다.

  갑(匣)에 있을 때엔 광채가 없다 말하지만 

  활용해봐야 비로소 점점 빛이 더함을 깨달으리.

   異哉神劒實摽奇 自古求人得者稀

   在匣謂言無照耀 用來方覺轉光輝

  

  망설임을 깨고 의심을 없애니, 

  심담(心膽)을 장대하게 하고 정신과 자세를 안정시킨다.

  6적이 이로 인해 부서지니 

  8만 번뇌가 모두 떨쳐진다.

  破猶預除狐疑 壯心膽兮定神姿

  六賊旣因斯剪拂 八万塵勞盡乃揮 

  

  삿된 무리를 베어버리고 요망한 사귀를 소탕하니 

  생사(生死)와 영고(榮枯)가 일제히 결단된다.

  석 자의 신령한 뱀이 푸른 못을 덮고 

  한 조각 맑은 광채 싸늘한 달에 비친다.

  斬邪徒盪妖孼 生死勞枯齊了決

  三尺靈蛇覆碧潭 一片晴光瑩寒月

  

  어리석은 사람이 칼을 물 속에 빠뜨려서 

  그것을 찾으려 뱃전에 표시하고는 

  흐린 물에 분주히 헤매면서 공연(空然)히 설치나니 

  맑은 물에 버리고 파도를 좇으니 

  어찌 신검이 흐름을 따르지 않는 줄 알리오?

  愚人忘釗剋舟求 奔馳濁浪徒悠悠 

  抛弃澄源逐渾派 豈知神劒不隨流 

  

  다른 이의 검은 비린내를 띠지만 

  나의 검은 신령한 울음 소리를 머금는다.

  다른 이의 검은 사람의 생명을 해치지만 

  나의 검은 생명들을 구제한다.

  他人劒兮帶血腥 我之釗兮含靈鳴 

  他人有釗傷物命 我之有釗救生靈

  

  군자가 얻으면 너와 나의 차별을 여의고 

  소인이 얻으면 저절로 생명을 가벼이 여긴다. 

  그들은 나의 검을 쓰려 하지 않지만 

  세상의 높고 낮음이 언젠가는 평정되리라.

  君子得時離彼此 小人得處自輕生

  他家不用我家釗 世上高低早晩平

  

  신검의 공덕이 부사의함을 알아야 하나니 

  마의 위협을 물리치고 생사를 결정짓는다.

  얻지 못한 이는 쉬운 일도 어려워지지만 

  검을 얻은 이는 어려움이 도리어 쉬워진다.

  須知神釗功難紀 懾魔威兮定生死

  未得之者易成難 得釗之人難却易

  

  펴면 법계 안에 두루 미치고 

  거두면 한 먼지 속으로 돌아간

  만일 이 검으로 건곤(乾坤)을 진압하면 

  4방 어디에도 전진(戰陣)의 구름이 일지 않으리.

  展則周遍法界中 收乃還歸一塵裡

  若將此釗鎭乾坤 四塞終無陳雲起

  

  복선(福先)이 이를 들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한 마디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칼집 속에 든 검과 칼집에서 나온 검을 그대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

  스님이 대답이 없자 스스로 대신 말했다. 

  "우선 '갑에서 나온 검을 노형과 더불어 따져 봅시다' 하라. 알겠는가?"

  

  어떤 이가 물었다.

  "여러 성인들이 그렇게 오셨으니, 무엇으로 공양하오리까?"

  선사께서 대답했다. 

  "촌 노숙이 석장을 짚었으나 바라문은 아니니라."

  "서천에서는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만 전하여 서로서로가 간곡히 보여 주지 않으니, 누가 그 참뜻을 아는 자입니까?"

  선사께서 대답했다.

  "촌 노인의 문전에선 조정의 일을 의논하지 않느니라." 

  "조정의 일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무엇을 이야기합니까?" 

