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록(黃龍錄)

황룡산에서 남긴 어록[黃龍山語錄]

通達無我法者 2008. 3. 17. 09:04
 

 

 

황룡산에서 남긴 어록[黃龍山語錄]

  1.

  절에 들어가 상당하자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황룡산의 경계입니까?"

  "어제서야 여기에 도착하였기 때문에 아직 자세히 보질 못하였다."

  "어떤 것이 그 경계에 있는 사람입니까?"

  "긴 것은 길고 짧은 것은 짧다."

  스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도는 의심과 막힘이 없으며 법은 본래 인연을 따르니 일이 어찌 억지로 되랴. 아마도 그렇지 않으면서 그러한 것이리라. 적취암(積翠菴)에 있으면 적취암 사람이라 하고, 황룡산(黃龍山)에 들어가면 바로 황룡장로(黃龍長老)라 한다. 조사의 심인(心印)을 어떻게 알랴. 무쇠소를 만드는 틀과도 흡사하여 도장을 떼면 무늬[印文]가 찍히고 도장을 누르고 있으면 무늬가 뭉개진다. 떼지도

않고 누르지도 않을 경우엔 또 어떻게 도장을 찍겠느냐?"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안개 낀 마을에 3월 비 내리는데 어떤 집 하나만은 색다른 봄이로구나[煙村三月雨 別是一家春]."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2.

  방거사(龐居士)가 조리( 籬)를 팔러 다리로 내려오다가 땅바닥에 입을 박고 엎어지자 딸인 영조(靈照)도 아버지 곁에 거꾸러지니 거사가 말하였다.

  "너는 무얼 하느냐?"

  "아버지께서 땅에 거꾸러진 것을 보고 제가 부축해 드리는 겁니다."

  "다행히도 보는 사람이 없었기 망정이구나."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가련한 사람은 비웃는 줄도 모르고 도리어 가다 말고 진흙탕에서 뒹구는구나. 내가 당시에 보았더라면 이 원수를 한 방망이에 쳐죽였으리라."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내려오셨다.

  3.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은 세상은 출현하여 방편으로 말씀[言詮]을 시설 하였으나 조사가 서쪽에서 찾아와서는 입도 뻥긋 않으셨다. 가령 허공에서 놓아버린다면 3천세계(三千世界) 모든 티끌의 낱낱 티끌 가운데 법계를 머금겠지만, 만일 걸음마다 높은 데 오르려 한다면

나귀의 안장은 너의 아버지 아래턱뼈가 아니리라."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4.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큰 도는 중간이 없으니 다시 무엇이 전후가 되며, 긴 허공은 자취가 끊겼는데 어찌 헤아림이 필요하랴. 허공이 이미 이와 같은데 도를 어찌 말하랴. 상근기라면 설명[言詮]을 빌리지 않겠지만 중·하의 부류라면 또 어떻게 면하겠는가. 그러므로 한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묻기를 '무엇이 운문의 한 곡조입니까?' 하자 '납월 25일이다'라고 했던 것이다."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오늘이 바로 납월 25일이다. 그대들은 잘 알겠느냐? 잘 모르겠다면 자세히 들으라. 내 여러분을 위해서 거듭 한 번 더 노래하라.

   운문의 한 곡조는 스물 다섯이라

   궁상각치우에 속하지 않았네

   내 곡조의 유래를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남산에 구름 일어나니 묵산에 비 내린다 하리.

   雲門一曲二十五  不屬宮南角徵羽

   若人問我曲因由  南山起雲北山非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5.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승당앞에서 종을 치면 종이 울리고 법당 위에서 북을 치면 북이 메아리쳐서 3세 모든 부처님이 북소리 속에서 큰 법륜을 굴린다. 여러분은 어느 곳에서 안심입명을 하려느냐? 억지로 부리는 어떤 납승이 있어 탁하고 청정함을 모른 채 문득 '동서남북과 사유상하와 오늘은 7, 다음날은 8을 말하며 승당 안에서 을 먹고 요사채에서 불을 쪼이거나 혹은 면전에 한 획을 굿기도 한다. 이렇게 했다간 4은(四恩)을 등지리니 그것은 그래도 괜찮다 하겠지

만 서쪽에서 오신 눈 푸른 달마를 저버리리라."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6.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황매산(黃梅山)에서 한밤중에 심게(心偈)를 전하고 소실암전(少室巖前)에서 팔을 끊었으니 긁어 부스럼 만들면서 아픔을 모르고 지금까지 시비거리를 만드네."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내려오셨다.

  7.

  월주(越州) 대주(大珠)스님이 지난날에 마조(馬祖)스님을 뵈었을 때 마조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무얼 하러 왔느냐?"

  "불법을 구하러 왔습니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집을 버리고 생업을 잃었느냐. 왜 머리를 돌이켜 자기 집의 보배창고를 알고 갖질 않느냐."

  "무엇이 자기 집의 보배 창고입니까?" 

