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문경훈(緇門警訓)

주경사대중흥사도안법사유계구장 周京師大中興寺道安法師遺誡九章

通達無我法者 2008. 3. 17. 14:57
 

 

 

주경사대중흥사도안법사유계구장 周京師大中興寺道安法師遺誡九章

 

周京師[1]大中興寺.道安法師遺誡九章以訓門人, 其詞曰:[2] 敬謝諸弟子等.[3] 夫出家爲道至重至難, 不可自輕, 不可自易. 所謂重者, 荷道佩德, 縈仁負義, 奉持淨戒, 死而有已; 所謂難者, 絶世離俗, 永割親愛, 廻情易性, 不同於衆. 行人所不能行, 割人所不能割, 忍苦受辱, 捐棄軀命, 謂之難者, 名曰道人. 道人者, 導人也, 行必可履, 言必可法, 被服出家, 動爲法則, 不貪不諍, 不讒不慝, 學問高遠, 志在玄黙, 是爲名稱.[4] 參位三尊,[5] 出賢入聖, 滌除精魂.[6] 故得君主不望其報, 父母不望其力, 普天之人莫不歸攝, 捐妻減養, 供奉衣食, 屈身俯仰, 不辭勞恨者, 以其志行淸潔, 通於神明, 惔泊[7]虛白,[8] 可奇可貴. 自獲荒流, 道法遂替, 新學之人, 未體法則, 着邪棄正, 忘其眞實, 以小黠爲智, 以小恭爲足, 飽食終日, 無所用心, 退自推觀, 良亦可悲. 計今出家, 或有年歲, 經業未通, 文字不決, 徒喪一世, 無所成名. 如此之事, 可不深思? 無常之限, 非旦卽夕, 三塗[9]苦痛, 無强無弱. 師徒義深, 故以伸示, 有情之流, 可爲永誡.

주나라 수도의 대중흥사 도안법사가 경계의 글 아홉 문장을 지어 문중의 사람들을 훈계하였으니 그 글에서 말하였다.

삼가 여러 제자들에게 말을 남기노라. 무릇 출가하여 도를 이루는 것은 지극히 소중하고도 지극히 어려우니 스스로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하며 스스로 쉽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소중하다 일컫는 것은 도를 울러매고 덕을 지니며 인을 두르고 의를 짊어져서 청정한 계를 받들어 지킴에 있어서 죽어서야 그만 둘 수 있기 때문이며, 어렵다 일컫는 것은 세상과 단절하고 속세를 떠나 어버이의 사랑을 영원히 베어내며 정을 돌이키고 습성을 바꾸어 뭇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능히 행하지 못하는 것을 행하고 사람들이 능히 베어내지 못하는 것을 베어내며 괴로움을 참고 욕됨을 받아들이며 몸뚱이와 생명을 버리니 이를 일컬어 어렵다는 것이며, [이 같은 사람을] 이름하여 도인道人이라 말한다. 도인이란 사람을 인도하는 것을 말하니 그 행위는 반드시 붙좇을 만 해야 하고 그 언행은 반드시 본받을 만 해야 하며, 승복을 입고 출가함에 움직이면 곧 법칙이 되어야 하며, 탐내지도 않고 다투지도 않고 헐뜯지도 않고 간사하지도 않아야 하며, 학문은 고매하고 뜻은 그윽이 침묵하는 곳에 두어야 하니 이것이 명성과 칭찬이 된다. [이러한 분은] 삼존三尊의 지위에 오르며 현인의 단계를 나와서 성인의 단계로 들어감에 정기와 혼백을 씻어버렸다. 그러므로 군주는 그 보답을 바라지 않고 부모는 힘을 바라지 않으며 온 천하의 사람들이 그에게 돌아가 포섭되지 아니함이 없으니, 아내의 것을 덜고 [부모를] 봉양할 몫을 줄여서 옷과 음식을 공양하고 몸을 굽혀 우러러 받들며 힘든 노역을 사양하지 않음을 얻게 되는 것은 그 뜻과 행위가 청결하고도 신명神明과 통해 있으며 담박惔泊하고도 허백虛白하기에 기이하고도 귀하게 여길 만 하기 때문이다.

