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문경훈(緇門警訓)

遺 誡 / 고산원법사시학도 孤山圓法師示學徒

通達無我法者 2008. 3. 17. 14:53
 

 

 

遺 誡

 

고산원법사시학도 孤山圓法師示學徒[1]

 

於戱! 大法下衰, 去聖逾遠, 披緇雖衆, 謀道尤稀. 競聲利[2]爲己能, 示流通[3]爲兒戱, 遂使法門罕闢, 敎網將頹. 實賴後昆, 克荷斯道, 汝曹虛心聽法, 潔己依師, 近期於立身揚名, 遠冀於革凡成聖. 發揮像法, 捨子而誰? 故須修身踐言,[4] 愼終如始. 勤爾學問, 謹爾行藏,[5] 避惡友如避虎狼, 事良朋如事父母. 奉師盡禮, 爲法忘軀, 有善無自矜, 起過務速改. 守仁義而確乎不拔, 處貧賤則樂以忘憂, 自然與禍斯違‧與福斯會, 豈假相形問命, 諂求榮達之期, 擇日選時, 苟免否屯之運.[6] 此豈沙門之遠識, 實唯俗子之妄情. 宜乎見賢思齊, 當仁不讓, 慕雪山之求法, 學善財之尋師.[7] 名利不足動於懷, 死生不足憂其慮. 倘功成而事遂, 必自邇而陟遐,[8] 不沽名而名自揚, 不召衆而衆自至. 智足以照惑, 慈足以攝人. 窮則獨善其身, 達則兼善天下,[9] 使眞風息而再振, 慧炬滅而復明, 可謂大丈夫焉, 可謂如來使矣. 豈得身捿講肆,[10] 跡混常徒, 在穢惡則無所間然, 於行解則不見可畏,[11] 以至積習成性, 自滅其身! 始敎慕彼上賢, 終見淪於下惡, 如斯之輩, 誠可悲哉!《詩》云: 「靡不有初, 鮮克有終.」[12] 斯之謂矣, 中人以上, 可不誡歟![13] 抑又戒慧分宗,[14] 大小異學, 悉自佛心而派出, 意存法界以同歸.[15] 旣而未曉大猷, 於是各權所據,[16] 習經論則以戒學爲棄物,[17] 宗律部則以經論爲憑虛,[18] 習大法者則滅沒小乘, 聽小乘者則輕毁大法, 但見人師偏讚, 遂執之而互相是非, 豈知佛意常融. 苟達之而不見彼此, 應當互相成濟, 共熟機緣. 其猶萬派朝宗, 無非到海,[19] 百官蒞事, 咸曰勤王.[20] 未見護一派而擬塞衆流, 守一官而欲廢庶績. 原夫法王之垂化也, 統攝群品, 各有司存, 小律比禮刑之權,[21] 大乘類鈞衡之任,[22] 營福如司於漕輓,[23] 製撰若掌於王言.[24] 在國家之百吏咸修, 類我敎之群宗競演, 果明此旨, 豈執異端. 當須量己才能,[25] 隨力演布, 性敏則兼學爲善, 識淺則顓[26]門是宜. 若然者, 雖各播風猷[27]而共成慈濟, 同歸和合之海, 共坐解脫之床,[28] 夫如是則眞迷途之指南,[29] 敎門之木鐸也.[30] 居乎師位, 諒無慙德, 趣乎佛果, 決定不疑. 汝無矜伐小小見知,[31] 樹立大大我慢, 輕侮先覺, 熒惑後生. 雖云聽尋, 未補過咎,[32] 言或有中, 汝曹思之.

