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간록(林間錄)

78. 알음알이로 이해하는 것을 경계함 / 조계 육조(曹溪六朝)스님

通達無我法者 2008. 3. 12. 16:07

 

 

 

  「대반야경(大般若經)」에 이렇게 말하였다.

   “많은 천자(天子)들이 ‘모든 야차들의 말과 주문은 은밀하지만 알 수는 있다.   

그러나 선현(善現 : 수보리)존자가 이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密多)에 대하여 보여주신 갖가지 말씀을 우리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다’고 생각하자 선현존자는 그들의 마음을 알고 말하였다.

   ‘너희 천자들은 나의 설법을 알지 못하느냐?’

   ‘그렇습니다'.

 

   장로(長老) 선현존자가 다시 말하였다.

   "내 일찍이 이에 대하여 한 글자도 설법한 일이 없으므로 너희 또한 듣지 못하였을 것이니 무엇을 알 수 있겠는가.    

무슨 까닭일까?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는 문자와 말을 멀리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말하는 자나 듣는 자,그것을 이해하는 사람까지도 모두 있을 수 없다.   

일체 여래 응정등각(應正等覺)께서 깨들으신 무상정등보리(無上正等菩提)도 마찬가지로 그 상(相)이 매우 심오하다."

 

   조계(曹溪)스님이 입적할 무렵에야 바야흐로 그 가르침을 모두 말씀하신 것은 대승의 종성이 익어졌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느 스님이 ‘신주(新州)로 돌아가려는’ 뜻을 묻자* “나뭇잎이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지만 올 때에는 말이 없다〔葉落歸根 來時無口〕”라고 답하였다.

 

   또한 강서(江西)의 마조(馬祖)스님과 남악(南嶽)의 석두(石頭)스님에 이르러서는 선종의 법이 성하였다.   

그리하여 석두스님을 진정한 사자후를 하시는 분〔眞吼〕이라 하고,

마조스님을 법을 온전히 드러내시는 분〔全提〕이라 불렀으니,

그들의 기봉(機鋒)은 큰 불더미와 같아 어찌 해보려 들면 타죽는 것이다.   

그러니 요즈음 학승들이 뜻과 생각으로 이해하려 하는 것은 과연 잘못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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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천(先天) 2년(713) 7월 1일에 육조가 문도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신주(新州 : 육조의 아버지가

   여기로 귀양왔었다)로 돌아가겠으니 서둘러 나룻배를 준비하여라” 하니, 문도들이 울면서

   “스승께서 이제 떠나시면 언제나 오시렵니까?” 하였다.    스님께서는 위의 게송을 읊고 신주로

   떠났는데 얼마 있다가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