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즉시공 공즉시색 色卽是空空卽是色
물질, 우주, 그리고 나
물질에 대한 설명을 마치기 전에 아주 근사한 예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탄소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전형적인 원소인데, 우리에게 가까운 이 탄소의 일생이 인연에 따라 어떤 과果가 이루어지는지 한번 보십시오. 이것은 불교의 인과법因果法, 즉 연기론緣起論을 과학적으로 설명해 주는 예이기도 합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화학자 프리모 레비(1919~1987)의 글 중에서 입니다.
-중략- 그것은 탄소원자 셋 그리고 칼슘원자 하나와 결합하여 석회암의 형태로 존재한다. 그런데 절단되어 석회로를 통과하면서 날개를 얻게 되었다. (이 표현은 안타깝게도 레비가 유태인 집단수용소에 있었을 때를 묘사한 것입니다. 석회로란 그 악명 높은 '소각로'입니다) 그 원자는 바람에 포획되어 땅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기도 하고 10km 높이로 상승하기도 한다. 하늘을 날고 있는 매에 흡입되기도 하고 바닷물에 세 번 용해되었다가 다시 공중으로 방출되기도 한다. 그리고 나서 우연히 유기화학적 모험을 하게 되었다. 운 좋게 나뭇잎을 스치고 지나가다 그 안으로 침투해서 태양광선에 의해 고정되었다. 눈 깜빡 할 사이에 거미에 포획된 곤충처럼 탄소원자는 산소들로부터 분리되고 수소와 결합하여 결국 생명의 사슬에 편입되었다. 그것은 피의 흐름에 진입하여 신경세포의 문을 두드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서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탄소와 교체된다. 그 세포는 뇌에 속하고 그것은 나의 뇌이다. (마틴 리스저 / 태초 그 이전 / 해나무)
제가 여러분이 가능하면 물질에 대해 폭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도록 공을 들이는 목적은 이와 같이 결국 물질=우주=나 라는 등식이 성립된다는 사실을 인식시켜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공'空 이란 개념도 이 등식의 성립과정을 '조견'照見하는 것이고, 그 성립과정은 다시 반야심경의 '오온'五蘊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물질을 단순히 욕심을 일으키는 대상쯤으로 간주한다면, 공의 이해는커녕 '불도佛道를 이루겠다'는 수행자로서의 서원은 무량 겁 동안 접어두어야 할 겁니다. 제가 갖는 기우는 만약 이런 식으로 연구와 사고를 축적해가고 있는 서양의 문화와 철학이 불교에 그 과학적 성과들을 접목시킨다면, 우리는 백 년 후쯤 미국이나 유럽으로 불교의 가르침을 구하기 위한 구도의 길에 올라야 할지도 모릅니다. 백 년 후에도 불공과 제사가 우리나라 절의 주 '임무'가 된다고 가정할 때 말입니다.
※ 성법스님 저서 '마음 깨달음 그리고 반야심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