오호라! 큰 법은 점차 쇠퇴하고 가신 성인과는 더욱 멀어지니 승복을 걸친 이는 비록 많으나 도를 도모하는 자는 더욱 드물다. 명성과 이익을 다투는 것을 자기의 능사로 삼고 바른 법이 흐르고 소통되는 것을 드러내 보이는 것은 아이들의 유희로 여기니 마침내 불법의 문이 드물게 열리게 함으로써 가르침의 규범이 곧 무너지려 한다. 진실로 뒤를 잇는 이에게 의뢰하려면 능히 이 도를 짊어져야 할 것이니, 너희들은 마음을 비우고 법을 들으며 몸을 깨끗이하여 스승에게 의지함으로써 가까이로는 몸을 세워 이름을 드날릴 것을 기약하고 멀리로는 범부의 품성을 개혁하여 성인의 품성을 이루기를 바래야 할 것이다. 상법像法을 꽃피워 드날리고자 함에 그대가 아니면 그 누구이겠는가? 그러므로 모름지기 몸을 닦고 말을 실천함에 끝까지 삼가기를 마치 처음과 같이 하라.

배우고 묻기를 부지런히 하며 나아가고 물러서는 일에 삼갈 것이니, 못된 벗 피하기를 마치 호랑이 피하듯 해야 하고 어진 벗 섬기기를 마치 부모 섬기듯 해야 한다. 스승을 받듦에 예를 다하고 법을 위해서는 몸을 잊으며, 선행이 있으면 스스로 자랑함이 없어야 하고 잘못을 저질렀으면 속히 고칠 것을 힘써야 한다. 인의仁義를 지킴에 확연히 흔들리지 않고 빈천貧賤에 거처하되 즐거움으로써 근심을 잊으면 자연히 재난과는 떨어지고 복록과는 모이게 될 것이니, 어찌 관상을 보고 운명을 물음으로써 영달의 시기를 아첨하여 구할 것이며 날을 선택하고 때를 가림으로써 막히고 어려운 운세를 구차하게 면하기를 빌겠는가. 이것이 어찌 사문의 원대한 식견이리요, 실로 오직 속인의 망령된 뜻일 뿐이다. 마땅히 현인을 보면 그와 가지런해 질 것을 생각하고 어진 일을 당면해서는 양보하지 말아야 하며, 설산의 구법求法을 사모하고 선재善財가 스승을 찾던 일을 배우라.

