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② 진여문(眞如門)에 들어감

通達無我法者 2008. 3. 24. 13:39

 

② 진여문(眞如門)에 들어감

은정희 역주/일지사/자료입력:도규희

 

 

【논】
다음은 생멸문으로부터 곧 진여문에 들어가는 것을 나타내었다. 이른바 오음(五陰)의 색과 심을 추구해 보건대, 육진경계가 필경 생각할 만한 모양이 없으며, 또한 마음에는 형상이 없어서 시방으로 찾아보아도 끝내 얻을 수가 없으니, 마치 사람이 방향을 모르기 때문에 동쪽을 서쪽이라고 하지만 방향 자체는 실로 변화된 것이 없는 것과 같다. 중생도 그러하여 무명으로 혼미하기 때문에 마음을 망념이라 하지만 마음은 실로 움직이지 아니하는 것이며, 만약 관찰하여 마음에 망념이 없는 줄 알면 곧 수순하게 되어 진여문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復次顯示從生滅門卽入眞如門. 所謂推求五陰色之與心, 六塵境界, 畢竟無念. 以心無形相, 十方求之終不可得. 如人迷故, 謂東爲西, 方實不轉. 衆生亦爾. 無明迷故, 謂心爲念, 心實不動. 若能觀察知心無念, 卽得隨順入眞如門故.〕

【소】
두 번째는 통발(생멸문)로부터 본지(진여문)에 들어가는 문을 열어 보였다. 이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전체적으로 나타내는 것과 각각 해석하는 것, 세 번째는 총결이다. 전체적으로 나타내는 것 중에 ‘오음의 색과 심을 추구해 보건대’라고 한 것은 색음을 색이라 하고 나머지 넷은 시미라 한 것이다. 각각 해석하는 중에 먼저색관을 해석하였으니, 모든 색을 부러뜨려서 극미(極微)에까지 이르게 되어도 영구히 얻을 수가 없으며 마음을 떠난 밖에는 생각할 만한 상이 없기 때문에 육진이 필경에 무념이라 한 것이다. 다만 마음 밖에 달리 색진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마음에서 색을 찾아보아도 또한 얻을 수가 없기 때문에 ‘마음에 형상이 없어서 시방으로 찾아보아도 끝내 얻을 수가 없다’고 한 것이다. ‘마치 사람이......,’이하는 두 번째 마음을 관찰하는 법이니, 먼저는 비유이며 나중은 합이다. 합 중에 ‘마음은 실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 것은 동념(動念)을 추구해 본다면 이미 없어졌거나 아직 생기지 않은 것이요, 중간에 머무는 바가 없다. 머무는 바가 없기 때문에 곧 일어남이 없으니, 그러므로 심성이 실로 움직이지 않음을 아는 것이다. ‘만약 잘 관찰하여ㆍㆍㆍㆍㆍㆍ’이하는 세 번째 총결이니, ‘곧 수순하게 된다’는 것은 방편관이고, ‘진여문에 들어간다’는 것은 정관이다.
〔第二開示從筌入旨之門. 於中有三. 總標. 別釋. 第三總結. 總標中推求五陰色之與心者, 色陰名色, 餘四名心也. 別釋之中, 先釋色觀. ?折諸色乃至極微, 永不可得. 離心之外無可念相. 故言六塵畢竟無念. 非直心外無別色塵. 於心求色不可得. 故言心無形相十方求之終不可得也. 如人以下, 次觀心法. 先喩. 後合. 合中言心實不動者, 推求動念已滅未生, 中無所住. 無所住故. 故知心性實不動也. 若能以下, 第三總結. 卽得隨順者, 是方便觀. 入眞如門者, 是正觀也.〕

△두 번째는 사집(邪執)을 대치(對治)하는 것이다. 글에 또한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전체적으로 나타내어 수를 들었고, 둘째는 수에 의하여 이름을 열거하였고, 세 번째는 이름에 의하여 모양을 분별하였으며, 네 번째는 구경에 집착의 여읨을 전체적으로 나타내었다.
〔△第二對治邪執. 文亦有四. 一者總標擧數. 二者依數列名. 三者依名辨相. 四者總顯究竟離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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