  "지금 묻고 있는 자가 그것이다. 그대가 머리를 돌이킨다면 일체가 구족하여 누리고 씀[受用]이 끝도 없어서 다시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대주스님은 여기에서 구하는 마음을 홀연히 쉬고 대도량에 앉았다.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여러분들은 각자에게 자기의 보배창고가 있는데 무엇 때문에 사용하질 못하느냐. 머리를 돌이키지 않기 때문이다."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8.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한 사람은 아침에는「화엄경」을 보고 저녁엔「반야경」을 보면서 밤낮으로 정근하느라 잠시도 겨를이 없으며, 한 사람은 참선도 하지 않고 논의도 하지 않은 채 헤진 방석을 붙들고 대낮에 졸고 있다. 이 두 사람이 함께 나를 찾아왔다. 한 사람은 함이 있고 한 사람은 함이 없다. 어떤 사람을 인정해야 옳겠느냐?"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공덕천(功德天:毘沙門王의 왕비)과 흑암녀(黑暗女)를 지혜 있는 주인은 둘 다 받질 않는다."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9.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대각세존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지금 그대를 위해서 깨달음을 잘 간직[保任]하나니 이 일은 결코 거짓이 아니다. 너희들은 이 삼매를 부지런히 정진해야 된다'고 하셨다."

  스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정진이라면 없질 않다만 여러분은 무엇을 삼매라 하겠느냐?"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가섭의 분소의(糞掃衣) 값은 백천만금이고, 전륜왕 상투 속의 보배는 반푼어치도 못된다."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0.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어제는 죽을 지나치게 늦게 먹더니 오늘은 또 죽을 너무 일찍 먹는구나. 이는 주지하는 사람의 위엄스러운 명령이 근엄하질 못해서이냐, 아니면 일 보는 사람[執事人]의 몸과 마음이 게으르기 때문이냐? 대중들은 한번 판단해 보라. 법도가 혼란해지고 나면 모든 일이 들쑥날쑥하며 한 사람이 일을 실수 하면 여러 사람이 불안해진다. 절 내외의 1,2백 사람들은 곡좌(曲坐)가 이미 그 지

위에 있으니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낱낱이 가까이 목전에서부터 반조하고 되돌아보아야만 하며 일을 경솔히 하고 대중을 업신여겨서는 안된다. 이처럼 할 수만 있다면 낱낱이 원각(圓覺)이며 걸음마다 도량이다. 어찌 밖에서 천착하여 긁어 부스럼을 만들랴."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1.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달마는 서쪽에서 십만 리를 찾아와 소림에서 팔구년을 면벽했는데 오직 신광(神光:이조 혜가)이 이 뜻을 알고 묵묵히 3배(三拜)하여 헛되게 전하지 않았다. 후대의 아손은 정각(正覺)을 잃고 근본을 버리고 지말을 좇으며 삿된 말을 숭상하여 죽는 날에 이르러선 빚진 원수같은 몸으로 황천에 들어가는구나."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2.

  상당하여 불자로 선상을 한 번 치고는 말씀하셨다.

  "눈이 있으면 모두 보고 귀가 있으면 다 들었을 것이다. 이미 보고 들었으니 말해 보라. 무엇을 들었는지를. 만학이든 초학이든 분명하고 분명하게 설파해야만 한다. 우리 부처님께선 마갈타국에서 이 법령을 직접 시행하였고, 28조사는 차례차례 전수하였다.

그 뒤 석두(石頭)와 마조(馬祖)스님에 이르러선 망아지 한 마리가 천하 사람들을 밟아 죽인 격이고, 임제와 덕산의 몽둥이와 할은 우뢰와 번개처럼 빨랐다. 뒤의 법손은 변변치 못하여 그 법령을 내세우긴 했으나 시행하진 못하고 화려한 언구만 드러냈을 뿐이다.

  내가 세간에 태어난 시대는 말세운에 해당하여 다 망가져가는 법고(法鼓)를 치고 떨어져 버린 현묘한 강령을 정돈하였다. 여러분은 중간에 여러 해를 매어둔 채 보내지 말라. 4대해(四大海)의 물이 여러분의 머리 위에 있음을 알아야만 하리라."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3.

  한 스님이 건봉(乾峰)스님에게 물었다.

  "시방 제불의 한 길 열반문이라 하였는데 그리로 가는 길목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건봉스님은 주장자로 가르키면서 말하였다.

  "여기에 있다."

  그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자세한 설명을 청하였더니 운문스님은 부채를 잡아 일으키면서 말하였다.

  "부채가 껑충 뛰어 33천에 올라 제석(帝釋)의 콧구멍에 부딪치고 동해의 잉어가 한 방망이를 치니 비가 동이물을 붓듯 쏟아지는구나. 알겠느냐, 알겠어?"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건봉스님이 한 번 지적한 일은 초학자[初機]를 위한 자상한 방편이며 운문스님에 와서야 변화에 통하여 후인들이 게으르지 않게끔 하였다. 여러분은 두 분 스님의 뜻을 깊이 캘지언정 두 분의 말씀을 좇진 말라. 뜻을 얻으면 바른 길로 되돌아와 집으로 돌아가려니와, 말을 찾는다면 삿된 길로 미끄러져 더욱 멀어지리라."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4.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망정(妄情)이 다하여 진상(眞常)이 그대로 드러나고 허망한 인연 여의기만 하면 바로 여여한 부처라 하였다.

  이는 옛사람이 먹다  남긴 국이고 쉰 밥이긴 하나 상당한 사람들이 먹질 못하고 있다. 내가 이 말을 들먹였으니 손해가 적지를 않구나. 점검해낼 사람이 있다면 바로 부처의 병과 조사의 병을 알리라. 만일 점검해내지 못한다면 섬부(陝府)의 무쇠소*가 천지를 삼키리라."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섬부의 무쇠소(陝府鐵牛):섬부는 지금의 하남성(河南省)자리. 여기에는 철제로 만든 큰소가 있다는데 움직이지 않는 것의 상징으로 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