명예와 이익은 가슴을 움직이기에 부족하며 삶과 죽음은 족히 근심할 바가 아니다. 만약 공이 이루어지고 일이 성취되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으로부터 먼 곳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니, 이름을 팔지 않아도 이름은 스스로 드날려질 것이며 대중을 불러들이지 않아도 대중이 스스로 올 것이다. 지혜가 풍족함으로써 의혹을 비출 수 있고 자비가 풍족함으로써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다. 궁핍하면 곧 홀로 그 자신만을 착하게 하고 통달하면 곧 천하까지 겸해서 착하게 하여 잠잠하던 참된 교화의 바람을 다시 떨쳐 일어나게 하고 꺼졌던 지혜의 횃불을 다시 밝게 밝힌다면 가히 대장부라 일컬을 것이며 가히 여래의 사자라 일컬을 것이다. 어찌하여 몸은 강의하는 자리에 깃들어 있되 자취는 범상한 무리와 뒤섞여 있으며, 더럽고 추악한 곳에 있으나 조금도 그렇게 여기는 바가 없으며, 수행과 견해에 있어서도 가히 두려워할 만한 것을 볼 수 없으며, 나아가 그러한 습성을 쌓아 성품을 이루기에 이름으로써 그 몸을 스스로 멸하게 할 것인가! 처음에는 저 위의 현인들을 사모하다가 결국에는 아래로 추악함에 빠짐을 보이니 이와 같은 무리는 진실로 슬플 뿐이로다.《시경》에 이르기를 「‘처음’은 있지 아니함이 없으나 능히 ‘마침’이 있는 것은 드물다」 하였으니 이를 두고 말한 것이니, 중간 근기의 사람 이상은 가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계戒와 혜慧가 종파를 나누고 대승과 소승이 배움을 달리하나 모두 부처님의 마음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것이니 뜻을 법계法界에 두고 모두 함께 돌아가야 한다. 아직까지 큰 법을 깨닫지 못하였으나 그럼에도 각기 근거하는 바를 고집하여, 경론을 익히면 곧 계학戒學을 쓰레기로 취급하고 율부律部를 으뜸으로 삼으면 곧 경론을 헛된 곳에 기대는 것으로 여기며, 대승을 익히는 자는 곧 소승을 멸시하고 소승을 듣는 자는 곧 대승을 업신여기며, 단지 사람들의 스승이 될 만한 이의 치우친 찬사만 보고 마침내 그것에 집착하여 서로 옳고 그르다 하고 있으니 어찌 부처님의 뜻은 항상 원융무애함을 알겠는가. 진실로 그것을 통달하여 이것과 저것을 함께 보지 못한다면 응당 서로를 구제해 줌으로써 함께 [불법을 올바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근기와 인연을 성숙시켜 가야 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1만 줄기의 물줄기가 머리를 조아림에 바다에 이르지 않는 것이 없으며 문무백관이 일에 임함에 모두들 왕을 위해 힘 쓸 것이라 일컫는 것과 같다. 한 가닥 물줄기를 보호하고자 여러 물줄기를 막으려 한다거나 하나의 벼슬을 지키고자 수많은 벼슬을 폐지하려 한다는 것은 보지 못했다. 본디 무릇 법왕이 교화를 드리움에 여러 종류의 중생들을 통괄하여 끌어안고자 각각에 소임所任을 두었으니, 소승의 율律은 예부와 형부의 권위에 비견되고 대승大乘은 재상의 임무와 비슷하며 복을 짓는 일(營福)은 배나 수레를 조종하는 것과 같고 서적을 찬술하는 일(製撰)은 마치 왕의 말을 관장하는 것과도 같다. 나라에서 모든 벼슬아치가 함께 자신의 직분을 닦는 것은 우리 불교의 여러 종파들이 다투어 포교하는 것과 유사하니 과연 이 취지를 밝히면 어찌 이단異端임을 고집하겠는가. 응당 모름지기 자기의 재능을 가늠하고 능력에 따라 포교할 것이니, 성품이 민첩하면 곧 겸하여 배우는 것이 최선일 것이고 지식이 얕다면 곧 오로지 하나의 부문만 하여도 마땅할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비록 각각 교화와 법도를 전파하더라도 함께 자비로운 구제를 이루어서 같이 화합의 바다로 돌아갈 것이며 함께 해탈의 자리에 앉을 것이니, 무릇 이와 같다면 곧 참으로 미로의 나침판이며 교문敎門의 목탁일 것이다.

스승의 지위에 자리하여 참으로 부끄러운 행위가 없으면 불과佛果에 나아가는데 결정코 의심스럽지 않으리니, 너희는 작디작은 견해와 지식을 자랑하거나 크디크게 나의 거만을 세워서 선각자들을 업신여기거나 뒤에 오는 사람들을 현혹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비록 말하기를 [옛 말을] 듣고 [옛 글을] 찾아보는 것이 허물을 보완하지 못한다 하지만 말 가운데 혹시라도 맞는 것이 있다면 너희들은 그것을 생각하라.

【1】智圓法師, 字無外, 錢塘.徐氏子. 居杭州.孤山寺, 學者歸之如市. 自號中庸子.

【2】取名曰聲, 厚己曰利.

【3】不壞正法曰流, 無所壅滯曰通.

【4】《記》曰: 「修身踐言, 謂之善行.」 註: 修治其身, 踐行其言, 是爲善行也.

【5】《語》曰: 「用之則行, 捨之則藏.」

【6】否, 閉塞也, 天地不交而萬物不通也. 以一人言之, 則陰陽不合, 氣血不通, 表裡失度也, 物不可以終通也. 屯, 難也, 剛柔始交而難生, 萬物始生, 屈而未申之象也.