  "별다른 이를 만나지 않으면 끝내 주먹을 펴지 않느니라." 

  "어떤 사람이 조정에서 오지 않았다 하면 그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합니까?" 

  "동떨어진 근기는 부질없이 눈을 마주친다." 

  "어떤 것이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입니까?" 

  "출가하지도 않고 계를 지키지도 않느니라." 

  "출가하지도 않고 계를 지니지도 않은 지 얼마나 됩니까?" 

  "허공을 쪼개어 가려 보아라." 

  "지금은 어떠합니까?"

  "그대에게 장유(長幼)의 순서를 거짓으로 배열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 망라하지 못합니다."

  "그대가 거듭 그리 말하도록 놓아두지 않겠다." 

  "어떤 것이 거룩한 사람의 모습입니까?"

  "시방에 자리잡고 앉아서 고개도 까딱하지 않느니라."

  "활짝 트인 세계인데 어째서 눈앞의 법을 가리지 못합니까?" 

  

  "먼동이 트기 전엔 사람들이 깨어나려고 하지만, 날이 환히 밝은 뒤엔 광명을 대하지 않으려 한다."

  "그 경지에 이르기를 미루지는 않습니까?"

  "이르니 못 이르니 따위의 말은 말고 그저 나에게 말해보아라."

  "스님의 종지를 논박할 수 없습니다."

  "논박하지 않으면 가까워지느니라."

  "범부와 성인이 이르지 못하는 곳은 묻지 않겠습니다. 범부와 성인이 다하지 못한 곳은 어떠합니까?" 

  "사자 굴에 딴 짐승이 없고, 코끼리 가는 곳에 토끼의 자취가 없느니라."

  "깜짝하는 사이에 문득 보일 때는 어떠합니까?"

  "새벽 별이 아침빛을 밝힌다 해도 어찌 태양이 빛나는 것과 같으랴?"

  "어떤 것이 본래의 것입니까?"

  "한 톨의 씨앗이 밭에 있으니, 김을 매지 않아도 싹이 절로 빼어나니라."

  "계속해서 김을 매지 않으면 풀 속에 묻히지 않겠습니까?"

  "살찐 뼈대는 땔감과는 다르고, 피는 끝내 값진 곡식이 되지 못하느니라."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창문 앞에 당당하게 서있는 대는 서리를 겪어도 추워하지 않느니라."

  그 스님이 다시 물으려는데 선사께서 말했다. 

  "다만 바람 치는 소리만 들을 뿐, 몇천 개의 대나무인 줄은 알 수 없느니라."

  "부사의한 곳에 이르렀을 때는 어떠합니까?"

  선사께서 대답했다. 

  "푸른 산은 항상 걸음을 옮기나 흰 달은 잠시도 자리를 바꾸지 않느니라."

  "대중이 구름같이 모였습니다. 스님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주먹을 펴서 옛 보물을 밝히고, 주먹을 쥐어서 오늘을 감사하느니라."

  "어떤 것이 사문의 행입니까?"

  "부처를 만나면 당장에 앉느니라."

  "갑자기 화상을 만났을 때엔 어찌합니까?"

  "그대가 올 때엔 노승은 없을 것이니라."

  

  "해가 뜨기 전엔 어떠합니까?"

  "곧은 나무에 들쭉날쭉한 가지가 없어서, 영양이 뿔을 걸기 어려우니라."

  "어떤 것이 운수(雲水)의 뜻입니까?"

  "달덩이 하나가 오만 가지 형상을 골고루 비추느니라."

  "달이 움직이는 일은 어떠합니까?"

  "못 속에는 그림자가 없고 문 밖에 진귀한 보물을 두지 않느니라."

  "조사의 뜻과 경전의 뜻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무리해서 출중한 이는 뿔을 쓰지 않고, 세 가지 다른 운은 같게 할 수 없느니라."

