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般若心經)·성법스님

반야심경/성법스님

通達無我法者 2008. 5. 24. 10:22

⊙ 물질에서 진리를 찾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 법에서 수행방법으로

시고 공중 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 역무득 이무소득고
⊙ 수행방법에서 깨달음으로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 고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 고득야뇩다라삼먁삼보리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증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색즉시공 공즉시색 色卽是空空卽是色

있다, 없다, 그리고 공하다

한 젊고 예쁜 처녀 선생님께서 초등학교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아이들에게 물었다.
“저 벽시계에도 있고 선생님에게도 있는 것이 뭐가 있죠?”
한 아이가 대답했다.
“두 손이요”
다른 아이도 대답했다.
“얼굴이요.”
“좋아요, 그럼 벽시계에는 있는데 선생님에게는 없는 것은 뭐지요?”
한참 침묵이 흐르다가 한 꼬마가 소리쳤다.
“불알이요!”

물어 본 선생님 잘못도 아니고, 대답한 아이의 잘못도 아닙니다. 선생님과 아이에게 '시계 추'를 '시계 불알'이라고 부르는 것이 '사실적 통상' 이였으니까요. 다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을 뿐입니다. 여기서 '불알'이라고 한 것을 선정적이라고 몰아붙이면 정말 바보가 되겠지요.

제가 이 예를 드는 것은 언어적 인식은 한번 고정되면 좀처럼 바뀌기 어렵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불교에서는 '없다'는 말을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는 단어로 사용합니다. '무상'無常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상하면 인생은 무상한 것, 즉 덧없는 것을 먼저 연상합니다. 스님들도 법문할 때 돈도, 명예도, 쾌락도 다 무상한 것이니 집착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백 번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저는 법문 할 때 즐거움보다는 괴로운 일이 많은 요즘의 중생들이기에, 괴로움과 고통, 번뇌도 무상한 것이니 좌절하지 말고 열심히 살다보면 그 끝이 있게 마련이라고 용기를 주는데 무상이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없다'는 말은 '있는 것'에 대한 상대적 표현입니다.  물건이 있다, 없다를 생각해 보시면 간단합니다. 여기에 인간인 '나'를 더해 '내가 없다', '내가 있다' '난 죽었다' '난 살아있다'를 의미한다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불법을 논하는 자리라면 아주 기본적인 전제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언어적 모순이 발생합니다.

"불법은 있다, 없다의 유有 무無를 떠난 중도中道의 자리에 그 진리가 있다. 깨달음이란 이러한 양 극단을 여읜 자리이다" 제가 만든 말이지만, 그 어려운 중론中論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불교 공부하는 사람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도리는 실은 반야심경에서 딱 한 글자로 표현해 버린 '공'空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불교에서는 공의 심오한 이치를 설명하는 선법문禪法門에서도 '나는 없다'고 해버립니다. 나는 공하니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의미인 것은 분명한데, 사람들은 그 '없다'라는 단어에서 자꾸만 있다는 것에 상대적인 개념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앞의 '시계불알' 같이 말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불교를 설명할 때 좀 더 명확하고 정교한 언어를 사용하자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국어의 표준말과 맞춤법도 몇 십 년 지나면 표준화 작업을 하는데, 불교의 용어는 천 년 이상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니 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아가씨' 하면 천박함을 연상하기도 하지만, 조선시대의 '아가씨'는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지 않았습니까? 미래의 불교와 지금의 한글세대를 위해서라도 곡해의 소지가 있는 불교용어는 속히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지금 반야심경의 공空을 설명하고 있지만 털어 놓자면 여러분을 속 시원히 납득시킬 능력이 없습니다. 설령 제가 이러저러한 노력을 통해 이해시켜 드리려고 시도한다고 해도, 이 공에 대해서만큼은 아무도 납득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그랬습니다. 다른 사람의 어떠한 언어적 설명과 해설도 결국 도움이 되질 못했습니다.

그럼 어쩌란 말이냐? 더구나 돈 주고 산 책인데 뭐라 한마디는 해줘야 할 것 아니냐고 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물론입니다. 이 페이지의 앞뒤로 있는 공空이란 단어가 들어간 제 이야기는 모조리 공을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아니, 공에 대한 저의 설명법이니 놓치지 마시기를 오히려 당부드립니다.

※ 성법스님 저서 '마음 깨달음 그리고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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