【7】佛, 昔爲雪山童子, 求法而行, 天帝化爲羅刹, 說半偈, 又欲畢聞下半, 忘身而求. 見《涅槃經》. 善財童子, 初從文殊發心, 遂南行百城, 參五十三善知識. 見《華嚴經》.

【8】《書》云: 「若升高, 必自下; 陟遐, 必自邇.」 註云: 行遠必自邇, 登高必自卑, 進德修業, 得如此也.

【9】獨善不失其身, 兼善不失其望.

【10】講道之所, 衆集如市肆, 故云講肆.《肇論》云: 「學處, 陳列書史如市中陳列貨物也.」 後漢.張楷, 字公超, 學徒隨之, 所居如市, 故今講學處, 稱肆焉.

【11】若有正解高行則人皆畏而敬之, 言無一可畏之解行也.

【12】《詩》<大雅>蕩之篇. 靡, 無也; 鮮, 小也; 克, 能也. 有始無終, 乃人之常情也.

【13】上善不待敎, 中人聞語而改, 下愚聞不遷. 故, 指中人, 一以誡之也.

【14】律詮於戒, 論詮於慧, 律論分其宗.

【15】《華嚴》云: 「無不從此法界流, 無不還歸此法界.」 是同歸法界也.

【16】權, 執也.

【17】律制: 比丘, 五夏以前專精律部, 然後學經論. 今但習經論者, 以律學爲棄物也.

【18】比丘戒爲行本, 不能由之而但尙經論之學故, 謂爲憑虛.

【19】《傳》曰: 「江‧漢朝宗于海.」 謂江‧漢之勢, 奔趨於海, 若諸候之朝宗於王也. 春見曰朝, 夏見曰宗, 言諸宗融會於心海也.

【20】勤王, 如《詩》云「鞅掌王事, 王事靡盬」之類是也. 鞅掌, 失容也, 言王事煩勞, 不假爲儀容也. 盬音固, 不堅也, 言王事不可不堅固也.

【21】如禮部‧刑部, 所執之權柄也.

【22】鈞, 陶鈞也. 陶家謂轉者爲鈞, 盖取周回均調之義. 言宰相法天而統百官馭萬民, 亦猶陶人轉鈞也. 衡, 阿衡, 號伊尹曰阿衡. 阿倚也, 衡平也, 言依倚而取平也.

【23】舟運曰漕, 車運曰輓.

【24】如左史知製誥典翰之類, 掌記王言也.

【25】能, 獸名, 形色似熊, 其足似鹿, 爲物堅中而力强故, 人之有賢才者, 皆爲之能也.

【26】專同.

【27】猷道也, 風聲也, 王者聲敎, 亦謂之風敎. 又化也, 萬物以風動‧以風化, 今言風猷者, 謂化道聲敎也.

【28】出纏名解, 離障名脫.

【29】周時越裳入貢, 迷其去路, 周公作指南車, 載之而歸.

【30】木鐸者, 金口木舌, 施政敎時, 所振以警衆者. 若金鐸則金口金舌. 春用木, 秋用金, 文用木, 武用金, 時與事之不同也. 或木鐸所以循于道路, 言天使夫子失位, 周流四方, 以行其敎, 如木鐸之循于道路也.

【31】伐者如伐木之伐, 凡人矜誇其能, 乃所以自伐其身. 故謂矜爲伐也.

【32】古云: 聽經尋論, 未補道, 未除過.

【1】지원법사는 자가 무외이며 전당 서씨의 아들이다. 항주의 고산사에 거처하니 학자들이 그에게 귀의하여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스스로 중용자라 불렀다.

【2】명예를 취하는 것을 聲이라 하고, 자기를 두텁게 하는 것을 利라 한다.

【3】바른 법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을 流라 하고, 막히거나 엉기는 곳이 없게 하는 것을 通이라 한다.