황당하고 유락流落한 경계를 얻음으로부터 도법이 마침내 쇠퇴하니 새로 배우는 사람은 법칙을 미처 체득하지도 못한 채 사악함에 집착하여 올바름을 버리며, 그 진실은 망각한 채 조그만 꾀로써 지혜로 여기고 작은 공경으로써 만족하여 배불리 먹으며 하루해를 마치고도 마음 쓰는 바가 없음에 물러나 스스로 미루어 살펴보면 진실로 또한 슬프도다. 지금의 출가를 헤아려 보니 혹은 햇수는 지났으되 경전의 수업은 아직 통하지 못하고 문자도 판별하지 못한 채 다만 일생을 허비하여 이름을 이룬 바가 없다. 이와 같은 일을 어찌 깊이 생각하지 않겠는가. 무상한 죽음의 기한은 아침이 아니면 곧 저녁이며 삼도三塗의 고통은 강함도 없고 약함도 없다. 스승과 제자의 뜻은 깊은 까닭에 이로써 펴 보이니 유정有情의 무리들은 영원한 경계로 삼을 것이다.

其一曰: 卿已出家, 永違所生, 剃髮毁容, 法服加形. 辭親之日, 上下涕零, 割愛崇道, 意凌太淸, 當遵此志, 經道修明. 如何無心, 故存色聲? 悠悠竟日, 經業不成, 德行日損, 穢積遂盈. 師友慙恥, 凡俗所輕, 如是出家, 徒自辱名. 今故誨勵, 宜當專精.

그 첫 번째로 말한다.

그대가 이미 출가하였으니 태어난 바를 영원히 어기는 것이라, 머리를 깎아 겉모양을 헐고 법복을 몸에 걸쳤다. 어버이를 이별하던 날에는 위아래가 모두 눈물을 흘렸으니, 사랑을 베어 내고 도를 숭상함에 그 뜻은 맑디맑은 하늘을 능가하였으니 응당 이 뜻을 따라 불도를 수행하여 밝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에 무심한 까닭으로 여전히 빛과 소리에 머물러 있는가? 유유자적하며 나날을 마치니 불경을 익히는 일은 이루지 못하고 덕행이 날로 줄어듦에 더러움은 쌓여서 마침내 넘치기에 이르렀다. 스승과 벗에게는 부끄럽고도 부끄러우며 범부나 속인들이 업신여기는 바가 되니, 이와 같은 출가는 다만 그 이름을 스스로 욕되게 할뿐이다. 이제 그러므로 가르쳐 격려하나니, 마땅히 전심전력으로 정진해야 할 것이다.

其二曰: 卿已出家, 棄俗辭君, 應自誨勵, 志果靑雲. 財色不顧, 與世不群, 金玉不貴, 惟道爲珍. 約己守節, 甘苦樂貧, 進德自度, 又能度人. 如何改操, 趨走風塵, 坐不暖席, 馳騖東西? 劇如徭役, 縣官所牽, 經道不通, 戒德不全. 朋友蚩弄, 同學棄捐, 如是出家, 徒喪天年. 今故誨勵, 宜各自憐.

그 두 번째로 말한다.

그대가 이미 출가하였음에 세속을 버리고 임금을 하직하니, 응당 스스로 가르치고 격려하여 푸른 구름 이루기를 마음먹어야 할 것이다. 재물이나 여색은 돌아보지 않아서 세속과 더불어 무리 짓지 말며 금은 보석을 귀하게 여기지 말고 오직 도道를 진귀한 것으로 여기며, 자기를 검약하게 하고 절도를 지키며 괴로움을 달게 여기고 가난을 즐겨 하며 덕스러움에 나아가 스스로를 제도하고 또한 능히 다른 사람을 제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절조를 고치고 바람에 흩날리는 먼지 속을 내달리며, 앉음에 자리가 따뜻해지지도 않아서 동쪽으로 서쪽으로 질주하는가? 그 심하기가 마치 부역을 부림에 있어 관청의 관리가 소매를 끌 듯하니, 경전의 도는 통하지 못하고 계율의 덕은 온전하지 않게 된다. 벗들은 업신여겨 희롱하고 같은 학우들은 꺼려서 멀리할 것이니 이와 같은 출가는 다만 세월만 허비할 뿐이다. 이제 그러한 까닭에 가르쳐 격려하나니, 마땅히 각자는 스스로를 가련히 여겨야 한다.