  "의기가 투합하려면 구절에 의지해야 하는데 이 어찌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매우 뛰어난 기술은 바다 밑을 재나니, 3상(湘)이 깊다 해도 잔질을 할 수 있느니라."

  "옛사람이 말하기를 '움직임은 법왕의 싹이요, 고요함은 법왕의 뿌리라' 했는데 싹은 묻지 않겠습니다. 어떤 것이 법왕의 뿌리입니까?"

  이에 선사께서 불자를 일으켜 세우니, 스님이 말했다. 

  "이 역시도 싹입니다. 어떤 것이 법왕의 뿌리입니까?"

  "용이 동굴에서 나오지 않는데 누가 그를 어찌하겠는가?"

  "세계가 드넓어 끝이 없다는데 어째서 자기를 용납하지 못합니까?"

  "마지막의 한 구절이라야 비로소 굳은 관문에 이르고 요긴한 길목을 봉쇄하면 범부도 성인도 통하지 못한다. 천하 사람들이 마음껏 기뻐 즐기더라도 노승은 홀로 상관치 않으리라."

  그리고는 다시 말했다. 

  "장주(莊周)와 나비 둘 다 꿈이라 하는데 꿈이 어디서 오는지 그대는 말해보아라."

  "외로운 등불이 스스로 비추지 못할 때 방안의 일은 어떠합니까?"

  선사께서 대답했다. 

  "바늘과 실이 움직일 때는 사람들 모두 알지만 양쪽에서 뚫고 지나는 것은 도리어 아는 사람이 없다."

  

  "가득 찬 용궁은 거두지 못하는데 한 티끌마다 밖의 일은 어떠합니까?" 

  선사께서 대답했다. 

  "세 번 뛰어서 광주리를 벗어났다 하나 구름 밖에 있는 이만 못하니라."

  "학인(學人)은 출사하여 귀히 되는 것을 소중히 여기지는 않습니다만 이대로 일제히 그만둘 수는 없습니다."

  이에 선사께서 말했다. 

  "가거라. 그대는 나의 말뜻을 알지 못하느니라."

  "세 번 뛰는 것 외의 일은 어떠합니까?"

  "범을 쏘아 맞추지 못하니 공연히 몰우전[沒羽]만 허비하느니라."

  "만 가지 법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물을 건드려 물결을 일으키니, 그 안에서 그림자를 보기 어려우니라."

  "우두(牛頭)가 4조를 만나기 전에는 백 가지 새가 꽃을 물어다 공양을 올렸는데 만난 뒤에는 어째서 오지 않았습니까?"

  "현묘한 강에 눈꽃 같은 흰 파도가 일고, 불꽃 없는 외로운 등불은 어두운 밤을 밝힌다."

  선사께서 부구가(浮漚歌)를 지었다.

  

  가을날 비가 내려 뜰 안에 물이 고이니 

  물 위에 둥실둥실 물거품이 이네.

  앞의 것 사라지면 뒤의 것이 생기어 

  앞뒤 서로 이으니 언제나 그치려나?

  본래는 빗방울로 인하여 물거품 되었는데

  다시금 바람 불어 거품이 도로 물이 된다.

  秋天雨滴庭中水 水中漂漂見漚起 

  前者巳滅後者生 前後相續何窮巳

  本因雨滴水成漚 還緣風激漚歸水

  

  거품과 물의 성품 다르지 않음을 알지 못하고

  변하는 것에 따라 다르다고 여기네.



조당집 > 조당집(祖堂集) > 조당집 제 9 권 > 446 - 455쪽

K.1503(45-233), 

  겉은 반짝이고 안은 비었으니 

  안팎이 영롱하여 보배 구슬 같도다.

  不知漚水性無殊 隨他轉變將爲異

  外明瑩內含虛虛 內外肣朧若寶珠 

  

  맑은 파도에서는 있는 듯이 보이다가 

  움직이자 다시 없는 것 같구나

  있고 없고 움직이고 고요한 일 밝히기 어려우니 

  형상 없는 가운데 형상이 있네.