【4】《기》에 이르기를 「몸을 닦고 말을 실천하는 것을 일컬어 善行이라 한다」 하고는 주석에, 그 몸을 닦아 다스리고 그 말을 실천하여 행하면 그것이 선행이 된다고 하였다.

【5】《어》에 말하였다. 「사용하면 곧 行이요, 버리면 곧 藏이다.」

【6】否는 맥혀있음이니 하늘과 땅이 교류하지 못하고 만물이 통하지 못함이다. 한 사람의 예를 들어 말한다면 곧 음양이 화합되지 않고 기혈이 통하지 않으니 겉과 속이 그 법도를 잃고 사물은 궁극적인 곳까지 통할 수가 없다. 屯은 어려움으로서 굳센 것과 부드러운 것이 처음 교차하며 어렵게 생겨나는 것이니, 만물이 처음 생겨나며 굽어진 채 아직 펴지지 않은 모습이다.

【7】부처님이 예전에 설산의 동자로서 법을 구하며 다닐 때 천제가 나찰로 변화하여 게송의 절반을 얘기하자 또 그 절반을 마저 듣고자 하여 몸을 염두에 두지 않고 법을 구했다.《화엄경》에 보인다.

【8】《서》에 이르기를 「만약 높이 오르려면 반드시 아래로부터 시작해야 하며, 먼 곳을 오르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고는 주석에, 멀리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으로부터 시작하고 높이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곳으로부터 시작하니 덕에 힘쓰고 업을 닦음도 이와 같아야 할 것이라 하였다.

【9】홀로 선하면 그 몸을 잃지 않음이요, 함께 선하면 그 희망을 잃지 않음이다.

【10】불도를 강의하는 곳에 대중이 모여든 것이 마치 저자거리 같은 까닭에 講肆라 했다.《조론》에 이르기를 「배움의 장소에는 뭇 서적을 진열해 놓은 것이 마치 저자거리에 물건을 진열해 놓은 것과 같다」 하였다. 후한 때의 장해는 자가 공초인데 배우고자 하는 무리들이 그를 따르며 거처하는 곳이 마치 저자거리 같았던 까닭에 지금에 학문을 강의하는 장소를 肆라 일컫는다.

【11】만약 바른 견해와 높은 수행이 있으면 곧 사람들이 모두 그를 두려워하고 공경할 것이니, 어느 한 가지도 두려워할 만한 견해나 수행이 없음을 말한다.

【12】《시경》의 <대아> 탕지편이다. 靡는 없다는 것이요, 鮮은 작다는 것이요, 克은 능히 행하다는 것이다. 시작은 있으나 끝이 없는 것은 곧 人之常情이다.

【13】상근기는 착하여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으며, 중근기는 인간다워 말을 듣고는 고치며, 하근기는 어리석어 듣더라도 실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중근기의 사람을 지적하여 한결 같이 경계하게 한 것이다.

【14】律은 戒에 대해 설명하고 論은 慧에 대해 설명하니 律과 論이 그 종파를 나누었다.

【15】《화엄》에 이르기를 「이 법계로부터 흘러나오지 않은 것이 없기에 이 법계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 없다」 하니 곧 함께 법계로 돌아감이다.

【16】權은 집착함이다.

【17】律에 제정되어 있기를, 비구는 여름 다섯 철 이전에는 오로지 律部를 정미롭게 한 연후에 經論을 배우라 하였다. 지금에 단지 경론 만을 배우는 자들은 律學을 쓰레기로 여긴다.

【18】비구는 계를 수행의 근본으로 여겨야 하거늘 능히 이렇게 하지 못하고 단지 경론 만을 숭상하여 배우는 까닭에 ‘헛된 것에 기대는 것으로 여긴다’고 일컬은 것이다.

【19】《전》에 이르기를 「江水와 漢水가 바다에 머리를 조아리며 모여든다」 하였으니 강수와 한수의 형세가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마치 제후들이 왕에게 복종하는 것과 같음을 말한다. 봄에 임금을 알현하는 것을 朝라 하고 여름에 알현하는 것을 宗이라 하니, 모든 종파가 융합하여 마음의 바다에 모이는 것을 말한다.