其三曰: 卿已出家, 永辭宗族, 無親無疎,[10] 淸淨無欲. 吉則不歡, 凶則不慼, 超然縱容, 豁然離俗. 志存玄妙, 軌眞守樸, 得度廣濟, 普蒙福祿. 如何無心, 仍着染觸? 空諍長短, 銖兩升斛,[11] 與世爭利, 何異僮僕. 經道不明, 德行不足, 如是出家, 徒自毁辱. 今故誨示, 宜自洗浴.

그 세 번째로 말한다.

그대가 이미 출가하였음에 영원히 종족宗族과 헤어진 것이니 친함도 없고 성김도 없음에 청정하여 욕심이 없게 되었다. 행운이 있더라도 기뻐하지 않으며 재난이 닥치더라도 슬퍼하지 않으니 초연하고도 조용한 모습은 활연히 세속을 떠났음에, 뜻은 현묘한 곳에 두고서 참된 것을 따르고 질박한 것을 지키며 득도하여 널리 제도함으로써 두루 복록을 입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에 무심한 채 여전히 물들고 더러움에 집착되어 있는가. 공연히 길고 짧음을 다투며 세상의 모든 척도로써 세속과 더불어 이익을 따지니 어찌 머슴이나 종과 다를 바가 있겠는가. 경전의 도에는 밝지 못하고 덕스러운 행위는 부족하니 이와 같은 출가는 다만 스스로를 허물고 욕되게 할뿐이다. 이제 그러한 까닭에 가르쳐 보이나니, 마땅히 스스로 씻어 내어 목욕할지어다.

其四曰: 卿已出家, 號曰道人, 父母不敬, 君帝不臣. 普天同奉, 事之如神, 稽首致敬, 不計富貧. 尙其淸修, 自利利人, 減割之重, 一米七斤. 如何怠慢, 不能報恩, 倚縱遊逸, 身意虛煩? 無戒食施, 死入泰山, 燒鐵爲食, 融銅灌咽, 如斯之痛,《法句》所陳. 今故誨約, 宜改自新.[12]

그 네 번째로 말한다.

그대가 이미 출가하였음에 일컬어 도인道人이라 부르니, 부모에게는 공경을 표하지 않고 임금에게는 신하 노릇을 하지 않는다. 온 천하가 함께 받듦에 있어 섬기기를 마치 신神과 같이 하며 머리를 조아려 공경을 다함에 있어 부귀와 빈천을 헤아리지 않으니 오로지 청정한 수행을 숭상하여 스스로 이롭게 되고 또한 남도 이롭게 해야 할 것임에, 감하고 덜어 낸 은혜의 막중함은 쌀 한 톨에 일곱 근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태만함으로써 능히 은혜에 보답하지 못하고 방종하여 노니는 것에만 치우쳐 몸과 생각을 부질없이 번거롭게 하는가? 계행戒行도 없이 시주물을 먹으면 죽어서 태산지옥에 들어가 달군 쇠로 음식을 삼고 동을 녹여 목구멍에 부을 것이니, 이와 같은 고통은《법구경》에 진술된 바이다. 이제 그러한 까닭에 가르쳐 약속하나니, 마땅히 고쳐서 스스로 새롭게 되어야 할 것이다.

其五曰: 卿已出家, 號曰息心, 穢雜不着, 惟道是欽, 志參淸潔, 如玉如氷. 當修經戒, 以濟精神, 衆生蒙祐, 幷度所親. 如何無心, 隨俗浮沈, 縱其四大, 恣其五根. 道德遂淺, 世事更深, 如是出家, 與世同塵. 今故誡約, 幸自開神.

