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위빠사나

9. 집착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通達無我法者 2008. 4. 2. 15:13
 

 

 

9. 집착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그래서 집착은 두려운 것이며, 아주 중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집착이 존재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종식시키기 위하여 명상합니다. 우리는 갈애나 잘못된 견해로 집착하지 않기 위하여, 영원하거나 행복한 것으로 집착하지 않기 위하여, 자아나 에고나 '나'라고 집착하지 않기 위하여 명상합니다. 명상하는데 실패한 사람들은, 그들이 보거나 듣거나 느끼거나 지각할 때마다 집착합니다. 자신이 집착하는지 하지 않는지 자문해 보십시오. 대답은 너무나도 명백할 것입니다.


보는 것부터 알아봅시다. 수행자가 아름다운 것을 봤다고 합시다. 그것을 보고 무엇을 생각합니까? 수행자는 즐거워하고 기뻐하지요? '나는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는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은 '아름답기도 해라! 세상에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환하게 미소지으면서 기뻐합니다. 동시에 그것이 영원하다고 생각합니다. 본 대상이 인간이거나 무생물이거나 간에, 수행자는 그것은 전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며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수행자의 것이 아니더라도, 수행자는 정신적으로 그것을 소유하고 즐깁니다. 그것이 옷이라면 정신적으로 그것을 입고 즐거워합니다. 그것이 샌들이라면 정신적으로 그것을 신습니다. 그것이 인간인 경우에도 그 사람을 정신적으로 어떻게 하고 즐거워합니다.


듣거나 냄새 맡거나 맛보거나 감촉할 때에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수행자는 이런 경우에도 즐깁니다. 생각일 경우에는 기쁨의 범위가 훨씬 넓어집니다. 수행자는 자기 소유가 아닌 것들에 대해서도 공상하면서 기뻐하고, 갈망하며, 그것들이 자신의 소유인 것처럼 상상합니다. 만약 그것들이 자신의 소유인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이, 그것들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고 줄곧 기뻐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즐거워하는 것과 집착하는 것을 체크하기 위하여 명상합니다.


우리는 또한 잘못된 견해로 집착합니다. 수행자는 유신견으로 집착합니다. 수행자가 볼 때, 자신이 보는 것은 사람이고 에고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자신의 안식(眼識)이라고 생각하며, 사람이며 에고라고 취급합니다. 완전한 위빠싸나 지혜가 없이 우리가 사물을 보는 순간의 사물에 집착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돌이켜 보면, 자기 스스로 어떻게 그러한 집착을 갖게 되는지 스스로 알게 될 것입니다. 남들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에 대해서도 평생 동안 같이 살아온 에고가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재로는 그런 것은 없습니다. 평생동안 살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단지 마음과 물질만이 계속적으로 하나가 일어났다가 사라지면 다른 것이 일어날 뿐입니다. 이 마음과 물질을 수행자가 사람이고 에고라고 생각하고 집착합니다. 우리는 잘못된 견해로 이러한 집착이 존재하지 않도록 명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물이 나타나는 순간 명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럴 때에만 집착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고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집착이 생깁니다. 그들은 여섯 곳, 육문으로부터 생깁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에 대해 집착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우리가 들을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집착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도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말루꺄뿟따(Malukayaputta)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보지 않았고, 과거에 본 적이 없고, 지금 보지 않고 있으며, 미래에도 보리라고 기대할 수 없는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상에 대하여, 그대는 그것을 특별히 좋아하든지, 정열을 갖든지, 애정을 가질 수 있겠는가?'


'세존이시어, 그렇지 않습니다.'

(S. iv, 72)


수행자가 전에 본 적이 없는 형상이란 무엇일까요? 가 본 적이 없는 도시나 마을이나 나라, 거기에 사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그 밖의 경치입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남자 혹은 여자와 어떻게 사랑에 빠질 수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들에게 집착할 수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본 적이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번뇌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것들에 대해서는 명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수행자가 보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가 다릅니다. 번뇌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번뇌를 예방하기 위하여 명상하지 못한다면 말입니다.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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