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b. 용대(用大)

通達無我法者 2008. 3. 24. 13:38

 

b. 용대(用大)

은정희 역주/일지사/자료입력:도규희

 

 

【논】
또한 진여의 용이란 이른바 모든 부처와 여래가 본래 인지(因地)에서 대자비를 일으켜 모든 바라밀을 닦아서 중생을 섭화하며, 크나큰 서원을 세워 일체의 중생계를 모두 도탈시키고자 하여 겁의 수를 한정하지 않고 미래에까지 다하는 것이니 모든 중생을 돌보기를 자기 몸과 같이하기 때문이며, 그러면서도 중생상을 취하지 않는다. 이는 무슨 뜻에 의해서인가? 일체 중생과 및 자기의 몸이 진여로서 평등하여 다름이 없는 것인 줄 여실히 앎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대방편지(大方便智)가 있기 때문에 무명을 제멸하고 본래의 법신을 보아서 자연히 불사의업의 여러 가지 작용을 갖는 것이니, 곧 진여와 똑같이 모든 곳에 두루하게 되며 또한 그러면서도 얻을 만한 작용의 모양도 없다. 왜 그런가? 말하자면 모든 부처와 여래는 오직 법신ㆍ지상의 신이며, 第一義제로서 세제(世諦)의 경계가 없는 것이어서 시작(施作)을 떠난 것이나, 다만 중생의 견문(見聞)에 따라 이익되게 하기 때문에 용이라 말하는 것이다.
〔復次眞如用者. 所謂諸佛如來, 本在因地, 發大慈悲, 修諸波羅密, 攝化衆生. 立大誓願, 盡欲度脫等衆生界. 亦不限劫數, 盡於未來. 以取一切衆生如己身故. 而不取衆生相. 此以何義. 謂如實知一切衆生及與己身, 眞如平等無別異故. 以有如是大方便智. 除滅無明. 見本法身, 自然而有不思議業種種之用. 卽與眞如等?一切處. 又亦無有用相可得. 何以故. 謂諸佛如來, 唯是法身智相之身. 第一義諦. 無有世諦境界. 離於施作. 但隨衆生見聞得益. 故說爲用.〕

【소】
처음 중에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과(果)에 대하여 인(因)을 든 것이요, 둘째는 인을 드러내어 과를 나타낸 것이다. 처음 인을 드는 중에 또한 세 구절이 있으니, 먼저는 행이고 다음은 원(願)이고 뒤에는 방편을 밝힌 것이다. 처음에 ‘제불이 본래 인지에 있어ㆍㆍㆍㆍㆍㆍ, 중생을 섭화한다’고 말한 것은 본행을 든 것이다. 다음에 ‘대서원을 세워서ㆍㆍㆍㆍㆍㆍ, 미래에까지 다 한다’고 말한 것은 본원을 든 것이다. 다음에 ‘중생을 돌보기를ㆍㆍㆍㆍㆍㆍ, 진여로서 평등하다’고 한 것은 지(智)ㆍ비(悲)의 대방편을 든 것이다. ‘이러한 대방편지가 있기 때문에’이하는 두 번째로 과를 나타낸 것이니, 이 중에 또한 세 가지가 있다. 처음에 ‘이러한 대방편지가 있기 때문’이라 말한 것은 전인을 드러낸 것이며, 다음에 ‘무명을 제멸하여 본래의 법신을 본다’고 말한 것은 자리(自利)의 과이다. ‘자연히ㆍㆍㆍㆍㆍㆍ’이하는 바로 작용의 모양을 나타내는 것이니, 이 중에 세 구절이 있다. 처음에 ‘불사의업의 여러 가지가 작용’이라 한 것은 용의 매우 깊음을 밝힌 것이며, 다음에 ‘곧 진여와 더불어 똑같이 모든 곳에 두루한다’고 말한 것은 용의 광대함을 나타낸 것이다. ‘또한ㆍㆍㆍㆍㆍㆍ’이하는 용에 상이 없는 것이지만 연을 따라 작용함을 밝힌 것이니, 이는 《섭대승론》에서 “비유하면 마니와 보배와 천고가 생각하지 않아도 자기 일을 이루는 것과 같다”고 말한 것과 같으니, 이를 말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용을 밝히는 일을 마치다.
〔初中有二. 一者大果擧因. 二牒因顯果. 初擧因中亦有三句. 先行. 次顯. 後明方便. 初言諸佛本在因地乃至攝化衆生者, 擧本行也. 次言立大誓願乃至盡於未來者, 擧本願也. 次言以取衆生乃至眞如平等者, 是擧智悲大方便也. 以有以下, 第二顯果. 於中亦三. 初言以有如是大方便智者, 牒前因也. 次言除滅無明見本法身者, 自利果也. 自然以下, 正顯用相. 此中三句. 初言不思議業種種之用者, 明用甚深也. 次言則與眞如等?一切處者, 顯用廣大也. 又亦以下, 明用無相而隨緣用. 如攝論言譬如摩尼天鼓無思成自事, 此之謂也. 總明用竟.〕

