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즉시공 공즉시색 色卽是空空卽是色
공의 이해를 위해
적성검사나 간단한 설문조사지를 받고 어떤 항목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해 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그럴 경우 항목 중에 '기타'란이 있으면 무조건 선택하시는 분이 있을 겁니다. 저도 그렇게 빠져나가는 사람 쪽에 속합니다.
그러나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는 난감한 경우 중 하나는, 무엇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하는데 상대가 그 무엇 비슷한 것도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사람일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적도지방에 사는 사람에게 얼음이나 눈의 느낌을 설명해야 할 경우입니다. 더 심하게는 미적분을 유치원 다니는 아이에게 설명을 해야 할 경우가 생겼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이러한 설명상의 문제가 불교를 어렵다고 느껴지게 만드는 주범입니다. 물론 불교 자체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쉬울 수도 없고, 쉬워서도 안됩니다. 그 흔한 세속의 자격증 하나 얻으려고 해도 얼마나 어려운 공부를 해야 합니까? 하물며 '나를 부처로 만드는' 불교가 쉽다는 것은 도리어 말이 되질 않습니다. 당연히 불교가 한 없이 어렵게 느껴지고, 더욱 관심을 갖고 공부를 좀 하면 할수록 더 깊은 의문의 수렁에 빠지는 느낌이라는 것이 많은 이들의 하소연입니다.
저는 이것은 일차적으로 불법佛法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스님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말 그대로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는데, 스님들의 의식은 일반인의 불교에 대한 관심과 지적 욕구를 전혀 따라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절에서는 신도가 법회에 몇 명 모일까에 대한 걱정이 어떻게 불교를 이해시킬까에 대한 고민을 압도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나아가 각 분야의 첨단 지식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불교의 교리에 대해 '따지듯' 물어 왔을 때, 그 사고방식 속에 들어가 그 사람을 불교적으로 이해가 되게끔 납득시킬 수 있는 스님들이 과연 몇 분이나 될까요? 여기서 스님들이 만약 '어찌 불법을 세속적 지식에 대해 이해시켜 주어야 하느냐? 모든 것이 마음 법이란 이치만 알면 되는데'라고 말씀 하신다면 정말 불법을 모르는 말인 것입니다.
'진제眞諦와 속제俗諦가 불이不二다. 세간법世間法과 출세간법世間法이 같다. 이理와 사事가 다르지 않다. 번뇌煩惱가 곧 보리菩提다. 평상심平常心이 도道다.' 라는 큰 말씀은 하시면서 어찌 그 하찮은 세속적 지식을 굴복시킬 방법은 생각해 보지 않는지요. 신도를 많이 모이게 하고 수 십억 절 짓는 불사를 잘 하시는 것도 능력이고 방편이지만, 이 골치 아픈 지식인을 조복시키고 납득시키는 것도 출가자가 해야 할 방편바라밀의 수행이 아닌가요?
이러한 각고의 노력 없이 그들에게 '알아서' 선적禪的인 불교를 느끼고 그 안에 답이 있다라고 부동지不動地의 마음을 내는 것이 진심으로 불법의 진수를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 부동지에 경의를 표합니다.
제 말씀이 어거지라고만 보시지 말고 그 속에 있는 교훈을 찾으셨으면 합니다. 이 의미에서 교훈을 찾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선禪 수행 운운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구지선사(당나라 850년 경)는 어느 누가 법을 묻던 손가락을 하나 세워 보이셨다. 어느 날 선사가 없는 사이에 손님이 찾아왔다. "스님께선 주로 어떤 법을 가르치는가?"그러자 선사를 시봉하는 동자는 아무 말 없이 손가락 하나를 세워보였다. 제딴에는 스승의 흉내를 내 본 것이다. 나중에 구지선사가 돌아오자 동자는 손님이 왔다 갔다고 이야기 했다. 구지 선사가 물었다. "그래, 무슨 말씀이 없으시더냐?" "예, 스님께선 주로 어떤 법을 가르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선사가 물었다."그래, 뭐라고 대답했느냐?" 동자는 얼른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이며 말했다. "이렇게 했지요."그러자 선사는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더니 동자의 손가락을 싹둑 잘라버렸다."아얏!" 동자는 잘린 손가락을 움켜쥐고 엉엉 울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때 갑자기 선사가 동자를 불렸다. 동자가 고개를 돌려 돌아보자 선사는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다. 그러자 동자도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세웠다. 앗! 그러나 이미 손가락은 잘려 나가고 없지 않은가! 동자는 비로소 퍼뜩 깨쳤다. 한국불교에는 잘려질 손가락이나마 있는지 걱정입니다...
※ 성법스님 저서 '마음 깨달음 그리고 반야심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