【20】勤王이란《시경》에서 말한 「제왕의 일로 바쁘게 힘쓰다, 제왕의 일은 견고하고도 치밀하다」라고 한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鞅掌은 바른 몸가짐을 잃는 것인데, 왕의 일로 번거롭고 수고로워 의례와 위용을 꾸미지 않음을 말한다. 盬의 음은 고(固)이며 견고하지 않음이니 왕의 일은 불가불 견고해야 됨을 말한다.

【21】예부나 형부가 권력의 핵심을 쥐고 있는 것과 같다.

【22】鈞은 도공의 녹로이다. 도공들은 [그릇을 만드는 도구 가운데] 회전시키는 것을 일컬어 鈞이라 하니, 아마도 일정하게 회전하며 균등하게 조절한다는 의미를 취한 것일 것이다. 재상이 하늘을 본받아 백관을 통치하고 만백성을 부리는 것 역시 도공들이 鈞을 회전시키는 것과 같음을 말한다. 衡은 아형(은나라 이윤이 한 벼슬로 지금의 국무총리 같음)인데, 이윤을 호칭하여 아형이라 하였다. 阿는 의뢰함이요 衡은 평평하게 함이니, 의지하고 기대어 공평을 취함을 말한다.

【23】배를 운행함을 漕라 하고 수레를 운행함을 輓이라 한다.

【24】좌사 지제고 전한 등과 같은 종류로서 왕이 하는 말을 관장하여 기록한다.

【25】能은 짐승 이름으로 형색은 곰과 흡사하고 그 다리는 사슴과 흡사한데, 그 종류됨이 굳세고도 힘이 있는 까닭에 사람으로서 현명하고 재주가 있는 자를 모두 ‘能하다’고 한다.

【26】專과 같다.

【27】猷는 법도(道)이며 風은 소리(聲)이다. 왕의 聲敎는 또한 그것을 일컬어 風敎라 한다. 또한 敎化이니 만물은 바람으로써 움직이고 바람으로써 변화되는 것이며, 지금에 風猷라 말한 것은 교화의 법도에서 聲敎를 일컬은 것이다.

【28】얽힌 것으로부터 빠져 나온 것을 解라 이름하고 장애를 벗어난 것을 脫이라 이름한다.

【29】주나라 때 월상이 들어와 공물을 바치고는 돌아가는 길을 잃어 버렸기에 주공이 지남거를 만들어 그것을 싣고 돌아가게 하였다.

【30】목탁은 쇠로 된 입에 나무로 된 혀가 있는 것이니, 나라의 일이나 종교의 가르침을 베풀 때 흔들어서 대중들을 경계시키는 것이다. 만약 金鐸이면 곧 쇠로 된 입에 쇠로 된 혀이다. 봄에는 나무를 사용하고 가을에는 쇠를 사용하며 문신들은 나무를 사용하고 무관들은 쇠를 사용하는 등, 시기와 더불어 일삼는 것이 같지 않다. 혹은 목탁은 길로 돌아다니는 까닭에, 하늘이 공자로 하여금 벼슬의 지위를 잃게 하고 사방을 두루 다니게 함으로써 그 가르침을 행하게 하는 것이 마치 목탁이 도로를 돌아다니는 것과 같음을 말한다.

【31】伐이란 나무를 베다(伐) 할 때의 伐과 같은데, 무릇 사람이 자기의 능력을 긍지를 가지고 자랑하는 것은 곧 스스로 그 몸을 베는 것이다. 그러므로 긍지를 가지고 자랑함은 베는 것이 된다고 말하였다.

【32】옛 사람이 이르기를, 경전을 듣거나 논장을 탐구하는 것은 도를 이룸을 돕는 것도 아니요 허물을 제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