그 다섯 번째로 말한다.

그대가 이미 출가하였음에 일컬어 마음을 쉬는 사람(息心)이라 부르니, 더럽거나 잡된 것에 집착하지 말고 오로지 도道만을 흠모할 것이며 청결에 참여할 뜻을 두어서 마치 옥과 같이 하고 마치 얼음과 같이 해야 할 것이다. 응당 경의經義와 계행戒行을 닦아서 자신의 정신을 제도하면 중생들은 도움을 입을 것이고 아울러 가까운 자들도 제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에 무심한 채 세속을 따라서 뜨고 가라앉기를 거듭하며 사지四肢를 풀어놓고 오근五根을 마음대로 놓아두는가? 이에 도와 덕은 마침내 얕아지고 세상의 일만 더욱 깊어지니, 이와 같은 출가는 세속과 더불어 그 티끌을 함께 덮어 쓸 뿐이다. 이제 그러한 까닭에 경계하여 제약하나니, 바라건대 스스로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다.

其六曰: 卿已出家, 捐世形軀, 當務竭情, 泥洹合符. 如何擾動, 不樂閒居, 經道損耗, 世事有餘, 淸白不履, 反入泥途? 過影之命, 或在須臾, 地獄之痛, 難可具書. 今故戒勵, 宜崇典謨.[13]

그 여섯 번째로 말한다.

그대가 이미 출가하였음에 세속의 육체를 버린 것이니 응당 힘써 정情을 고갈시킴으로써 열반에 부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어지럽게 움직일 뿐 조용히 거처함을 즐기지 않고, 경전의 도는 덜어내 소모하되 세속의 일에는 남김이 있으며, 맑고도 밝은 것은 밟지 않고 도리어 진흙길로 들어서는가? 지나치는 그림자와 같은 목숨은 혹은 잠깐 사이에 있을 뿐이나 지옥의 고통은 글로 다 쓰기 어렵다. 이제 그러한 까닭에 경계하고 격려하나니, 마땅히 옛 어른들의 좋은 말씀을 숭상해야 할 것이다.

其七曰: 卿已出家, 不可自寬. 形雖鄙陋, 使行可觀, 衣服雖麤, 坐起令端, 飮食雖疎, 出言可餐. 夏則忍熱, 冬則忍寒, 能自守節, 不飮盜泉,[14] 不肖之供, 足不妄前, 久處私室, 如臨至尊, 學雖不多, 可齊上賢. 如是出家, 足報二親, 宗親知識,[15] 一切蒙恩. 今故誡汝, 宜各自敦.

그 일곱 번째로 말한다.

그대가 이미 출가하였음에 스스로 관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형체는 비록 비루하더라도 행위는 가히 볼만하게 해야 하며, 의복은 비록 누추하더라도 앉고 일어서기를 단정하게 해야 하며, 음식은 비록 소박하더라도 말을 할 때는 먹음직스럽게 해야 할 것이다. 여름이면 곧 더위를 참고 겨울이면 곧 추위를 참으며, 능히 스스로 절조를 지킴에 도천盜泉의 샘물은 마시지 않으며, 실답지 못한 공양에는 발길을 망령되게 앞세우지 않으며, 오랫동안 혼자 있는 방에 거처하더라도 마치 지극히 존귀한 사람 앞에 이른 듯 한다면 배움은 비록 많지 않더라도 옛 현인들과 가히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출가는 족히 양친의 은혜에 보답하고 종친과 아는 이들이 모두 은혜를 입을 것이다. 이제 그러한 까닭에 그대에게 경계하나니, 마땅히 각자는 스스로 도탑게 해야 할 것이다.

其八曰: 卿已出家, 性有昏明, 學無多少, 要在修精. 上士坐禪, 中士誦經, 下士堪能塔寺經營,[16] 豈可終日, 一無所成? 立身無聞, 可謂徒生. 今故誨汝, 宜自端情.

그 여덟 번째로 말한다.

