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위빠사나

10. 지금 즉시 명상하라

通達無我法者 2008. 4. 2. 15:14
 

 

 

10. 지금 즉시 명상하라


수행자가 현상이 일어나는 순간 명상하지 못하고 그에 따라 무상하고 고통이며 무아라는 현상의 고유한 본성을 알지 못한다면, 그 현상을 놓쳐버리고 번뇌가 생기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잠재된 번뇌입니다. 대상으로부터 생기기 때문에 그것을 '대상에 잠재되어 있는 번뇌'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무엇에 집착하며 왜 집착할까요? 그들은 본 적이 있는 사물이나 사람에 집착하며, 봤기 때문에 집착합니다. 현상이 일어날 때 명상하지 못한다면 약간의 다른 집착이 일어납니다. 번뇌는 우리가 보고 듣고 맛보고 하는 모든 것들에 잠재되어 있습니다.


수행자가 명상한다면, 본 것이 사라지는 것, 들은 것이 사라지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들은 즉시 사라집니다. 일단 있는 그대로의 실재 성품을 본다면, 사랑할 것도 없고, 미워할 것도 없고, 집착할 것도 없습니다. 집착할 것이 없다면, 집착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지금 명상하고 있습니다. 보는 순간 즉시 명상하십시오.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물건을 외상으로 살 수는 있지만, 명상을 외상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지금 즉시 명상하십시오. 그래야만 집착이 생기지 않습니다. 경전 용어로 말하면, 안근(眼根)의 인식 과정(thought-process)이 끝나자마자, 이어지는 의근(意根)의 인식 과정이 시작되기 전에 명상합니다. 시각 대상을 볼 때 다음과 같은 과정이 일어납니다. 첫째, 대상이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보는 과정입니다. 그 다음에 보여진 대상을 검토합니다. 이것이 이름 붙이는 과정입니다. 전에 본 적이 없는 대상일 경우에는, 이름을 모르기 때문에 이름 붙이는 과정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네 가지 중에, 첫 번째인 보는 과정이 일어날 때, 수행자는 현재의 형상인 실재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두 번째인 검토하는 과정이 일어날 때, 수행자는 과거의 형상을 검토하는데 이것도 실재입니다. 두 경우 모두 보여진 대상의 실재를 주시합니다. 아직 개념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실재냐 과거의 실재냐 하는 것만 다릅니다. 세 번째 과정에서 형상의 개념이 나타납니다. 네 번째에서 이름이라는 개념이 나타납니다. 그 다음에는 여러 가지 개념이 나타납니다. 이런 것들이 위빠싸나 수행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보는 과정에는 14개의 마음순간(thought-moment)이 있습니다. 안식(眼識)이나 이식(耳識)이나 의식(意識)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바왕가(life-continuum, 의식이 활동하지 않고 있을 때의 의식)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재생연결식(rebirth consciousness)과 동일합니다. 그것은 깊이 잠들어 있을 때 계속되고 있는 의식입니다. 시각 대상이나 다른 대상이 나타나면, 바왕가가 멈추고 안식 등이 일어납니다. 바왕가가 멈추자마자, 다음 마음순간에 시야에 들어오는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는 전향(轉向) 의식이 나타납니다. 이것이 사라지면 보는 의식[眼識]이 나타납니다. 다시 이것이 사라지면 받아들이는 의식이 나타납니다. 그 다음은 조사하는 의식이 일어납니다. 다음은 보여진 대상이 좋은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의식입니다. 그리고는 사물에 대한 옳고 그른 자세에 따라 도덕적 혹은 비도덕적 자와나(javana, 速行)가 7개의 마음순간 동안 강력하게 일어납니다. 이것이 끝나면 2개의 등록하는 의식이 일어납니다. 그 다음에 잠드는 것처럼 바왕가로 가라앉습니다. 전향으로부터 등록까지 모두 14개의 마음순간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안식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보는 과정이 일어나는 모습입니다. 위빠싸나 수행에 익숙한 사람은 보는 과정 중에서 바왕가가 멈춘 다음에 '보는 것'을 알아차리는 위빠싸나(insight) 의식이 일어납니다. 수행자는 그렇게 즉시 명상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수행자는 자신이 본 그대로, 일어난 그대로의 사물에 대해서 명상하고 있다고 인지합니다. 이런 명상을 경전에서는 '현재에 대한 명상'이라고 합니다.


'그는 지금 이 자리에서 현전하는 사물을 일어나는 순간 알아차린다.'

(M. iii,227)


'생멸의 지혜란 현재의 상태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알아차리는 지혜이다.'

(무애해도)


경전에서 발췌한 위의 구절들은 우리가 현재의 상태에 대해서 명상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현재에 대해서 명상하지 못한다면, 바왕가의 흐름을 끊고 판단하는 과정이 일어납니다. 이 과정은 지금 막 본 것을 검토하기 위해서 발생합니다. 여기에는 판단 의식 1개와 자와나 7개와 등록 의식 2개 모두 10개의 마음찰나가 포함됩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거나 숙고할 때마다 이 세 가지 종류의 의식과 10개의 마음찰나가 발생합니다. 그러나 수행자에게는 그것들이 단 1개의 마음찰나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것은 무애해도와 청정도론에서 소멸의 지혜와 관련된 설명과 일치합니다. 수행자가 판단 과정 다음에 명상(혹은 주시)할 수 있다면, 개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본 대상의 있는 그대로의 실재에 머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초보자에게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판단 과정 다음에도 명상하는데 실패한다면, 형상화 과정과 명칭 부여 과정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면 집착이 들어옵니다. 집착한 다음에 명상한다면 집착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개념이 생기기 전에 즉시 명상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는 과정들도 모두 비슷한 선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의근에서 즉시 알아차리지 못하고 생각한다면, 생각에 이어지는 다음 과정들이 발생됩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그것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명상해야 합니다. 수행자가 일어남, 꺼짐, 앉음, 닿음을 주시할 때, 때로는 생각이나 관념이 그 사이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것이 일어나는 순간 주시하십시오. 주시하면 그 자리에서 사라집니다. 때로는 방황하는 마음이 일어나려고 합니다. 주시하면 그 마음이 수그러듭니다. 어떤 수행자는 '그것은 장난꾸러기 아이가 '조용히 해!'라는 소리에 얌전하게 구는 것과 같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수행자가 보고 듣고 감촉하고 지각하는 순간 주시하면, 집착이 생기게 하는 뒤따라오는 의식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 수행자는 단지 볼 때는 대상을 보기만 하고, 들을 때는 소리를 듣기만 하고, 감촉할 때는 감촉대상을 느끼기만 하고, 인지할 때는 대상을 인지하기만 하라.'


'......말루꺄뿟따 경에서 발췌한 것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단순히 형상, 단순히 소리, 단순히 감각, 단순히 관념이 있다. 그것들을 회상하면 수행자가 이해한 실재 성품만이 나타날 것이다. 집착은 나타나지 않는다.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일어나는 순간에 알아차리는 수행자는, 모든 것들이 어떻게 일어나고 사라지는지 알며, 모든 것이 무상하고 고통이며 무아라는 것이 그에게 명백하게 될 것이다. 스승이 그에게 설명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이 스스로 그것을 안다. 이것만이 진정한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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