【논】
이 용(用)에 두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분별사식에 의한 것으로 범부와 이승의 마음으로 보는 것을 응신(應身)이라 이름하니, 이는 전식의 나타냄인 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밖에서 온 것이라 보고 색의 분제(色分齊)를 취하여 다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업식에 의한 것이니, 이는 모든 보살이 초발의(初發意)로부터 보살구경지에 이르기까지 마음으로 본 것을 보신(報身)이라 함을 이르는 것이다. 그 몸에 무량한 색(色)이 있고 색에 무량한 상이 있고 상에 무량한 호(好)가 있으며, 머무는 의과(依果)도 무량한 여러 가지 장엄이 있어서 곳에 따라 나타냄이 곧 가이없고 궁진(窮盡)할 수 없어 분제상(分齊相)을 여의었지만 그 응하는 바에 따라서 항상 머물러 있어서 훼손되지도 않고 잃지도 않는다. 이러한 공덕은 모두 모든 바라밀 등 무루의 행훈(行熏) 및 불사의훈에 의하여 성취된 것이니, 비어한 한량없는 낙상(樂相)을 구족하였기 때문에 보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 범부에게 보여지는 것은 그 추색(?色)이니, 육도(六道)에 따라서 각각 보는 것이 같지 아니하여 여러 가지 이류이며, 낙상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응신(應身)이라 말한다. 다음, 초발의보살 등이 보는 것은 진여법을 깊이 믿기 때문에 적은 부분으로나마 보신(報身)을 보아서 저 보신의 색상(色相)과 장엄(莊嚴) 등의 일이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어 분제를 떠났으며 오직 마음에 의하여 나타날 뿐 진여를 떠나지 않은 것임을 아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보살은 아직 스스로를 분별하고 있으니, 이는 아직 법신의 자리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정심(淨心)을 얻으면 보는 바가 미묘하여 그 작용이 점점 수승하며 이러하여 보살지진에 이르러 보신을 보는 일이 구경(究竟)하게 되거니와, 만약 업식을 여의면 보는 상(見相)이 없어지는 것이니, 모든 부처의 법신(法身)은 피차의 색상을 서로 보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묻기를, “만약 모든 부처의 법신이 색상(色相)을 여의었다면 어떻게 색상을 나타낼 수 있겠는가?” 답하기를, ‘곧 이 법신은 색의 체(體)이기 때문에 색(色)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본래부터 색(色)과 심(心)은 둘이 아닌 것이니, 왜냐하면 색의 본성은 곧 지(智) 인 까닭에 색의 체에 형체가 없는 것을 지신(智身)이라 하며, 지성(智性)은 곧 색인 까닭에 법신이 모든 곳에 두루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타낸 색이 분제가 없으니 중생의 마음을 따라 시방세계에 무량한 보살과 무량한 보신과 무량한 장엄을 나타냄에 각각 차별이 되지만 모두 분제가 없어서 서로 방해되지 아니한다. 이는 심식의 분별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진여의 자재한 용의 뜻이기 때문이다.
〔此用有二種. 云何爲二. 一者依分別事識. 凡夫二乘心所見者, 名爲應身. 以不知轉識現故, 見從外來, 取色分齊, 不能盡知故. 二者依於業識. 謂諸菩薩從初發意乃至菩薩究竟地心所見者, 名爲報身. 身有無量色. 色有無量相. 相有無量好. 所住依果亦有無量種種莊嚴, 隨所示現, 卽無有邊, 不可窮盡, 離分齊相. 隨其所應, 常能住持, 不毁不失. 如是功德, 皆因諸波羅蜜等無漏行熏, 不思議熏之所成就, 具足無量樂相, 故說爲報身. 又爲凡夫所見者, 是其?色. 隨於六道各見不同. 種種異類. 非受樂相. 故說爲應身. 復次初發意菩薩等所見者. 以深信眞如法故, 少分而見. 知彼色相莊嚴等事, 無來無去, 離於分齊. 唯依心現, 不離眞如. 然此菩薩猶自分別. 以未入法身位故. 若得淨心, 所見微妙, 其用轉勝. 乃至菩薩地盡, 見之究竟. 若離業識, 則無見相. 以諸佛法身, 無有彼此色相迭相見故. 問曰, 若諸佛法身離於色相者, 云何能現色相. 答曰. 卽此法身是色體故, 能現於色. 所謂從本已來, 色心不二. 以色性卽智故, 色體無形, 說名智身. 以智性卽色故, 說名法身遍一切處. 所現之色無有分齊. 隨心能示十方世界, 無量菩薩, 無量報身, 無量莊嚴, 各各差別, 皆無分齊, 而不相妨. 此非心識分別能知. 以眞如自在用義故.〕