그대가 이미 출가하였음에 품성은 어두운 이와 밝은 이가 있으나 배움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중요한 것은 수행을 정밀하게 하는 데 있다. 윗근기를 가진 선비는 좌선을 하고 중간 근기를 가진 선비는 경전을 외우며 아랫근기를 가진 선비는 탑과 절을 능히 경영할 수 있을 것이니, 그렇게 종일토록 할 수 있다면 어찌 하나도 이루어지는 것이 없겠는가? 몸을 일으켰으나 알려지는 바가 없다면 헛되이 살았다 할 것이다. 이제 그러한 까닭에 그대에게 가르치나니, 마땅히 스스로 뜻을 단정히 하라.

其九曰: 卿已出家, 永違二親, 道法革性, 俗服離身. 辭親之日, 乍悲乍欣, 邈爾絶俗, 超出埃塵, 當修經道, 制己履眞. 如何無心, 更染俗因? 經道已薄, 行無毛分, 言非可貴, 德非可珍, 師友致累, 恚恨日殷, 如是出家, 損法辱身. 思之念之, 好自將身.

그 아홉 번째로 말한다.

그대가 이미 출가하였음에 오래도록 양친을 어기는 것이니, 도법으로 성품을 개혁하고 속세의 옷을 몸에서 떨구어 내었다. 어버이를 하직하던 날 잠깐은 슬퍼하기도 하고 잠깐은 기뻐하기도 하였지만 멀리 세속을 끊어 내고 티끌에서 멀리 벗어났으니 응당 경전의 도를 수행하여 자신을 억제하고 참된 것을 뒤밟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에 무심한 채 다시 세속의 인연에 물들려고 하는가? 경전의 도는 이미 엷어지고 올바른 행은 털끝만큼도 없으며 말은 고귀한 것이 아니고 덕은 보배로운 것이 아님에 스승과 벗에게 누累가 되기에 이르러 원망만이 날로 더해지니, 이와 같은 출가는 법을 덜어내고 몸을 욕되게 할뿐이다. 이를 생각하고 이를 염두에 두어 스스로 몸을 잘 거느릴 지어다.

【1】京大也, 師衆也, 天子所居, 必以衆大言之也.

【2】晋.道安, 姓魏, 此師姓姚氏.

【3】《淨名》䟽云: 「師之謙光, 處資如弟子.」 則捨父從師, 如子事父. 又學從師後曰弟, 解從師生曰子.

【4】外聞之聲曰名, 叶於內實曰稱.

【5】位參僧寶.

【6】洗滌掃除心識也.

【7】惔泊一作澹泊也, 恬靜無爲皃.

【8】虛白,《莊子》虛室生白.

【9】三塗者,《四解脫經》以三塗對三毒: 一, 火塗瞋忿; 二, 刀塗慳貪; 三, 血塗愚癡也.

【10】愛而近之曰親, 惡而遠之曰疎, 言無愛惡之念, 平等持心也.

【11】《律歷志》云: 「權者, 所以知輕重, 本起於黃鍾. 黃鍾一龠, 容千二百黍, 重十二銖: 二十四銖爲一兩, 十六兩爲一斤, 三十斤爲一鈞, 四鈞爲一石. 量者, 龠‧合‧升‧斗‧斛也: 千二百黍爲龠, 龠十爲合, 合十爲升, 升十爲斗, 斗十爲斛.」

【12】日新又日新.

【13】「典」主記事故, 堯‧舜皆載其實; 「謨」主記言故, 禹‧皐陶則載其謨. 此言兩字通爲法則.

【14】廣州有水, 名曰盜泉, 一歃懷千金, 如西國痴水也.

【15】流派所出爲宗, 姻眷爲親, 見面爲知, 聞名爲識.

【16】《無爲經》云: 「沙門有三輩, 坐禪爲上, 誦經爲中, 助衆爲下.」《瑜伽論》云: 「無二利行者, 下士; 有自利無利他行者, 中士; 有二利行者, 名上士.」 經營者, 經謀爲也, 營量度也. 又縱橫爲經, 回旋爲營也.

【1】京은 크다는 것이요 師는 대중의 무리를 말하니, 천자가 거처하는 곳은 반드시 무리를 이룬다는 말과 크다는 말로써 일컫는다.

