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간록(林間錄)

79. 사문이 자신을 내리깎는 말세풍조 / 명교 설숭(明敎挈嵩)스님

通達無我法者 2008. 3. 12. 16:09
명교 설숭(明敎挈嵩 : 1007~1072)스님께서 항시 개탄하셨다.  

   “사문(沙門)이 고상하게 된 것은 자비로우신 부처님의 힘인데 말세에 와서 어지럽게 된 까닭은 우리 스스로가 비천하게 만든 것이다.   

사문은 천자를 볼 때에도 ‘신(臣)’이라 일컫지 않는 법이다.    

‘신(臣)’이란 공경 대부 따위의 벼슬을 이르는 칭호이다.   

그러므로 맞지 않게 ‘신’이라는 말을 써서는 안된다.   

그러나 당(唐) 영도(令 瑫 : 666~760)스님이 견식이 밝질 못하여 맨처음 그 폐단의 실마리를 열어준 뒤 역대 스님들은 이를 따라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신’이라 일컫게 되었다.   

 

산림에 묻혀사는 선비도 천자는 오히려 신하로 삼지 못하는데 더구나 사문이야 어떠하겠는가?”

   그런 까닭에 명교스님은 「정종기(正宗記)」를 올리는 표(表)에서 첫 부분과 맨 끝만 ‘신 아무개〔臣某〕’라 하여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례를 따랐을 뿐, 중간 부분에서 자기 의견을 서술할 때에는 그대로 이름을 썼다.   

그리하여 당시의 벼슬아치들은 이 글을 읽어보고 스님의 높은 식견을 존중하였다.

   나는 지난날 상중(湘中)지방을 돌아다니다가 어떤 스님이 도량을 짓고 남악의 황제를 초대하여 설법할 때 몸을 굽혀‘신승 아무개〔臣僧某〕’라고 소리높여 외치는 것을 보았으니 이 어찌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