【소】
두 번째는 각각 풀이하는 것이다. 이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전체적으로 표시하는 것과 개별적으로 해석하는 것과 왕복해서 의심을 없애는 것이다. 개별적으로 해석하는 것 중에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개별적인 작용을 바로 나타내었고, 둘째는 분별을 거듭 나타내었다. 처음 중에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응신을 밝혔고, 뒤에는 보신을 밝혔다. 처음 중에 ‘분별사식에 의한다’고 한 것은 범부와 이승은 오직 식뿐임을 알지 못하고 바깥의 경계가 있다고 계탁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분별사식의 뜻이다. 이제 불신(佛身)을 보고서 또한 마음밖에 있다고 생각함은 의식의 뜻에 따르는 것이니, 그러므로 분별사식에 의하여 본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전식(轉識)에 의하여 색상을 나타내는 것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전식의 나타냄을 알지 못하므로 밖으로부터 오는 줄로 생각한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 보는 바의 분제(分齊)가 있는 색이 곧 한계가 없어서 분제상을 여의었는데도, 저 사람은 오직 분제가 있는 뜻을 취하고 분제가 바로 한계가 없는 것인 줄 아직 모르기 때문에 ‘색분제를 취하여 다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보신(報身) 중에 ‘업식에 의한다’고 한 것은 십해이상(十解以上)의 보살(菩薩)은 오직 마음(唯心)일 뿐 바깥의 경계가 없는 뜻을 잘 알아서 업식의 뜻을 따라 불신을 보기 때문에 ‘업식에 의하여 본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 보살은 그 분제가 곧 분제가 없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곳에 따라 나타냄이 바로 한계가 없으며ㆍㆍㆍㆍㆍㆍ, 훼손하지도 않고 잃지도 않는다‘고 하였다. 이러한 장애 없는 불사의한 일이 모두 육도의 심행(深行)의 훈습과 및 진여의 불사의훈으로 말미암아 성취한 것이므로 이런 이런 뜻에 의하여 보살이라 이름하며, 그러므로 ’내지 한량없는 낙상을 구족하였기 때문에 보신이라 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 이신(二身)은 경과 논에 달리 말하고 있으니, 《동성경(同性經)》에서는 “예토(穢土)의 성불을 화신이라 하고, 정토의 성도를 보신이라 한다”고 하였으며, 《금고경(金鼓經)》에서 는 “32상과 80종호 등의 상을 응신이라 하고 육도의 상을 따라 나타난 몸을 화신이라 한다”고 하였다. 《섭론(攝論)》의 주장에 의하면 지전(地前:십지이전)에서 보는 것을 변화신(變化身)이라 하고 지상(地上:십지이상)에서 보는 것을 수용신(受用身)이라 하였으며, 이제 이 《기신론》중에서는 범부와 이승이 보는 육도(六道)의 차별의 상을 응신이라 하고 십해 이상의 보살이 보는 분제를 여읜색을 보신이라 하였다. 