【2】진나라 도안법사는 성이 위씨요 이 법사의 성씨는 요씨이다.

【3】《유마경》의 소에 이르기를 「선사의 겸손한 빛은 헤아려 살펴봄이 마치 弟子와 같았다」 하였으니, 곧 부친을 버리고 스승을 따름에 마치 아들이 아버지를 섬기는 것과 같음이다. 또, 배움에 있어서는 스승의 뒤를 좇는 까닭에 弟라 하고, 그 견해는 스승을 좇아 생겨나는 까닭에 子라 한다.

【4】겉으로 들려오는 명성을 名이라 하고, 내실에 부합되는 것을 稱이라 한다.

【5】그 지위가 승보에 참여하게 됨이다.

【6】마음의 識을 세척하고 소제함이다.

【7】惔泊은 澹泊으로 되어 있기도 한데 편안하고 고요하며 굳이 행함이 없는 모습이다.

【8】虛白이란《장자》에서 말한 虛室生白(방이 비면 밝다는 뜻으로, 사람의 마음도 망상이 들어가지 않으면 도를 깨달을 수 있다는 말)이다.

【9】三塗는《사해탈경》에서 三塗로써 三毒에 대응시켰으니, 첫째로 불이 치솟는 길은 화내고 성냄이라 하였고, 둘째로 칼날이 우뚝 솟은 길은 아끼고 탐냄이라 하였고, 셋째로 피가 가득 찬 길은 어리석고 미련함이라 하였다.

【10】사랑하기에 가까이 하는 것을 親이라 하고 싫어하기에 멀리 하는 것을 疎라 하니, 좋아하고 싫어하는 생각이 없이 평등하게 마음을 유지함을 말한다.

【11】《율력지》에 말하였다. 「저울추(權)란 그것으로써 무겁고 가벼움을 알 수 있는데 본래 黃鍾에서 기원한다. 黃鍾 1약은 그 용량이 1천2백 알의 기장을 담을 수 있으며 무게는 12수이니, 24수가 1량이 되고 16량이 1근이 되며 30근이 1균이 되고 4균이 1석이 된다. 분량을 나타내는 것은 약합승두곡 등이니, 기장 1천2백 알이 1약이 되고 10약은 1합이 되고 10합은 1승이 되고 10승은 1두가 되고 10두는 1곡이 된다.」

【12】하루가 새롭고 또 하루가 새롭게 되다.

【13】典은 주로 어떤 일을 기록하는 까닭에 요임금과 순임금은 모두 그들의 실록을 기재하였고, 謨는 주로 말을 기록하는 까닭에 우임금과 고도는 곧 그들의 책략을 기재하였다. 이는 두 글자가 ‘법칙’으로 통용됨을 말한다.

【14】광주에 샘이 있어 ‘도둑놈 샘(盜泉)’이라 이름하는데 한 모금 마시면 1천금의 횡재를 꿈꾸게 되는 것으로 서쪽 나라에 있다는 ‘어리석은 물(痴水)’과도 같다.

【15】부류와 파벌이 시작되어 나온 곳이 宗이 되고, 혼인으로 맺어진 권속들이 親이 되며, 보고 마주했던 것이 知가 되고, 듣고 이름했던 것이 識이 된다.

【16】《무위경》에 이르기를 「사문은 세 무리가 있으니 좌선하는 이들을 가장 위로 치고 경전 읽는 이들을 중간으로 치며 대중을 돕는 이들을 아래로 친다」 하였으며,《유가론》에 이르기를 「둘에 모두 이익됨이 없이 행하는 자를 아래 근기의 선비라 하고, 스스로에게는 이로움이 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이로움이 없이 행하는 자를 중간 근기의 선비라 하고, 둘 모두에게 이롭게 행하는 자를 이름하여 윗 근기의 선비라 한다」 하였다. 經營의 經은 헤아려서 무엇을 하는 것이요 營은 재량하고 헤아림이다. 또한 가로와 세로로 놓인 것이 經이 되고 빙글빙글 두른 것이 營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