  正在澄波看似有 及乎動著又如無

  有無動靜事難明 無相之中有相形

  

  다만 거품이 물에서 생기는 줄만 알뿐

  물이 거품에서 생기지 않는 줄 알리오?

  어찌 방편으로 이 몸을 거품에다 견주노니 

  5온을 허망하게 얽어서 거짓으로 사람됐네.

  5온이 공하고 거품이 거짓임을 알기만 하면 

  비로소 본래의 참됨을 보리라.

  口知漚向水中出 豈知水不從漚生

  權捋漚體況余身 五薀虛攢假立人

  解達薀空漚不實 方能明見本來眞 

  

  선사께서 임종할 때 말했다. 

  "노승이 그대에게 물어볼 일이 있다. 만약 그것이 옳다고 한다면 머리 위에 다시 머리를 두는 것이요, 만일 그것이 옳지 않다 하면 머리를 베어내고서 살기를 바라는 것이 된다."

  이에 제1좌(第一座)가 말했다. 

  "청산에서는 발을 들지 않고 햇빛 아래서는 등불을 들지 않습니다."

  이에 선사께서 소리쳐서 내쫓으며 말했다. 

  

  "나의 여기에는 대답할 사람이 없다. 대중 가운데 새로 온 이로서 통달한 이가 있거든 나와서 노승을 전송해 다오."

  종(從) 상좌가 나서서 말했다. 

  "여기 이 두 길에 대해서 스님께선 묻지 말아 주십시오."

  "더 말해 보아라."

  "저는 다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대가 다 말할 수 있든 없든 상관치 않는다. 더 말해 보아라."

  "저에게는 시자가 없어서 대답할 수 없습니다."

  이에 선사께서 소리쳐 내쫓으면서 말했다. 

  "여러분, 일단 승당(僧堂)으로 돌아가라."

  그날 초저녁이 지날 무렵 선사께서 시자(侍者)더러 종 상좌를 불러오게 하였다. 종 상좌가 올라와서 곁에 서니 선사께서 물었다."

  "종 상좌는 몇 살인가?"

  "28세입니다."

  "몹시도 게으르구나. 힘써 자신을 간수해야 되겠다. 고향은 어디인가?"

  "신주(新州) 사람입니다."

  이에 선사께서 말했다. 

  "오늘의 일은 노승의 뜻에 황당하게 그대가 설파하였느니라. 나 여기서 몇 해 동안 세상에 나와 학인을 제접했건만 한 사람도 오늘의 사리처럼 전송해 주는 이가 없었다. 작고하신 노승의 스승께서 처음 선자(船子)를 만났을 때, 선자께서 묻고 스승께서 대답한 인연을 가지고 내가 고쳐서 다음과 같이 송했느니라.

  

  눈앞에 법이 없으나 

  뜻은 눈앞에 있나니

  그것은 눈앞의 법이 아니어서 

  귀와 눈으로는 미칠 바 아니라네.

  目前無法 意在目前

  他不是目前法 非耳目之所到

  

  이 네 구절에서 어느 것이 중심이 되는 주요한 구절인가?"

  이에 종 상좌가 머뭇거리고 있으니, 선사께서 말했다.

  "속히 일러라. 속히 일러라. 아래 말뚝이 차가우니, 그대에게 형적이 없음을 저버리지 않으려 하노라."

  종 상좌가 말했다. 

  "실로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러자 선사께서 가슴을 치면서 곡을 하였다. 종 상좌가 내려오자마자 승당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떠나서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선사께서 이보다 앞서 말했다. 

  "자석의 배를 푸른 파도 위에 띄우지 못하는데 검협(劒峽)에서는 공연히 목아(木鵝)를 날려보내는구나."

  

  선사께서 광화 2년 무오(戊午) 12월 2일에 열반에 드니, 춘추(春秋)는 65세요 승랍(僧臘)은 46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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