이와 같이 같지 않음이 있는 것은 법문(法門)이 한량이 없어서 오직 한 길만이 아니므로 곳에 따라 시설(施設)하였기 때문이니, 모두 도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섭론(攝論)》중에서는 지전의 흩어 진 마음으로 보는 분제가 있는 상을 말하기 때문에 화시네 속하는 것이지만, 이제 이 《기신론》중에서는 이 보살의 삼매로 보는 분제를 여읜 상을 밝힌 것이기 때문에 보신에 속하는 것이니, 이런 도리에 의하여 서로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또 ’범부에게 보이는 것‘ 이하는 두 번째 거듭 분별을 나타낸 것이다. 먼저 응신을 밝혔으니, 글의 양상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이하는 보신상을 나타내었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잇으니, 먼저는 지전에서 보는 것을 밝혔고, 뒤에는 지상에서 모는 것을 나타내었다. 처음 중에 ’진여법을 깊이 믿기 때문에 적은 부분이나마 본다‘고 한 것은 십해(十解) 중에 인공문(人空門)에 의하여 진여의 이치를 보는 것과 같으니, 이는 비슷하게 안 것이므로 ’적은 부분‘이라 한 것이다. ’만약 정심(淨心)을 얻으면‘이하는 지상에서 보는 바를 나타낸 것이며, 만약 업식을 여의면 보는 상이 없다’는 것은 업식에 의하여야 전상과 및 현상이 있기 때문에 업식을 여의면 곧 보는 상이 없는 것이다. ‘묻기를’이하는 왕복하여 의심을 제거한 것이니, 글의 양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시정의(顯示正義)내에 크게 나누어 두 부분이 있는데, 첫째로 세운 법과 의를 바로 해석함을 앞에서 마쳤다.
〔第二別釋. 於中有三. 總標. 別釋. 往復除疑. 別解中亦有二. 一者直顯別用. 二者重牒分別. 初中亦二. 先明應身. 後顯報身. 初中言依分別事識者. 凡夫二乘未知唯識, 計有外塵, 卽是分別事識之義. 今見佛身, 亦計心外, 順意識義, 故說義分別事識見. 此人不知依自轉識能現色相, 故言不知轉識現故見從外來. 然其所見有分齊也, 卽無有邊離分齊相. 彼人唯取有分齊義, 未解分齊則無有邊, 故言取色分齊不能盡知故也. 報身中言依於業識者, 十解以上菩薩, 能解唯心, 無外塵義, 順業識義以見佛身, 故言依於業識見也. 然此菩薩知其分齊卽無分齊, 故言隨所示現卽無有邊乃至不毁不失也. 此無障?不思議事, 皆由六度深行之熏. 及如眞如不思議熏之所成就, 依是義故名爲報身. 故言乃至具足無量樂相故說爲報也. 然此二身, 經論異說. 同性經說. 穢土成佛, 名爲化身. 淨土成道, 名爲報身. 金鼓經說. 三十二相八十種好等相, 名爲應身. 隨六道相所現之身, 名爲化身. 依攝論설. 地前所見, 名變化身. 地上所見, 名受用身. 今此論中, 凡夫二乘所見六道差別之相, 名爲應身. 十解以上菩薩所見離分齊相, 名爲報身. 所以如是有不同者. 法門無量, 非唯一途. 故隨所施設, 皆有道理. 故攝論中爲說地前散心所見有分齊相, 故屬化身. 今此論中明此菩薩三昧所見離分齊相, 故屬報身. 由是道理, 故不相違也. 又凡夫所見以下, 第二重牒分別. 先明應身. 文相可知. 復次以下, 顯報身相. 於中有二. 先明地前所見. 後顯地上所見. 初中言以深信眞如法故少分而見者. 如十解中, 依人空門, 見眞如理, 是相似解. 故名少分也. 若得淨心以下, 顯地上所見. 若離業識則無見相者. 要依業識, 乃有轉相及與現相. 故離業識, 卽無見相也. 問曰以下, 往復除疑. 文相可見. 顯示正義之內大分有二. 第一正釋所立法義竟在於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